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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회현상에는 동전의 양면이 있어서 취할 점과 배제할 부분이 상존합니다. 사물을 통일적이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그러므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심이 잡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세상을 살아가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젊은이들은 인생관가 세계관을 너무 한편에 치우치지 말고 폭 넓고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내가 이 책의 곳곳에서 강조했거니와 래디컬하게, 하지만 익스트림하지 않게 세상을 대할 때 그것은 가능할 것입니다. -책 본문에서-

<베를린에서 18년 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를 알게된 것은 소설가 공지영을 통해서였다. 창작과 비평 123호에 수록되었던 <네게 강 같은 평화 - 베를린 사람들 2>는 어수갑의 저서와 만나기 위한 가교 역할을 해 준 셈이다. 소설에서 임수경의 방북을 주선했던 실제 주인공이 어수갑이었기 때문이다. 창작과 비평에 연재되었던 공지영의 소설은 2004년 10월 <별들의 들판>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우연의 우연이 만들어냈다고 할까. 사실 창작과 비평 123호(2004/봄호)를 사게 된 것도 부록으로 제공되는 제2회 대산 대학문학상 수상 작품이 궁금해서였는데, <베를린에서 18년 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까지 만나게 되다니…. 운명이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보다. 어쩌면 이렇게 명명하기를 좋아하는 나의 태도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시기 유학했다가 조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교수가 되었거나, 기업체의 간부가 되어 사회 각층에서 저마다 주류로 활동하고 있는데, 저자는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조국을 그저 짝사랑하며 이국에서 외로운 생활을 해야했다.

그 가운데 6년 동안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돌보았다는데 이 부분에서는 저절로 마음이 아릿해왔다. 저자는 동양인에다가 남자여서 그 일을 하는데 무척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스스로 '외국인 이주 노동자'라고 표현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나라에 들어와 산업 연수생이라 불리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대신해주러 그들은 가족을 떠나 먼 곳까지 왔는데,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생각하면 부끄러워진다.

지난 겨울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밤에 참석한 일이 있었다. 이주 노동자에 관심이 많은 후배를 따라 그곳에 가게 되었는데, 공간에 비해 사람수가 훨씬 많아서 제대로 공연을 볼 수는 없었지만,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그들이 손수 만든 모국의 다양한 음식들. 그들의 고단한 삶이 그들의 눈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듯 했다. 모임을 다녀오면서 아무쪼록 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고, 모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보던 기억이 난다.

저자는 대학원에서 법철학을 전공하고 더 많은 공부를 하기 위해 독일로 건너갔다. 몇 년 후 공부를 마치는 대로 다시 귀국할 예정이었는데 18년이 지나서야 고국 땅을 밟게 된 것이다. 저자의 마음 속에 담긴 회한을 무엇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인지 나는 점점 마음이 무거워져 갔다.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저자는 스스로 실패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성공을 위한 경영서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실패를 곱씹는 글을 읽어주는 독자에게 죄송하다'고 했지만, 나는 저자를 '살아있는 역사'라 부르고 싶다. 우리나라가 가야할 길이 아직 멀지만, 민주 사회로 가기 위한 과정에서 개인의 희생이 따라야 했고, 그 당사자 가운데 저자도 포함되었던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그에게 부채 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저자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 독일에서의 생활, 대학시절의 생활 등이 기술되어 있는 이 책에는 불온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지식인으로서의 고뇌가 그대로 배어있다. 사람에 대한 사랑, 민족에 대한 사랑, 하나님에 대한 사랑, 사랑만이 자신을 지탱해 주는 유일한 힘이라는 저자를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만나보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베를린에서 18년동안 부치지 못한 편지

어수갑 지음, 휴머니스트(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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