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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내려다 본 풍경
지리산에서 내려다 본 풍경 ⓒ 정명화
처음 산에 오를 때는 어서 해가 뜨기만을 기다렸다. 불을 밝혔으나 산 속은 칠흑같이 어두워서 빛이 지나가는 주위로 불빛이 그다지 넓게 흩어지지 않았다. 행여 발을 헛디딜까, 산짐승 같은 건 나타나지 않을까 공연히 겁이 났다. 물론 전국에서 야간산행을 위해 모여든 등산객이 많아 마음이 놓였지만, 두려운 마음이 쉬이 가시지는 않았다.

산에 오를 때는 참을 수 있을 만큼만 힘들었다. 그러나 천왕봉에서 내려와 세석평전으로 가는 길과 세석평전에서 거림골로 내려오는 길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가만히 서 있어도 다리가 후들거렸고,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지리산에 다녀온 지인들이 모두 '죽을뻔 했다'기에 단단히 각오를 하고 왔지만, 나 역시 그들의 생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철쭉은 참꽃과 비슷하지만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어 개꽃이라고도 함
철쭉은 참꽃과 비슷하지만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어 개꽃이라고도 함 ⓒ 정명화
너무나 힘들게 내려오는 내게 어느 할아버지가 나무로 된 지팡이를 주셨다. 지팡이가 있으니 한결 걷기가 편했다. 그 할아버지가 어찌나 고마운지 그 분이 아니었다면 주저앉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지팡이를 짚어가며 걷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막내 동생은 참 우스웠나 보다.

"할매, 잘 따라오고 있나?"를 연발하며 나를 놀려댔다. "그래, 세 발로 걸으니 좀 낫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도 다람쥐처럼 가뿐하게 하산하시는 것을 보니참으로 부끄러웠다. 추월에 추월을 당하고도 나는 힘을 낼 수가 없었다. 다행히 지팡이의 기를 받아 내려오긴 했지만 참 힘들었다.

산행을 했다는 것이 그저 꿈만 같다. 그 밤의 추위도, 손전등 불을 밝혀가며 밤을 새워 걷고 또 걸었던 일도, 고통스럽지만 일행들이 더 힘들 것 같아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키며 하산하던 일도, 걸어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던 길도.

온몸의 근육들이 파업이라도 하는 듯,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나 지긋한 기쁨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한없이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지리산의 정기를 받고 와서 마음이 넓어진 건 아닐까. 산행을 하며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표준어를 비롯해 다양한 사투리를 듣는 것도 즐거운 일 가운데 하나였다. 맑은 공기를 원없이 마시고, 땀도 원없이 흘려서 피부가 맑아진 것 같다. 마음 속의 묵은 때도 그 땀에 씻겨 내려간 듯, 마음이 가뿐하기만 하다. 또 지리산에 다녀오니, 어떤 산이든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산에 오르는 기분, 산에서 바라본 풍경들, 산에서 만난 사람들, 산에 있던 초록의 생명들… 이 모든 것을 가슴에 담아왔고, 동통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거르지 않고 떠올리게 될 것 같다. 그로 인한 마음의 여유는 서비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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