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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 글은 서울시 양천구 소재 학교 6학년, 서울시 도봉구 소재 학교 4학년 의 인터뷰 내용과 일기장 검사와 관련한 국가인권위의 의견 표명 내용을 토대로 일기 형식을 빌려 작성됐습니다. <편집자주>
"저도 인간이에요."
"주인 허락 없이 보면… 죽음이다. 알았냐? ^-^ 특히 울반 애들, 알쥐?"


내 친구가 학교 선생님에게 제출하는 개인 일기장 앞에 써 놓은 글이다. 혹시나 친구들이 볼까봐 약간 장난스럽게 경고를 해 놓았다.

나는 일기장이 모두 세 개다. 개인 일기장말고도 두 개가 더 있다. 학교에 제출하는 모둠 일기장과 혼자만 보는 비밀 일기장이 그것이다. 비밀 일기장은 같은 또래인 6학년 친구들 가운데 반 정도의 아이들이 쓰고 있다.

모둠 일기장은 같은 반 친구들 네 명이 모둠을 이뤄 돌아가면서 쓴다. 모둠은 본래 친구들끼리 서로 친해지라고 선생님께서 만들었다. 보통 석 달에 한 번씩 바뀐다. 모둠 일기장에는 주로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나 학교생활의 느낌을 쓴다.

며칠 전에는 나무젓가락에 색칠해서 탑을 만든 이야기를 썼다. 이 일기장은 선생님도 검사하지만 모둠 친구들도 함께 읽는다. 한 번 쓸 때는 15줄 이상을 써야 한다. 그래서 쓸 게 없을 때 길게 쓰려면 어렵다. 모둠 일기 숙제를 안 해가면 다음엔 일기장 한 쪽을 채워야 한다. 그것도 안 하면 두 쪽을 채워야 한다.

개인 일기장은 내가 겪은 얘기를 쓴다. 4월 초까지는 날마다 썼는데, 같은 반 애들이 일기 검사가 사생활 침해라고 선생님께 얘기해서 월, 수, 금 3일만 쓰게 됐다. 개인 일기장을 선생님께서 검사하니까 친구 중에는 선생님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일기장에 쓰기도 한다. 같은 반 친구 중에 사이가 좋지 않은 친구가 있어서, 친해지고 싶으니 짝꿍이 되게 해달라고 썼단다. 그래서 그 친구는 짝꿍을 이뤄 친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 일기장은 편하게 쓰지 못한다. 그래서 주로 학교 이야기만 쓴다. 그러다 보니 내용이 비슷비슷해진다. 요즘엔 일기 주제를 선생님께서 정해 주기도 한다. '30분 동안 눈감고 생각해 보기',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등이 예전에 썼던 내용이다.

▲ 일기장
ⓒ 자료사진
나는 5학년 때까지는 선생님이 편하고 좋았다. 일기 내용을 보고 혼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선생님이 바뀌면서 마음 속 얘기를 하기가 싫어졌다. 어떤 친구는 전학 와서 속상한 일을 일기장에 적었더니, 그것을 읽은 선생님께서 "마음에 안 들어? 그러면 학교 안 오면 될 거 아냐!"라며 창피를 주었단다.

나는 아직 그런 일까지는 없었지만 비밀 일기장을 따로 쓴다. 속상한 일 가운데 선생님에게 말하기 싫은 얘기들이 있는데, 개인 일기장에 쓰면 그걸 다 보여 줘야 한다. 때로 선생님은 우리들이 무엇을 창피해 하는지를 잘 모르시는가 보다.

친구들 중에 한 아이는 예전에 선생님이 일기를 반 친구들에게 읽어 주었다고 했다. 묘사가 잘 된 좋은 글이라서 읽어 준다고 했단다. 그런데 그 일기를 쓴 친구는 칭찬을 해줘서 좋긴 한데, 친구들이 그 내용을 죄다 알아 버리니까 창피했단다.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아직 초등학생인데 무슨 비밀이 있고 사생활이 있냐고. 그러면 난 대답한다.

"저도 인간이에요. 동물이 아니에요."

"비밀을 지켜 줘야지. 읽지 않을게"

일기를 쓰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사실 일기를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일기는 숙제다. 일주일에 일기장 세 쪽을 채워야 한다. 검사는 일주일에 한 번 한다. 선생님은 걷어 간 일기를 청소하는 날 돌려준다. 때로 선생님은 일기를 읽고 난 선생님의 생각을 일기장에 적어 주기도 한다.

"솔직하게 쓴 일기, 칭찬합니다. 예쁜 얼굴의 ○○가 쓴 글씨 맞아요? 그리고 4학년이 되어서 가장 신나게 놀았다고 했는데 자세히 써 보세요."

일기를 써 가지 않으면 빨간 스티커 한 장을 붙여야 한다. 빨간 스티커 세 장이면 반성문을 써야 한다. 그동안 일기 때문에 두어 번 정도 빨간 스티커를 받았다. 숙제 검사하는 날 일기장을 챙겨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기는 단지 쓰는 게 귀찮은 것만은 아니다. 일기를 남에게 보여 준다는 것이 싫다. 그래서 부모님에게도 내 일기를 보여 드리지 않는다. 그런데 선생님은 숙제 검사라고 일기를 본다.

가끔 사람들은 일기 검사를 통해서 선생님이 내 생활을 지도해 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도 난 좀 어딘가 기분이 나쁘다. 선생님이 일기를 통해 너무 알려고 하니까. 4학년인 나도 나 혼자만 알고 싶은 비밀이 있다. 그래서 보통 친구들하고 싸우고 나서 생각할 게 있으면 일기장 대신 가끔 메모장에 적어 둔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가끔씩 그런다. 일기를 쓰는 것보다 그냥 생각하는 게 더 낫다. 잘못된 점은 없는지를 혼자 생각한다.

아마 일기를 남에게 보여 주기 싫었던 때는 3학년 때쯤부터였을 거다. 그때부터 나한테 '발랑끼'가 생겼다. 선생님이든 누구든 어른들이 뭘 검사하고 시키면 하기가 싫어졌다. 아마 일기 검사도 그래서 싫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일기를 검사하는 선생님에게 불평이 있지만 마음 속으로만 하고 만다. 그러다가 4월 초에는 일기장에 일기를 읽지 말아 달라고 글을 썼다. 선생님은 일기장을 돌려주면서 그렇게 생각하냐며 그러면 도장만 찍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열흘쯤 지난 4월 말에 선생님은 다시 내 일기장에 한마디 적으셨다.

"○○의 비밀을 지켜 줘야지. 읽지 않을게."

"어린이들도 사랑과 질투가 있습니다"

엄마는 공무원이다. 서울 시청 근처에 있는 국가인권위에 근무하고 있다. 4월 초 엄마가 다니는 직장이 텔레비전과 인터넷에서 많이 나왔다. 칭찬도 있었고, 흉보는 내용도 많았다. 평소에 엄마 직장을 얘기해도 잘 모르던 같은 반 아이들이 이번엔 또박또박 '국가인권위원회'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얘기는 '일기장 검사' '사생활 침해' 같은 말이었다. 나는 며칠 후 엄마에게 무슨 얘기인지 물어보았다.

지난해 7월에 엄마가 근무하는 국가인권위에 서울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질문이 들어왔다. 일기를 잘 쓰는 아이들에게 상을 주려고 하는데, 일기 검사를 해도 되냐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국가인권위는 '일기장 검사는 하지 마라'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그 내용을 교육부에 보냈다.

▲ 일기장 1
ⓒ 자료사진

일기는 소중한 삶의 기록인데, 이 일기를 검사하게 되면 아이들이 자기만이 간직하고 싶은 얘기를 선생님에게 보여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선생님이 볼 것을 알기 때문에 '진솔한 얘기'가 아닌 '꾸민 얘기'를 쓸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타냈다고 했다.

이는 보통 일기가 갖는 특성과 관계가 있다. 일기란 개인의 하루하루의 경험, 생각과 느낌을 적은 글로 개인적인 생각과 양심을 내용으로 하는 솔직한 기록이며 또한 공개하고자 하지 않는 지극히 개인적인 글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일기 검사를 하지 말라는 말이, 글쓰기 능력 향상이나 학생의 고민 상담 등을 방해한다고 흉을 본 것은 잘못되었다고 했다. 이런 경우 다른 글쓰기를 하거나 건의함, 상담 등을 통해서도 충분히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엄마는 덧붙였다.

엄마는 결국 국가인권위가 일기장 검사를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아이들에게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주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엄마네 직장의 위원장이 했다는 말도 들려주었다.

"제가 이해하는 어린이란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세계를 갖고 있는 인격체라는 것입니다. 젊은이를 늙은이가 되기 위한 과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어린이도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린이에게도 또래끼리의 사랑과 질투가 있고, 거짓말도 하며 때로는 짝꿍의 물건을 슬쩍하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과 감정, 행위들이 아이들에게도 비밀스러운 일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초등학교 때 응당 숙제로 일기를 검사받는 걸 해 왔는데, 일기를 잘 쓰는 것도 공부이니 검사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을 것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고정관념입니다. 따라서 일기장 관련 의견 표명은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기도 합니다."


엄마는 며칠간 엄마 직장에서 한 말을 두고 흉보는 얘기가 나오면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칭찬을 많이 듣는다며 즐거워했다. 더욱이 며칠 후 교육부가 전국의 초등학교에 일기를 강제로 쓰게 하고 이를 평가하는 것은 하지 말라고 한 것을 듣고는 더욱 즐거워했다. 어쩌면 이제는 비밀 일기장이 따로 없어도 될지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간하는 월간 <인권> 5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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