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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 내가 오늘 점심밥으로 무얼 먹었는지 아시오? 바로 굴국밥이라오. 짙은 굴향이 우러나는 진국에 파란 미역을 넣고 끓였는데, 간단하게 식사를 할 수 있어 우리 직원들이 자주 찾는다오. 값도 적당해서 한 끼에 4000원인데, 인심 좋은 주인양반은 추가되는 밥값을 따로 받지는 않는다오. 당신에게 언제 한 번 대접하리다.

30분 정도면 식사가 끝나는데, 그 후에 우리가 무얼 하는지 알아 맞춰보시오? 그래요, 산책이라오. 우리는 윗도리를 벗어 손이나 어깨에 걸치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오. 처음 만나는 교회 모퉁이에 빠알간 장미가 피어 있구려. 다시 유치원을 지나 학교 신축공사장, 사찰을 지나는데, 길가에 나팔꽃이 피어 있네요.

▲ 분홍빛 나팔꽃 한쌍
ⓒ 한성수
요즘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는 40대의 건강에 대한 것이요. 나는 '마늘이 좋다'는 직장동기의 말을 듣고 지금 마늘을 먹으려고 애를 쓰고 있어요. 왜, 일전에 당신에게 마늘을 해 달라고 조르기도 했잖소? 좀 좋아진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조금 더 먹어 볼 생각이오. 그러니 당신도 생마늘을 주든지 구워서 주든지 좀 신경을 써 주길 바라오.

▲ 붉은 장미
ⓒ 한성수
길가에는 아기의 뾰로통한 입술을 닮은 석류꽃이 봉오리를 맺고 있는데, 열매를 너무 많이 닮아 참 신기해 보인다오.

▲ 열매를 닮은 주황색 석류꽃
ⓒ 한성수
그런데 아주머니 몇 사람이 모자를 푹 눌러쓰고 우리를 지나치는구려. 아마 산에 갔다오는 모양인데, 동료들은 '저 아지매들은 무슨 복이 많아 지금 산에 갔다 오노!'라는데 꽤 부러운 모양이요. 맞벌이 하는 아내를 둔 사람은 그럴 만도 하겠소. 당신도 지금쯤 뒷산에 다녀오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싶어 나는 픽 웃음을 흘린다오.

▲ 길가에 핀 하얀 민들레
ⓒ 한성수

사람의 행복이란 것은 참으로 생각하기 나름이 아닐는지요. 가난하기 때문에 더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길가에는 하얀 민들레가 피었구요. 또 그 곁에는 탐스러운 홀씨가 무리를 지어 있다오.

당신도 보려고만 하면 언제든 보겠지만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진을 찍었어요. 우리네 행복도 느끼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그런 것은 아닐까요?

▲ 탐스러운 민들레 홀씨
ⓒ 한성수
길가 느티나무 밑에는 어제처럼 아주머니 몇 분이 그늘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구려. 아마 잔디 매는 일을 하는 일용노동자들인 모양이오. 저분들은 잠깐 동안의 단잠으로 피로를 씻고, 다시 활기차게 호미질을 하겠지요.

이제 다시 직장에 가까이 왔소. 담장 옆에 샛노란 장미가 피어 있어요. 요즘 당신은 '그린로즈'란 TV 드라마를 즐겨 보던데, 나는 그대에게 샛노란 장미를 바칩니다. 참으로 향기가 짙은데, 이 향기마저 내 가슴에 서려 두었다가 오늘밤 그대에게 전해 드리리다.

▲ 노란 장미
ⓒ 한성수
우리는 지난 겨울 꽃을 찾아 헤매었지요. 그래요. 철이 되면 꽃이란 지천으로 피어나는 것을 남보다 조금 더 빨리 보고, 전하고 싶어서 안달을 했지요. 어쩌면 우리네 삶이란 것도 이렇게 자연스러워야 행복한 것인데, 그 동안 억지로 행복을 찾아 헤맨 것은 아닌지 모르겠소.

사랑하는 당신! 그 동안 아들에게 한자공부 가르치느라 정말 고생했어요. 이제 나도 더 신경을 쓰리다. 이 꽃들을 보고 잠시라도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집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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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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