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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초부터 이따금 아내를 따라 장에 가면, 아내는 농산물을 살 때에 값을 깎는 걸 일체 보지 못하였다. 특히 할머니들이 길바닥에 펴놓고 파는 푸성귀를 살 때에는 행여 한 줌 더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내가 곁에서 한 줌 더 달라고 하면, 아내는 나에게 "우리가 좀 덜 먹지 그걸 더 달란다"고 나무랐다.

막상 텃밭 농사를 지어 보니까, 할머니들이 장에다가 파는 푸성귀들은 시장에 나오기까지 엄청 손이 많이 간, 농사꾼의 땀과 정성으로 가꾼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값은 그분들의 수고에 견주면 무척 쌌다. 아마도 아내는 그런 사실을 일찍부터 알았나 보다.

▲ 시장 들머리 길거리에서 당신이 가꾼 남새를 파는 할머니
ⓒ 박도
나날이 다달이 나아진다는 뜻으로 '일취월장(日就月將)'이라는 말이 있다. 학습이란 오늘보다는 내일이, 올해보다는 내년이 나아지게 마련으로, 이를 한자말로 하면 '경륜'이라 하고, 우리말로 하면 '나잇값'이라고 하겠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텃밭 농사를 짓고 있는데, 올 농사가 지난해보다 낫기는커녕 더 시원치 않다. 텃밭의 남새들은 주인의 정성과 땀으로 크나 보다. 아마도 올해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지난해보다 내 정성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일취월장을 역행한 셈이다.

곯아 죽기 직전의 고구마 순

서울 나들이로 며칠간 집을 비운 뒤 돌아와서 텃밭에 나가자 말씀이 아니다. 호박도 가지도 고추도 밭에다가 옮겨 심은 지 보름도 더 지났는데도 땅내를 맡고 뿌리를 내리지 못한 듯, 여태 모종 때와 별반 다름이 없이 비실비실하다.

▲ 모종을 낸지 보름이 지나도록 뿌리를 내리지 못한 고구마순. 물을 주자 금세 생기를 찾았다.
ⓒ 박도
특히 고구마 순은 곯아 죽기 직전이다. 지난해 경험을 살려서 올해는 비를 맞으면서 밭에다가 심었는데도 그렇다. 올해는 밭두둑에 비닐을 덮지 않았기에 가뭄을 타서 그런가 보다. 옥수수도 발아율이 지난해보다 낮다.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서 물뿌리개로 물을 떠다가 고구마 순과 고추 상추 등 남새밭에도 주었다.

한창 물을 주고 있는데 앞집 노씨 부인이 와서 "왜 밭두둑에 비닐을 덮지 않았느냐"고, 비닐을 덮지 않으면 가뭄도 더 타고 악바리처럼 돋아날 잡초를 어찌 이겨낼 거냐고 걱정을 하고는 돌아갔다. 사실 지난해는 비닐을 덮고도 나중에는 헛골(골과 골 사이)에 나는 잡초에 두 손 들지 않았던가.

요즘은 어딜 가도 밭농사에는 비닐을 덧씌우고 농사를 짓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산골조차도 비닐 공해가 엄청 심하다. 조그마한 내 텃밭마저도 덩달아 비닐을 씌우기가 죄스러워서 올해는 그냥 노지(맨땅)에 씨를 뿌리고 모종을 내어 농사짓고 있다.

농사꾼은 인건비를 따 먹는다

얼치기 농사꾼의 영농비를 계산해 보자. 몇 골 심은 고구마의 예를 들어 보면, 밭가는 삯 1만원, 퇴비 두 포 5000원, 고구마 모종 두 다발 9000원으로 현재까지 모두 2만4000원이 들어갔다. 올 가을까지 잘 농사지으면 다섯 박스 정도 수확할 건데 지난해 시세로 치면 한 박스에 1만5000원으로, 모두 7만5000원의 수입이 될 거다. 여기에 모종을 심고 김을 매주고 고구마를 캐는 품삯은 계산치 않았다.

아마 다른 작물도 비슷할 게다. 농사꾼의 얘기를 들어 보면 영농비가 보통 드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동안 농사꾼들은 인건비를 따 먹었다는데, 요즘 농사는 기계(트랙터)와 비닐, 비료, 농약으로 하니까 그 모두가 돈이다.

▲ 상추 사이로 떼 지어 돋아나는 잡초들
ⓒ 박도
그래서 농사일에 들어가기 전에 조합(농협)에서 영농비를 대출 받아서 농사를 짓기 마련이다. 그나마 일기가 순조로우면 크나큰 다행이지만, 그러면 풍작으로 작물 뽑는 삯도 물류비도 나오지 않아서 밭에다가 갈아엎기 일쑤라고 한다. 그러면 조합에서 빌린 돈은 그냥 빚으로 남기 마련이라고 했다.

한 시간 남짓 텃밭에다가 한 차례 물을 주고나자 비실비실하던 작물들이 생기를 되찾는 듯 파릇파릇하다. 그런데 농작물 사이로 잡초가 새파랗게 떼 지어 돋아나고 있다.

과연 내가 저 놈들을 이길 수 있을지, 아니면 서로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태평 농법으로 함께 더불어 살면서 유유자적해야 할지, 미리 장담할 수가 없다.

저녁에 천안 근교에서 텃밭을 가꾸며 지내는 선배가 이런저런 안부를 하면서 그동안 터득한 말을 전했다. 나도 그 말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농사는 아무나 짓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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