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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석호에 조성한 샤크 베이에는 상어가 유영하고 있다
인공석호에 조성한 샤크 베이에는 상어가 유영하고 있다 ⓒ 정철용

귀여운 펭귄 무리들이 서로의 깃털을 쪼고 있다
귀여운 펭귄 무리들이 서로의 깃털을 쪼고 있다 ⓒ 정철용
그래도 첫 번째로 구경한 '씨 월드'는 제법 볼 만 했다. 해상뿐만 아니라 해저에서도 대형 유리를 통하여 상어와 갖가지 열대어들을 관찰할 수 있도록 인공 석호에 조성한 샤크 베이(Shark Bay)에서 우리는 한참 머물렀다. 북극곰과 펭귄들의 재롱에도 눈을 맞추었고, 쉽게 볼 수 없는 바닷새인 펠리컨과 이곳 사람들이 '돼지(Pig)'라고 부르는 바다소도 만났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즐겁게 구경한 것은 하루에 한 두 차례 열리는 물개 쇼와 돌고래 쇼였다. 개장 시간인 10시 즈음부터 '씨 월드'에 들어와 있던 우리는 이 두 쇼를 놓치지 않았다.

물개 쇼를 먼저 보았는데, 조련사에게 뽀뽀를 하기도 하고 물구나무서기를 하기도 하고 둥근 공을 주둥이로 받기도 하는 등 익살스럽게 재롱을 떠는 물개의 묘기에 동윤이는 웃음을 그치지 않았다. 작은 펭귄을 주인공으로 한 스톱워치 애니메이션인 '핑구' 시리즈에 나오는 핑구의 친구 물개 '로빈'을 보는 듯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동윤이도 물개 쇼를 보는 동안, 어렸을 때 즐겨보았던 애니메이션 '핑구'를 떠올렸다고 한다.

물개 쇼에서 물개가 공을 주둥이로 받는 묘기를 보여주고 있다
물개 쇼에서 물개가 공을 주둥이로 받는 묘기를 보여주고 있다 ⓒ 정철용
그런데 나는 거기에 덧붙여서 잊고 있었던 옛날 추억이 하나 떠올랐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내가 국민학교 3∼4학년쯤이었을 무렵으로 여겨지는데, 신세계 백화점 옥상에서 물개 쇼를 보았던 기억이 갑자기 되살아났다.

햇살이 따가운 여름이었고 어린 두 사촌 동생과 숙부님 내외분과 함께 나섰던 가족나들이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기억 속에 보이는 얼굴은 어머님(숙모님)뿐이다. 분명 손님들을 끌기 위한 판촉용 행사였을 테니, 그 규모나 내용이 시시했을 것인데도 동물원 구경도 제대로 못해 본 어린 내게는 몹시도 신기한 구경거리여서 어머님과 눈을 맞추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생각해 보니 동윤이도 TV로는 보았을지 모르지만 물개 쇼를 직접 현장에서 제 눈으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러니 저렇게 신기하고 재미있겠지.

물개가 물구나무서기 자세를 취해 꼬리로 인사를 건네고 있다
물개가 물구나무서기 자세를 취해 꼬리로 인사를 건네고 있다 ⓒ 정철용
그렇지만 단지 인간에게 좋은 추억을 남겨주기 위하여 하나의 볼거리 쇼로 전락해버린 자연과 그 자연 속의 동물들의 운명을 생각하면 그다지 유쾌한 기분만은 아니었다. 인간이 자연을 그리고 그 자연 속의 동물들을, 자신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만나기 위해서 만든 것이 바로 동물원이고, 동물들을 조련시켜 펼치는 쇼기 때문이다.

물개 쇼나 돌고래 쇼도 인간적인 방식으로 동물들을 조련한 흔적이 역력했다. 하지만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맹수들의 쇼나 코끼리 쇼에서 느껴지는 동물들의 수동적이고 절망스런 몸짓과 눈빛은 보이지 않아서 다행스러웠다. 돌고래의 경우에는 오히려 즐거움에 어쩔 줄 몰라하며 쇼를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돌고래 쇼에서 돌고래들이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고 있다
돌고래 쇼에서 돌고래들이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고 있다 ⓒ 정철용
신이 나서 물살을 가르며 유영하고, 거꾸로 다이빙하듯이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고, 수중발레하듯이 몸을 반쯤 수면 위로 내놓고 춤을 추기도 하는 돌고래들의 모습은 즐거움과 기쁨에 넘친 자발적인 동작이었지, 조련사가 던져줄 먹이를 기대하며 마지못해 하는 몸짓이 결코 아니었다.

함께 쇼를 펼친 조련사조차도 인간이 아니라 한 마리 돌고래처럼 여겨져서, 여자 조련사가 두 마리 돌고래의 등에 올라타 선 채로 수상스키 타듯 질주하는 모습은 내게 참으로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 모습은 이미 조련사와 동물이라는 관계, 즉 명령하고 복종하는 관계를 벗어나 있었다. 채찍의 위력도 아니고 먹이의 유혹도 아닌 방식으로 맺어진 관계. 내가 그 모습에서 인간과 동물이 맺는 우정의 방식까지도 조금 엿본 것 같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조련사를 등에 태운 돌고래 두 마리가 수상스키 나아가듯 물결을 가르고 있다
조련사를 등에 태운 돌고래 두 마리가 수상스키 나아가듯 물결을 가르고 있다 ⓒ 정철용
나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뉴질랜드 영화 <웨일 라이더>를 떠올렸다. 해변에 좌초한 고래 떼를 구하기 위한 마을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래들은 죽어나간다. 그런데 고래의 말을 알아들을 줄 아는 나이 어린 한 마오리 소녀가 모래밭에서 꼼짝도 않는 가장 몸집이 큰 우두머리 고래의 등에 올라타는 순간 고래는 눈을 번쩍 뜨고 마침내 바다 쪽으로 몸을 돌린다. 푸른 바다 물살이 몸을 집어삼키는 데도 고래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고 착 달라붙어 있는 소녀를 등에 싣고 우두머리 고래는 바다를 유영해 나간다.

그 감동적인 영화 속 장면은 돌고래들이 조련사를 자신의 등에 태우고 달리면서 연출해내는 수상스키 장면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이마저도 단지 볼거리 쇼라고만 한다면 그 돌고래들의 기쁨을, 그리고 돌고래들과 맺은 조련사들의 우정을 모독하는 것처럼 여겨져 나는 그들에게 아낌없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글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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