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아빠는 꽃보다 아름답다> 표지사진
ⓒ 명진출판
여성지 출신 기자 조은미씨의 작품 <아빠는 꽃보다 아름답다>는 이 세상의 모든 삶을 짊어진 아빠들의 위로곡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돈을 벌어오는 존재. 딱 그 정도만 생각되는 요즘 아빠들을 위한 응원가로 충분하다.

열일곱 소녀 원미가 온 세상에 퍼뜨리는 아빠 사랑 바이러스. 루게릭병에 걸린 아빠를 돌보면서도 씩씩하고 화목하게 살아가는 원미 가족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그저 "아빠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원미의 고백은 부자 아빠만이 인정받는 이 시대에 진정한 아빠의 자리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원미의 아빠가 루게릭병 판정을 받은 것은 IMF시절, 회사에서 대기발령을 받은 직후였다. 루게릭병은 아빠의 손가락을 멈추게 하더니 스멀스멀 온몸으로 내려와 이제는 발가락을 제외한 온몸을 굳게 만들었다. 그러나 원미 가족은 아빠가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아빠의 병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아빠가 가족에게 있어 얼마나 소중하며, 사랑스러운 존재인지를 감동적으로 일깨우고 있다.

아직 열일곱 살이면 응석받이로 부모의 귀여움을 독차지 하거나 사춘기로 심한 반항 혹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걸어야 할 나이. 그러나 원미는 아빠의 병 때문인지 오히려 또래 다른 아이들보다는 좀 더 성숙해 있다. 특히 아빠의 병 때문에 울상을 짓거나 마냥 슬퍼하지 않는다. 원미는 남녀 차별성 발언을 하는 선생님에게 당당하게 반론을 펴기도 하고, 친구들의 고민 상담도 진지하게 해주는 명랑 소녀다.

원미네는 네 식구다. 아빠밖에 모르고 살아온 엄마는 변함없는 아빠 사랑으로 가정을 힘있게 이끌어 가고, 중3짜리 남동생은 여느 아이들처럼 게임에 푹 빠져 살지만 아빠의 작은 숨소리도 놓치지 않는 속 깊은 아이로 변해 가고 있다. 옛말에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하지만, 원미에게 아빠는 행복의 근원이요 희망이다.

"원미 엄마. 원미야" 아빠가 입을 열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아빠가 무슨 말을 할지 몰랐다. 아빠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미안하다, 민철아. 미안하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쓸어내리는데, 참았던 눈물이 울컥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못나서…, 아빠가 미안하다." 거기까지 듣고 나는 병실을 뛰쳐나왔다. 누구한테도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이 필요했다. 나는 나쁜 딸이니까. 아빠한테 소리나 질러대는 막돼먹은 딸이니까.

그날 밤, 아빠는 그동안 거부하던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목에 구멍을 뚫고, 기도를 절개했다. 기도를 절개하자, 아빠는 말을 못했다. 하지만 목소리 따위가 무슨 상관이야. 아빠는 놓아버리려던 생명줄을 다시 부여잡은 것이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 아빠는 끝까지 질기게 싸우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251쪽)


원미는 아빠와 함께 생활하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아빠는 사랑을 주고 또 받아야 할 대상이지 돈 벌어오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주변의 추천으로 지난해 심청 효행상 대상까지 받은 원미는 때로 즐겁고 때로는 주변의 칭찬에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아빠 곁에만 서면 언제나 씩씩한 '캔디'가 된다.

이 책은 한 가족이 겪는 평범한 투병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17세 소녀 신원미의 실화를 통해 부자 아빠만 존중받고 가난한 아빠는 천시 받는 우리 시대에 아빠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묘한 힘을 지닌다.

원미의 수채화 같은 이야기를 담은 책 <아빠는 꽃보다 아름답다>는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라는 이중 잣대의 그늘 속에서 진정한 아빠의 자리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다. 그러면서 아빠가 일방적으로 사랑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서로 사랑하는 존재라는 것을, 이 땅위에 모든 자녀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는 듯하다.

아빠는 꽃보다 아름답다

조은미 지음, 명진출판사(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칼럼 분야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보고 듣고 느끼는 그 순간순간을 말입니다.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지 얼마 되지도 못했지만 제 나름대로 펼쳐보고 싶어 가입 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