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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민박집도 별로 없어서 예약을 빨리 해야 한대."
"전기도 끊긴다고 하니까 랜턴도 준비해야 해."
"식당이나 그런 게 아무것도 없대. 먹을 음식이랑 버너, 코펠도 준비해야겠다."
"가서 낚시 해야지. 낚싯대도 챙겨."
"어… 노을이나 이런 거 찍으려면 삼각대 안 필요해?"

이렇게 시작된 소매물도 여행의 짐은 내가 해외에 몇 달간 돌아다닐 때 쌌던 짐보다 무거웠다. 아무것도 없다는 섬에 들어가는 짐의 무게는 도시에서 누리던 것들을 변함없이 들고가려는 우리 욕심의 무게와 같아 보였다. 큰 배낭을 매고 한쪽 옆에는 삼각대를 다른 옆에는 낚싯대를 꼽고, 손에는 물과 부식들을 바리바리 들고 소매물도로 들어가는 배를 탔다.

통영에서 배를 탄 지 한 시간이 조금 넘을 때 소매물도가 나타났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높은 언덕을 올라가자니 짐들이 몸을 뒤쪽으로 잡아당긴다. 민박집에 도착하고 짐을 풀고 나니 높은 민박집 위에서 내려다보는 선착장 앞바다의 모습이 너무 아늑하고 아름답다.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이곳에서만 가만히 앉아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오기 전의 준비물들로 인한 걱정들, 오면서 부대낀 무거운 짐은 내려지고 눈과 마음은 온전히 바다와 그 아름다움에 취해 버렸다. 햇살을 받고 반짝이는 바다와 높은 둔 턱에 싱그러운 초록색의 풀들이 그냥 앉아서 바라보기만 해도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 마을에서 내려본 바다
ⓒ 김동희
"여기 너무 예뻐요. "
"여기가 이뿌면 다른 데는 어쩌코? 여기는 하나도 안이뿌다. 뒤에 가봐라."

매일 바라보는 바다는 민박집 할머니에게는 예쁘지도 않은 삶이지만 처음 본 우리에겐 그것조차 아름다운 비경이었다. 뒤에는 얼마나 아름답길래…. 낚시를 위해 앉아 있는 갯바위 위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고 앉아 있는 것 자체도 편안하고 고기가 잡히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았다.

등대섬을 높은 곳에서 보기 위해 산책 삼아 나간 길에 만난 꽃들, 야생 열매의 상큼한 맛, 시원한 저녁 바람이 그곳에 있었고 아름다운 등대섬이 한눈에 바라보는 언덕에서 그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세상에서 복닥거리던 잡념들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 민박집에서 바라본 바다
ⓒ 김동희

▲ 낚시의 기쁨도 느낄 수 있다.
ⓒ 김동희
다음날은 아침일찍 등대섬으로 갈 채비를 했다. 낚시대, 사진기 그리고 점심 도시락을 챙겨 그 전날 저녁 산책길과 다른 길로 가기로 했다. 힐하우스를 기점으로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니 등대섬의 옆이 보이기 시작한다. 길이 너무 가파르고 제대로된 길이 없다. 그저 가는 길에 만나는 건 염소똥과 벼랑 위에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염소들이 전부다.

한참을 아슬아슬 내려가니 푸른 초원이 보이고 캠핑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리고 하나의 언덕을 올라가니 그곳에서 보는 등대섬은 정말 절경이다. 위험하다는 생각을 잊고 벼랑 쪽으로 계속 옆으로 이동하면서 등대섬을 바라본다. 선착장 앞 바다는 하나도 안 예쁘다는 할머니의 말이 생각이 난다. 이른 수영을 하는 사람들, 낚시 배로 갯바위를 찾아가 낚시에 여념이 없는 사람 그리고 저 위에는 등대섬을 가기 위해 산을 넘고 있는 사람들이 알록달록 보인다.

▲ 소매물도 어느 언덕
ⓒ 김동희

▲ 옆에서 바라본 등대섬
ⓒ 김동희
우리 또한 등대섬으로 가기 위해 그 위로 올라간다. 저녁과 다른 등대섬이 보인다. 파란 바다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해초들의 깊숙한 곳까지 다 보여준다. 파란 바닷속에 갈색의 해초가 더 더욱 선명해 보인다. 물길이 열리는 시간이라 몽돌길을 걸어 등대섬으로 가는 사람들이 이어진다. 큰 돌들이 파도에 갈려 너무 부드럽다. 아이들은 빵게나 고동을 따는데 여념이 없고 맨발로 몽돌길을 걸어가니 그 기분도 좋다.

▲ 트레킹 중 만난 비경. 물 색이 아름답다.
ⓒ 김동희
등대섬을 돌다가 낚시를 위해 갯바위로 내려갔는데 한 부부를 만났다.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어서 물어보니 소라를 따고 있다고 한다. 그 분들을 소라며 전복이며 성게 등을 따느라 해초 부근을 헤치고 다녔다. 낚시를 위해 내려간 우리는 어제 낚은 물고기도 있고 '전복과 소라'라는 말에 낚싯대를 버리고 그 분들 옆을 졸졸 따라다니며 전복, 소라 찾기에 나섰다.

하지만 나에게 발견되는 전복과 소라는 전복도 소라도 아닐 것이다. 전복과 소라가 나 같은 사람에게 발견될 정도로 녹녹한 것들이 아닐 테니…. 애꿎은 돌 미역만 따서 씹어 먹었다. 짭조름하고 미끈덩한 미역의 씹는 느낌이 좋았다.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또한 선착장에서 먹은 신선한 해삼과 멍게로 전복과 소라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 등대섬. 물 시간을 맞추면 걸어서 갈 수 있다.
ⓒ 김동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마을로 돌아오는 시간은 짧은 시간이지만 더 푸르고 진한 소매물도의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더 높고 날카로운 절벽들도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이 없어 소매물도 보트 투어를 못했지만 아름다운 숨은 비경을 보려면 꼭 한 번은 해 봐야 할 것 같다.

바람이 마을 쪽을 향해 불고 하늘이 물들고 깜깜해질 때 마을에서는 다른 즐거움들이 기다린다. 이름도 모르고 처음 봤지만 같은 곳을 왔다는 것만으로 친해진 사람들과의 즐거운 저녁식사, 한쪽 팀에서 고기를 준비하고 우리는 매운탕을 준비하고 도란도란 모여 소라를 구워 먹으며 이야기하는 즐거움이 있다. 주인집 아저씨, 할머니와 마을 사람들도 모두들 살갑게 우리를 대해준다. 자연뿐만 아니라 사람도 여행의 느낌을 좋게 하는 건 분명하다.

"다음에 올 때는 이렇게 붐빌 때 말고 연휴, 여름 휴가 이럴 때 말고 와요. 그래야 더 좋아요. 이렇게 많이 오면 누가 누군지도 기억도 못하고 잘 챙겨주지도 못한다니까요."

추운 바람에 몸을 녹이기 충분한 국화차를 넉넉히 주시면서 아주머니께서 말을 건다.

"가을에 와요. 국화가 정말 예쁘게 피면 정말 장관이에요. 이 차에 들어 있는 국화도 다 등대섬에서 따서 말린 거예요."

배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할머니 한 분이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한다.

"수고했어. 이런 불편한 데 와서 있다 가느라고."

지나가는 민박집 주인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여행의 끝을 장식한다. 그들의 마음으로 내 여행의 끝은 아름답게 물들었다. 자연이나 사람이나 모두 아름다운 섬, 그곳이 바로 소매물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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