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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딸 민주예요. 나이는 세 살인데 19개월 됐었지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터 파는 짓'을 보여 줬는데, 금세 일어나 버렸어요. 그래서 할머니가 '사랑해요'하는 모습을 가르쳐 주었고, 그대로 따라 하는 거예요. 아마 민주도 자기 동생이 빨리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지 않나 싶어요.
첫째 딸 민주예요. 나이는 세 살인데 19개월 됐었지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터 파는 짓'을 보여 줬는데, 금세 일어나 버렸어요. 그래서 할머니가 '사랑해요'하는 모습을 가르쳐 주었고, 그대로 따라 하는 거예요. 아마 민주도 자기 동생이 빨리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지 않나 싶어요. ⓒ 권성권
"야, 난 옛날에 나흘 걸쳐서 널 놨어. 꼭 죽는 줄 알았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다르잖아.”
“그래도 얘 낳는 것은 다 똑같아.”
“아이, 몰라-아. 답답해 죽겠단 말이야.”
“너도 얘 둘 나면 내 심정 알 것이다.”
“…….”

그 무렵, 어찌된 일인지 딸아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뭐랄까. 자기에게도 관심을 가져달라는 그런 이야기였을까. 그러면서 딸아이는 집 사람도 아니고 장모님도 아닌, 내게 안기려 들었다. 눈치 빠른 나는 딸아이가 왜 그런지 알 수 있었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딸아이가 이런 걸 모르겠거니 생각했다. 어른들보다도 첫째 아이들이 먼저 안다고는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먹고 싸고 입는 것들이 평소와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또 잠잘 때도 예전과 똑같이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곧잘 잠들었다. 엄마 품에 더 안기려든다거나 뒤척이는 모습도 전혀 볼 수 없었다.

물론 둘째 아이를 갖은 지 두세 달도 채 되지 않아 터파는 모습을 보여 주긴 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터 판다’는 말을 들어 봤다. 이 말은 첫애가 동생이 세상에 나오기를 기다리며 하는 행동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데, 고개를 땅에 박으면서 엉덩이를 하늘로 쳐드는 모습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내가 알려주거나 텔레비전 같은 곳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내 딴엔 자기가 만들어 냈거나 타고난 습성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교회 다락방에서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딸아이가 그 모습을 하고 나서자 모두들 놀랐다. 눈치 빠른 할머니들은 ‘오라, 드디어 민주가 터를 파는구나?’ 이야기 했다. 그게 뭐냐고 나는 물었고, 그때서야 할머니들이 해 준 이야기를 통해서 그게 곧 동생을 보게 될 큰아이가 하는 행동이란 걸 알게 됐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딸아이는 터파는 짓을 하나 더 했다. 줄이라든지 옷이라든지 손에 걸리기만 하면 자기 목에 거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딸아이 목을 거치지 않는 게 하나도 없을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딸아이는 히죽히죽, 멋진 웃음까지 선물했다.

이젠 마지막이라도 된다는 듯이, 오늘 점심을 먹은 후에 딸아이는 터파는 모습을 장하게 보여줬다. 그것도 마당 시멘트 바닥에서였다. 할머니가 머리를 곱게 땋아 주었는데도 전혀 아랑곳없이 땅에다 박고서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었다.

참 재미있고 짓궂은 모습이었다. 어떻게 시멘트 바닥에다 머리를 박고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인지…. 그러면서도 딸아이는 제 속으로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싶었다.

'이게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터파는 모습이에요. 그러니까 빨리 빨리 동생을 낳으세요. 나도 참을 만큼 참았단 말예요'

어쩌면 딸아이는, 그래서 엄마와 할머니보다도, 그리고 나보다도 먼저 동생을 보고 싶은 까닭에 그런 모습을 보여 줬지 않나 싶다. 제발 덕분에 하루빨리 둘째가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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