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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위쪽에서 가까이 보면 매발톱을 닮았다고 해서 매발톱꽃입니다.
꽃 위쪽에서 가까이 보면 매발톱을 닮았다고 해서 매발톱꽃입니다. ⓒ 김규환
꿀맛 봄비가 내리자 내 마음도 부화뇌동했다. 심산과 산채가 나를 부르니 이런들 어떨까 보냐. 거칠어진 나물이 야들야들 부드러워졌을 테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목비(木碑)나 다를 바 없는 것 아닌가.

동행자를 모집하여 새벽 같이 서울을 빠져나갔다. 집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하여 우리만 아는 산자락에 접어들자 자욱한 안개 오리무중이다. 막상 숲에 몸을 던지자 풋나무와 자작나무 가녀린 가지에 새 옷이 몰라보게 하늘을 채우고 있었다. 싱그럽다 못해 자지러지게 보드라우니 아무 거나 갖가지 나뭇잎 쏙쏙 따서 차를 만들고 싶다.

다시 가는 길이라 한결 가볍다. 산새 소리도 잠잠하다. 부서지는 계곡 물안개와 폭포수 소리에 아침밥을 주섬주섬 밀어 넣었다. 금낭화 그 슬픈 밥풀은 사라지고 다음 세대를 위한 씨앗을 머금고 있다. 더 오르자 매발톱꽃이 우릴 반겼다.

내를 건너기를 반복하며 산에 올라도 취나물, 다래순, 홑잎, 고추잎, 누룩취, 각시취, 미역취는 안중에도 없다. 오갈피마저 우리 관심을 끌지 못했다. 에오라지 곰취 생각밖에 없었다. 곧장 서둘러 정상으로 향했다. 며칠 전엔 고사리 비슷한 걸 보고 곰곰 생각해 보았지만 떠오르지 않더니만 오늘은 '관중'이라는 말이 금세 떠올라 기분이 좋았다.

습기가 많아 돌이끼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시원한 석간수(石間水)를 몇 번이나 마셔댔는지 모른다. 몸이 식기 전에 올라야 1400m 고지까지 지치지 않고 오를 수 있다. 어느새 약한 몸을 지탱하고 있는 도시 사람이 된 우리는 짬짜미 물만 만나면 쉬어 주었다.

산에서 밥을 두번이나 먹었답니다. 아무렇게나 싸도 산나물 한가지 뜯어 볶은 고기 올려 집된장에 싸면 기가 막힙니다.
산에서 밥을 두번이나 먹었답니다. 아무렇게나 싸도 산나물 한가지 뜯어 볶은 고기 올려 집된장에 싸면 기가 막힙니다. ⓒ 김규환
박차를 가하여 1000m 대를 오르자 누군가 다녀갔다는 흔적이 역력하다. 양평 용문을 지나면서 라디오에선 "산나물 불법 채취꾼이 극성을 부린다"는 내용의 방송이 꽤 긴 시간 지속되었다. 준비된 발언도 빠트리지 않았다. 웰빙 바람을 타고 한 움큼 뜯어오는 건 고사하고 전문꾼들이 며칠 여관에 투숙하여 산에 진을 치고 뿌리째 캐간다는 내용이었다.

"어, 어떤 놈이 바닥을 아작을 내버렸네."
"저것 봐. 쓰레기 봉지도 바위 밑에 있잖아. 페트병도 보이고."
"여기서 뭘 캐겠다고 이리 휘저어 놓았을까요?"

아직 많은 사람 중에 간혹 몇 사람들이 못된 짓을 일삼고 있으니 유독 불거져 보였다. 머리털 몇 개와 피부에서 떨어지는 각질만 떨어져도 산과 산신령, 자연과 나무와 산짐승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바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도리다.

산길을 따라 마구 헤집어 놓고 깊은 곳은 한 자 가웃이나 파들어 갔다. 몹시 심사가 뒤틀렸지만 언젠가 만나면 강력히 항의를 하겠다고 벼르며 목적지를 향해 갔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끼리 오랜만의 산행이다. 3년여 다져진 우정이기에 서로 몸 상태를 봐가며 배려하는 마음으로 서서히 대평원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관중'이라는 고사리의 일종인데 고루 잘 퍼져있어 관상하기에 참 좋습니다. 때에 따라 생각이 날 때도 있고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답니다.
'관중'이라는 고사리의 일종인데 고루 잘 퍼져있어 관상하기에 참 좋습니다. 때에 따라 생각이 날 때도 있고 전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답니다. ⓒ 김규환
이제 막바지 가파른 언덕배기에 있다. 몇 주 전엔 하늘이 열려 있었는데 어느새 졸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자작나무, 단풍나무, 엄나무가 뒤섞인 숲이 제법 짙푸르러 있다.

"당귀가 있는 걸 보니 이쯤인가 싶은데…."
"조금만 더 올라가면 엄나무 쓰러진 곳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돼요."
"기억력 한번 좋구만."
"두번째라 이렇게 마음이 놓이는군요."
"여기서부터 곰취와 참나물, 수리취 밭입니다. 옆에 오셔서 잘 익혀두세요."

분명히 지난번에 들어갔던 곳이다. 곰취가 몇 개 보이니 이제 제법 올라와 있을 성싶어 마음이 들떴다. 장아찌를 맘껏 실험해 보고 싶었다.

"형님, 이건 참나물입니다. 곧장 올라가면 참나물이 피나물 옆에 지천이니 욕심 내지 마시고 곰취나 맘껏 뜯으세요."

웬걸, 사방을 뒤지고 다녀도 우리가 찾던, 어찌나 많던지 지려 버린 곰취는 온데간데 없다. 급기야 발만 조금 빗겨 디뎌도 땅 껍질이 확 패이던 나물 밭엔 정말이지 수상하고 또렷한 흔적이 있었다. 한 무리가 떼를 지어 가리지 않고 바닥을 도려내듯 난장판을 만들어 놓았다. 밭을 갈아 놓듯 망쳐 놓았으니 이를 어쩔 거나.

용케도 잘 쑤셔 박는 재주를 타고난 모양입니다.
용케도 잘 쑤셔 박는 재주를 타고난 모양입니다. ⓒ 김규환
얼추 곰취로 묵직해야 할 배낭은 텅 비어 있었다. 발 빠른 일행 중 한 명이 채취를 포기하고 우릴 조용히 불러 모았다.

"저기 사람들이 있어요."
"저 사람들이 다 캐 버린 걸까?"
"여기 망태기랑 밥도 싸온 걸 보니 전문 채취꾼이 틀림없어."

단정을 내렸다. 확신이 들었던 건 그 높은 곳에 인기척이 들리는데도 주위만 빙빙 맴돌 뿐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저 망태기를 가져가 버릴까요?"
"냅둬요. 더 이상 못 캐게 말려야지."
"낫도 들고 있으니까 조심히 이야기해야 될 것 같은데요."

마침 잘 터지는 휴대 전화도 있겠다 가까운 파출소라도 연락을 취해야겠다는 맘이 간절했다. 더 이상 산림자원을 망가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우리가 왔다는 소리로 "우~"를 연발했다. 이제 그들도 우리가 왔다는 걸 알고 더 이상 하지는 못할 거요.

"안되겠어요. 밥이나 먹고 딴 데로 가봅시다."
"저 사람들이 분명해."

정상에 도착하기 30분 전까지 물이 있었답니다. 습기가 넉넉해서 고사리와 이끼가 잘 자랍니다.
정상에 도착하기 30분 전까지 물이 있었답니다. 습기가 넉넉해서 고사리와 이끼가 잘 자랍니다. ⓒ 김규환
밤새 준비한 밥 보따리를 꺼냈다. 지난 번처럼 곰취에 싸먹을 수는 없었다. 참나물과 볶아온 돼지고기, 집된장과 고추장, 밥, 나물을 놓고 소주 한 병을 균일하게 나눴다. 분이 풀리지 않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이땐 술이나 몇 잔 더 먹어야 이런 볼쌍 사나운 꼴을 더 이상 보지 않겠다는 심정이었다.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모르도록 심란하다. 세 사람은 목울대까지 화가 치밀어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뭐 할라고 이리 깊게 팠지. 곰취고 뭐고 막무가내로 다 캐갔네. 여기도 봐요 왜 이렇게 깊게 파 버리냐 이거야?"
"아침 방송이 허투루 내보낸 건 아니란 생각이 드네."
"저 뿌리를 캐서 뭐해? 정히 그리 필요하다면 두어 뿌리 캐든가 씨를 받아 2, 3년 두고 조성하면 될 걸 필시 업자들에게 넘기겠다는 거겠지요."
"허탈합니다. 참 사람들 대단하다니깐요."

집에 있는 밥통이 작아서일까. 나는 밥을 두 번이나 해서 아침밥으로 조금 남겨 두고 무지막지하게 담아 왔다. 막상 먹어 보니 절반 가량이나 남았다. 입이 까칠하여 다들 밥 먹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마침 멀지 않은 곳에 두 사람이 밥 때가 되었는지 아지트로 돌아왔다.

"아까 보니까 저 사람들 술병이 두 개나 있던데 하나만 나눠 먹자고 해봅시다."
"그럼 누가 갈 것인데요?"

고원 평원엔 나무 아래가 모두 나물밭입니다. 피나물, 당귀, 취나물, 얼레지, 곰취, 참나물이 많습니다. 정상에 머무르는 시간은 오래지 않아 아쉽습니다. 더 놀다 와야 되는데...
고원 평원엔 나무 아래가 모두 나물밭입니다. 피나물, 당귀, 취나물, 얼레지, 곰취, 참나물이 많습니다. 정상에 머무르는 시간은 오래지 않아 아쉽습니다. 더 놀다 와야 되는데... ⓒ 김규환
연장자가 갈 것인가, 모임을 주선한 내가 갈 것인가, 총각이 가야 한다는 분분한 논쟁이 길어지자 내가 발 벗고 나서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가야 산 전체를 뒤집어 놓은 정체, 장본인에 대해 조금이라도 파악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더군다나 한 모금씩밖에 먹지 않은 소주에 대한 생각도 내 발길을 옮기는 데 주저함이 없도록 작용했다.

"저…. 나물 많이 뜯으셨어요?"
"별롭니다."
"무슨 나물인데요?"
"참나물이래요."
"지난번에 왔을 때는 곰취도…."
"몇 사람이나 다녀갔더랬어요. 근데 어디서 오셨습니까?"
"예, 인제에 아는 형이 있어서요. 자주 올라오시는가 봅니다."
"아니요, 우리도 이번이 처음이라우."
"그건 그렇고 여기 땅에서 뭘 캤을까요?"
"아 그거요. 멧돼지가 지렁이하고 굼벵이 잡아먹을라고 막 뒤지고 다닌 거래요."
"저…. 저거, 저희들에게 소주 한 병 나눠 주시면 안 될까요?"
"우리도 다 먹었수다."
"두 병이나 있는데요."
"이건 물병인디…."
"예 알겠습니다."

돌아와서 물병이라고 하자 또 한 번 사람들 실망이 보통이 아니다. 아래서 먹고 우리처럼 한 병에 물을 담아온 모양이다.

밥을 먹던 중 작전 회의는 간단했다. 등줄기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서 곰취를 더 뜯고 서둘러 가자고 했다. 여전히 곰취는 보이지 않아 피나물보다 더 웃자란 키가 크고 보랏빛이 한결 더 진해진 참나물로 방향 선회를 했다. 살짝 뜯긴 피나물에선 애기똥풀에서 노란 물이 흐르듯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멧돼지 발자국이 쉬지 않고 너른 들판을 휘저어 놓아 상심했고 오해했답니다. 한 무리가 열댓마리가 넘으면 그토록 망가뜨리는 모양입니다. 어찌 사람이 그런일을 하겠습니까.
멧돼지 발자국이 쉬지 않고 너른 들판을 휘저어 놓아 상심했고 오해했답니다. 한 무리가 열댓마리가 넘으면 그토록 망가뜨리는 모양입니다. 어찌 사람이 그런일을 하겠습니까. ⓒ 김규환
치밀어 오르던 화가 잠시 소강 상태로 접어든 건 오래지 않았다. 분명히 돼지 발자국을 본 것이다. 깊게 파들어 간 건 뿌리를 캐먹거나 습한 산에 벌레들이 깊숙이 박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물러섰다.

여전히 한 명은 별 변함이 없었다. 참나물을 뜯고 부드러운 당귀 잎을 따는 동안 수많은 발자국과 뒤집힌 땅, 깊게 파 놓은 현장을 보았다.

"백아님, 멧돼지 소행이 맞네요."
"어떻게 알았소?"
"분명히 발자국이 있더라니까요. 내 참."
"일 낼 뻔 했네. 참기를 참 잘 했소."

마음에 품은 오해를 사과하려고 해도 머리가 희끗한 현지 주민들은 보이지 않아 아쉬웠다. 이 좋은 산에서 마음에 감옥을 만들어 속단을 내렸다니 참으로 한심하다. 모든 걸 세상에 찌든 기준으로 바라보는데 익숙해져 있으니 어쩔거나.

내려오던 중 가장 재빠른 사람이 조그만 것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내 하나씩 돌린다.

"이게 뭔데요?"
"표고입니다."
"엉? 자연산은 처음 보는데. 정말 귀엽고 깜찍하네. 몇 개였소?"
"네 개인데 하나는 먹어 치웠어요 하하. 근데 갓도 향이 재배한 것과 다르지만 자루를 잘게 쪼개서 먹으니 엄청 쫄깃하네요."
"좋습니다. 그럼 내려가서 캔맥주나 사서 나 2할씩만 주고 안주 합시다."

잘 마른 옥수수를 튀겨놓은 듯하 자연산 표고버섯. 그 향기 맡은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잘 마른 옥수수를 튀겨놓은 듯하 자연산 표고버섯. 그 향기 맡은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 김규환
두 잔 이상 마시면 운전대를 놓아 버리는 게 내 원칙이다.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 않아 무척 지쳐 있었다. 가게가 보이자 잊지 않고 맥주 세 개를 사온다. 운전한다고 주지 않으려는 걸 에너지 고갈 때문에 운전하기 어렵다고 하자 마지못해 한 모금 마시는 걸로 하고 조금씩 건네줬다.

시원한 맥주와 엄지 손톱만한 표고버섯 향기가 진하게 퍼졌다. 참나무 향기가 송이버섯 솔향기 못지않게 그윽했다.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좋은 내음을 모시고 와서 나머지 하나마저 다섯 명이 나눠 먹으니 피로했던 하루가 그토록 좋을 수가 없었다. 고단한 하루였지만 이 작은 행복에 감탄했다.

마침 뜯은 참나물이 다소 억세져서 김치도 담그고 장아찌를 만들어야겠다.

벌써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에 들어간 금낭화.  곧 수확의 계절인 걸 보니 한두 달 여름 지나면 곧 가을, 겨울이 찾아 올 겁니다.
벌써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에 들어간 금낭화. 곧 수확의 계절인 걸 보니 한두 달 여름 지나면 곧 가을, 겨울이 찾아 올 겁니다. ⓒ 김규환
소용돌이에 빠진 무당개구리 일당. 예전엔 배가 빨갛다고 해서 빨갱이로 불렀던 개구리입니다. 양쪽으로 물이 세게 흘러 빠져나가지 못했는데 이번에 갔을 때는 없었답니다.
소용돌이에 빠진 무당개구리 일당. 예전엔 배가 빨갛다고 해서 빨갱이로 불렀던 개구리입니다. 양쪽으로 물이 세게 흘러 빠져나가지 못했는데 이번에 갔을 때는 없었답니다. ⓒ 김규환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요즘 내년에 귀향하여 일굴 산채원(山菜園 cafe.daum.net/sanchaewon)을 만들기 위해 전국 산야와 모범적인 마을을 찾아다니며 우리 산나물을 배우고 시험 재배를 하느라 바쁘다. 개인과 가족을 위한 참살이 보다는 한 지역을 일구고자 사회적 웰빙을 실천하려고 한다. 그간 <오마이뉴스>에 썼던 글 일부를 모아 <잃어버린 고향풍경1>(하이미디어 간)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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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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