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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점자(72) 단골이 씻김을 하고 있는 모습.
ⓒ 진홍
이승에서 풀지 못한 죽은 사람의 원한을 풀어주어 즐겁고 편안하게 저승세계로 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굿을 '씻김굿'이라고 하지요. 원한을 씻어준다 하여 씻김굿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15일 국립국악원(원장 김철호) 별맞이터에선 별난 굿이 펼쳐졌습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전라남도 신안군 장산도의 세습단골(당골)들이 벌인 씻김굿은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작년 무박 3일간의 황해도 '꽃맞이굿'에 이어 두 번째로 마련한 초대무대였습니다.

'산씻김굿'이란 사람이 살아 생전에 미리 해주는 씻김굿입니다. 경상도에선 '산오구굿'이라고 한답니다. 불교의 생전 예수재에 해당하는 것으로 아마 불교의 영향을 받은 듯합니다.

산씻김굿은 자손들이 부모의 극락왕생을 위해 미리 생전에 해드리는 굿이기 때문에 경사스럽고 호강 받는 잔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돈 없는 서민들에겐 그저 '굿보고 떡 얻어 먹는' 자리였겠지요.

독특한 굿을 취재하거나 기록에 남기기 위해 수많은 카메라들도 관객들 사이에서 눈을 깜빡이며 신기하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 시공간적으로 제한된 무대에서 재현된 굿이지만 하나라도 놓칠새라 카메라가 즐비하다.
ⓒ 진홍
굿은 총 12거리로 '조왕(부엌)굿'에 이어 집안의 수호신에게 드리는 '성주(안당)굿' 그리고 늙어 죽어 가는 인생의 숙명을 서러워하는 내용의 '초가망석', '손굿(마마, 천연두를 손님이라고 부르는데 손님풀이라고도 함)' 등에 이어 '넋풀이(넋올리기)'를 합니다.

넋풀이는 본격적으로 천도의례로 들어가는 굿거리입니다. 이 날 서울 가락동에서 온 한정순(33)씨와 면목동에서 온 이양희(62)씨가 실제로 산씻김굿을 받았습니다.

'씻김'은 넋을 씻기는 정화의식으로 씻김굿의 가장 핵심적인 굿거리입니다. 생전에 지은 죄나 부정, 아픔을 쑥물과 향물, 맑은 물로 씻어냄으로써 더러움을 깨끗이 씻고 극락세계로 가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망자의 옷을 돗자리 속에 넣어 묶어서 세우고 그 위에 넋을 넣은 식기(죽은 사람의 머리를 상징)를 얹고 솥뚜껑(갓을 상징)을 덮은 후 엇모리장단에 맞춰 넋을 청하면서 씻김을 하기 시작합니다. 잘 씻어낸 다음 숟가락으로 솥뚜껑을 두드리는데 극락세계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 실제로 산씻김굿을 받고 있는 한정순씨와 넋풀이를 하고 있는 진금순 단골.
ⓒ 진홍
이렇듯 굿의 모든 행위는 생활주변의 도구를 이용하여 상징적으로 민중들의 이해와 요구를 표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라도굿은 중부 이북지방의 신내림을 받은 강신무들이 하는 작두타기 등이 없는 것이 다른 점이며 장신구가 흰색으로 이루어져 있고 무복 역시 흰색으로 꾸밈이 없어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섬지방의 향토성이 물씬 묻어납니다.

씻김이 끝나면 저승 가는 길을 닦아주는 '질닦음'을 하고 망자가 좋은 대접을 받았으니 감사하다는 표시로 즐겁게 놀아주고(망자놀이), 집안 구석구석을 돌며 잡귀잡신과 액을 물리치는 '오방신장'을 하고 마지막으로 잔치판에 꼬여든 잡귀잡신을 물리치고 망자의 넋을 해원하는 '해원굿'으로 끝을 맺습니다.

원래 씻김굿은 아침에 시작하여 밤을 새우고 동트기 전에 마치는 것이 보통인데 이 날 굿판은 무대라는 시공간의 제한성으로 생략되거나 축소된 측면도 있었지만 보기 힘든 굿을 재현해 준 것이어서 매우 의미 있는 자리였습니다.

▲ 삼현육각의 시나위 연주 장면. 왼쪽부터 이귀인(장구), 김용철(아쟁), 한용호(피리), 박영태(디금). 북 대신 징을 치고 있는 이는 강부자 단골.
ⓒ 진홍
특히 8대째 이어온 세습단골가의 후예인 이귀인(78·장구)씨와 그의 부인인 강부자(68)씨 그리고 이씨 집안의 장손며느리인 진금순(64)씨가 중심이 되어 펼쳐낸 신명이 굿을 한층 즐겁고 신바람나게 만들었습니다. 현재 전라도의 굿 현상은 강신무에 의해 거의 주도된다는데 세습무의 정통 전라도굿을 또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전라도 굿판에서도 보기 힘든 삼현육각 편성의 시나위(신앙우)를 재구성하여 보여 준 특별한 무대이기도 하였습니다.

신내림 받은 강신무의 굿은 어쩜 거역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여 좋든 싫든 명맥이 유지되겠지만 세습무는 이제 거의 대가 끊겨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고 말로만 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당국에서는 한국문화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굿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더불어 이에 대한 철저한 기록과 보존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관객들을 위해 워싱턴 주립대학 민족음악박사인 서마리아 교수가 해설과 영어 통역으로 일반인과 외국인들에게는 생소한 굿을 좀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게 해준 점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이렇게 좋은 특별한 굿판에 작년에 비해 일반관객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는 점은 일요일이자 석가탄신일이라는 점도 분명 작용하였겠지만 홍보 부족이거나 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 진홍
신명이 지펴 지팡이도 집어던지고 장구를 매고 흥이 난 할아버지와 허리가 휘어 더 작아지신 할머니 그리고 굿판의 상황에 따라 생기를 북돋아 준 만능 재주꾼 진금순씨, 이 신명을 누가 이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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