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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참 맑고 순수한 이들 부부가 꿈꾸는 평화가 포도잔 가득 넘치길
표정이 참 맑고 순수한 이들 부부가 꿈꾸는 평화가 포도잔 가득 넘치길 ⓒ 이우성
황간톨게이트에서 나와 영동쪽으로 5km 정도 올라오면 노근리 양민학살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고농원이 있다.

'마고'란 인류 최초의 낙원국가 이름이다. 에덴동산이라고나 할까. 지구도 살리고 지구를 사랑하자는 의미로 농장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아늑하고 편안한 낙원처럼 늘 마음에 남을 수 있는 농원이 되겠다는 게 이들의 꿈.

살아 있는 자연 그대로를 언제라도 느낄 수 있도록 땅과 먹을거리를 오염시키지 않고자 노력한다는 이곳 마고 지기는 꼼꼼한 남편 이영현(40)씨와 대범한 아내 최아선(45)씨다. 7년을 하루 같이 하루하루 포도나무와 함께 신비로운 교감을 나누는 이들 부부에게 낙원을 일구는 마음을 배워도 좋을 듯하다.

“전정 작업을 완료했다. 올해는 파쇄기를 사용하지 않고 일일이 손가위로 잘라서 넣어주었다. 파쇄기 자체가 위험하기도 하고 기름을 사용해야만 하며 엄청난 소음이 발생해 포도나무들이 불안해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힘이 들어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 옛날 농법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천천히 놀이 삼아 할 예정이다. 밭에 나가면 밤새 돌아다녔을 동물들의 발자국과 똥이 가득하다. 그들이 풀이 가득한 우리농원을 얼마나 칭찬하고 다녔을까. 돈이 없어도 집을 짓고 먹을 것을 해결하는 그 녀석들이 부럽다. 풍요 속에서도 힘들어하는 요즘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마고농원 홈페이지(www.magone.co.kr)에 나와 있는 일기의 한대목이다. 마고농원엔 지렁이, 메뚜기, 두더지, 개구리, 두꺼비, 도마뱀, 뱀, 산비둘기와 까치, 꿩 따위 생물들이 자연 그대로 살고 있다. 일기를 읽다보면 두 부부가 꿈꾸는 파라다이스는 그들만의 공간만은 아닌 듯하다. 뭇 생명들이 무한히 에너지를 발산하는 공간, 그 공간이 잉크 퍼지듯 점점 넓어져 행복의 전염으로 확대되기를 바란다.

하동이 고향인 남편 이씨는 토목을 전공하고 서울에서 토목회사(유신코퍼레이션)에서 한동안 일했다. 서울토박이인 최씨를 만나 결혼 후 IMF가 터지고 왠지 시골생활이 좋아 보여 함께 이곳으로 내려왔다.

황간면에 아는 분이 있었는데 그분들에게 면에서 이장들을 소개받아 황간면 이장들을 다 찾아다니며 빈집을 소개받았다. 그들을 제일 편하게 대해준 분이 이곳 이장님이셨다. 먼저 농촌생활 적응이 급했으므로 집은 사지 않기로 했다.

땅도 시세를 모르니 먼저 임대해서 농사 짓고 이력이 붙으면 사기로 했다. 집과 땅 없이 농사 지으니 동네분들이 앞다투어 도와주었다. 3년을 그렇게 살다가 후계자 자금을 받아 지금의 땅을 샀고 이듬해 건물을 들였다.

세상 일이라는 게 욕심을 내지 않고 편하게 마음 먹고 살면 그에 걸맞는 생활이 절로 따라주는 법인가. 옛일을 되짚는 그들 표정이 그때 고생도 다 값진 것이라는 말이 숨겨져 있는 듯하다.

처음엔 경사진 곳 1200평을 임대해서 관행농으로 포도농사를 지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기능교육도 많이 배우러 다녔다. 남의 포도나무를 빌려서 농사지으니 죽여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귀농운동본부 귀농교육도 받았다. 부인 최씨는 수지침도 배웠다.

귀농본부 교육을 받으면서 개념이 많이 바뀌었다. “관행 농사 지으려면 귀농하지 말라”고도 했다. 그러나 2년간 관행농사를 지으면서 병충해 방제, 비배관리, 수확기에 필요한 과정을 잘 배울 수 있었다. 고창화 전 이장은 아쉬울 때 제일 먼저 찾아가 도움을 받았다. 2년째는 2500평으로 늘였는데 수확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잘 안되었다.

그래서 3년째부터는 생산계획을 잘 짰다. 주요작업, 거름과 방제, 기타 작물관리, 영양제 채취시기 등 관리와 작업계획을 월별로 짜서 매년 고쳐 나갔다. 자재계획표도 세워나갔다. 거름, 자재목록, 금액, 생활비 등 구체적으로 미리 계획을 세우니 한 해 전체 수입 규모가 어느 정도 나와야 하는지 한눈에 세울 수 있었다. 총통수에 kg당 단가를 적용해 포도 한 송이당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도 나왔다. 비로소 올해 별로 고칠 내용이 없어 생산일정 계획표를 코팅까지 했다.

포도나무 80주를 도시소비자들에게 분양해 농사짓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다. '밝음'이라는 이름표 뒤로 분양된 포도나무에는 자신들의 소망을 달았다.
포도나무 80주를 도시소비자들에게 분양해 농사짓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다. '밝음'이라는 이름표 뒤로 분양된 포도나무에는 자신들의 소망을 달았다. ⓒ 이우성
3년째 저농약 인증을, 지난해에는 무농약 인증을 받았고, 올해는 전환기 유기인증을 받았다. 지금 포도밭 규모는 2000평. 나무 포기 수는 1000주. 이중에 80주는 도시 소비자들에게 분양했다.

한 주에 5만 원을 미리 받고 꿈나무 분양행사를 벌여 주말농장식으로 분양받은 사람 이름의 이름표를 붙여 사이버상으로 관리하고 따간다. 한 그루에 12kg(4kg 3상자)는 보장을 해준다. 거의 서울, 경기도 거주자들이다. 봉지싸기나 순지르기 할 때만 조금 지도해 준다.

나무와 교류를 통해 도시 사람들과 농사짓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 생각이 앞섰다. 분양된 나무는 자신의 바람과 함께 ‘성취’, ‘풍요’, ‘평화’, ‘자유’ 따위 이름표를 붙이고 틈나는 대로 와서 작업을 하면 되며 자주 못 오는 경우 수확에 지장 없도록 두 부부가 관리한다.

그리고 인터넷 홈페이지‘나무와의 대화’방을 통해 언제라도 자신의 포도나무를 볼 수 있다. 대보름행사나 산나물캐기, 낚시, 물놀이, 등산 등도 수시로 함께 하여 한 마음이 되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인간은 식물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하고 편안한 기분을 느낀다. 영적인 충만함에 젖어 있는 식물들의 심미적 진동을 인간이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식물 고유한 파장을 함께 느껴보려는 마고농원의 실험이 아름답게 열매맺을 것을 기대해도 좋다.

지난해에는 결실이 좋았다. 수입도 4500만원 정도로 부쩍 늘었다. 빚도 다 갚았다. 주로 인터넷 하나로클럽과 자체 홈페이지를 통한 직판으로 팔고 있으며 E마트 등 친환경매장으로도 많이 나간다. 지금은 생산량이 모자랄 정도.

저농약으로 3년 정도 하니 친환경농업에 인식이 별로 없던 동네 사람들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 이씨는 40가구 서송원포도작목반 총무 일을 보고 있으며, 올해는 그중 14가구가 친환경 저농약 단체 인증을 받았다. 친환경매장으로 공동출하까지 꿈꾸고 있다. 저농약에서 무농약으로 올라가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말한다.

3년 전 가운데 3줄을 농약 안 치고 실험을 했는데 균이 번지고 수확하기 전 조기 낙엽이 떨어져 고생을 했다. 여러 환경농업 교육을 받으면서 많이 부딪친 농민들로부터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방류 피해가 많아 나방유인살충기를 직접 만들었다. 반사판에 형광등을 설치하고 밑에는 경유 한 방울 떨어뜨린 물통을 준비해 밭가로 두 군데 설치했다. 생각보다 제 역할을 충실히 한다고.

벌레는 손으로 직접 잡았더니 벌레의 밀도가 떨어졌다. 새 잎으로 나온 부초를 남겨 엽순을 키워보려는 생각도 있다. 새 잎에서는 균이 안 생기는 것을 발견했고 남겨진 부초가 광합성작용을 도울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농사도 대범해야 한다고 이씨는 말한다. 그러나 농민들은 애착만 많지 더 크게 실험해보려는 생각이 적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전한다.

자연에서 채취한 토착미생물과 천혜녹즙, 바닷물 따위를 스스로 만들어 주기적으로 포도나무에 뿌려주고 있다.
자연에서 채취한 토착미생물과 천혜녹즙, 바닷물 따위를 스스로 만들어 주기적으로 포도나무에 뿌려주고 있다. ⓒ 이우성
균도 세력싸움이므로 100% 무균실로 하면 다른 균이 쉽게 침투한다. 사람도 너무 자주 목욕을 하면 안 좋듯이. 유산균과 효모균을 관주하거나 엽면살포하면서 다른 균이 밀집하지 않도록 균형을 잘 맞춰주는 것이 관건이다.

토착미생물을 채취해 수시로 관주해 주는데 이것이 다양한 균을 조성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자재에 돈을 많이 밀어넣는 것은 환경농업의 취지에도 맞지 않다는 생각이고, 자연 토착상태에서 최대한 채취하기 위해 4, 7, 12월 상순에는 산야초와 토착미생물을 채취하러 다닌다. 산이 밭보다 강한 미생물이 많으며 대나무 밭도 건강한 미생물을 얻을 수 있다.

모든 일을 부부가 다 한다. 하우스 파이프 올리는 일도 봉지 씌우는 일도 둘이서 했다. 부인 최씨는 아마조네스 여전사처럼 일한다고. 힘들지만 밤에 일마치고 포도주 한 잔 나누면 피로가 싹 풀린다고 한다. 이들의 행복은 포도주 한 잔에 다 담겨 있는 것 같다.

취재 중에 제주도에서 농사짓는 분에게서 감귤이 택배로 오고, 바닷가 근처에 사는 분에게서 다시마가 왔다. 함께 농사짓는 분들끼리 농산물은 물론 농자재도 서로 물물교환 하고 있다고. 시장에 갈 일도 없고 회원들이나 이웃 농가와 먹을 것을 서로 나누니 정이 새록새록 돋는다. 마을 할머니들은 푸성귀나 반찬들을 누가 주었다는 얘기도 없이 대문 안에 던져놓고 간다.

이들 부부는 서로 눈빛이 참 맑다. 서로 농사일로 바쁠 때에도 눈길을 서로 잘 맞춘다. 맑은 정신의 교감 때문인가. 서로 눈이 맞으면 훌쩍 낚시도 가고 독서도 하고 여행도 가고 귀농한 사람들 찾아가 일손도 돕고 한단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과 얘기나누는 것 또한 큰 행복이다. 7년만에 시골에서 사는 방법을 제대로 익힌 것 같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자제하는 법에도 익숙하다. 농협자금 다 갚고 방 도배할 정도로 있는 만큼만 쓰자는 주의.

“식당에 가서 밥 사먹는 것은 농민이 수입에 앞장서는 것입니다. 식당의 재료들이 다 수입하는 것 아닙니까?”

농사짓는 농부만큼은 규모에 맞게 생활해야 한다고 말한다. 쉽게 사먹고 쉽게 쓰면 이미 농민의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적게 먹고 줄여 살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삶이 땅을 갈 자격이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마을 잔소리꾼으로 소문이 날만하다.

“한 20년 목표로 시골로 내려왔는데 벌써 3분의 1은 지났습니다. 그동안 다행스럽다면 자연과 생명에 눈을 뜬 것입니다. 너무 바쁘게 살던 도시에서만 살다가 이렇게 여유롭게 살 수도 있구나 생각하면 경외롭기만 합니다.”

겨울에는 나무와 함께 휴식을 취하고 봄엔 작물이 움트듯 시작하고 여름에는 일찍 일어나고 가을은 풍성한 마음으로 일하니 인체리듬을 자연에 맞춰 사는 삶이 지루하지 않다고 말하는 부인 최아선씨는 농사만큼 자연스럽게 사는 것은 없다고 농사 예찬론자가 되었다. 시골에 내려와 5년 동안 마을 한복판에서 불 때고 살 때도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고 한다. 농촌진흥청이 주최하는 정보검색대회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농촌생활은 최소한의 마음으로 여유롭고 한가하게 즐기는 것이 좋겠다고 이들은 말한다. 주위 여유로운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 시골생활이라는 것이다. 아직도 이곳은 시골 인심이 남아있어서 마을 행사 때는 40여 가구 200여명이 한솥밥을 해먹는다고. 최씨는 수지침을 배워 동네 할머니들 침을 놓아주고 응급처치를 해주고 할머니들은 밭둑에 토란, 콩을 심어주고 간다. 서로 나누는 가치의 교환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리라.

“지구 위에 이만한 공간을 차지하고 사는 것이 행복합니다. 더구나 자유와 공기와 공간이 덤으로 주어지니 이보다 큰 행복은 없습니다.”

무엇이든 마음의 잣대가 중요한 법. 가치기준을 돈으로 다지면야 농사지어 성공할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이들은 여유로운 생활에 기준을 두어 항상 성공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젠 혼자 잘 살면 재미가 없으므로 지역 전체가 잘 살도록 나름대로 기여해보고자 한다.

포도나무 한가운데 모여 군락을 이룬 냉이꽃이 이들 부부의 순박한 심성처럼 곱게 피어올랐다.
포도나무 한가운데 모여 군락을 이룬 냉이꽃이 이들 부부의 순박한 심성처럼 곱게 피어올랐다. ⓒ 이우성
농부보다 더 좋은 삶은 없다고 하는 이들은 직업 중 으뜸이 농부라고 말한다. 후손에게 떳떳하고 생애 마칠 때까지 사랑스러운 것이라는 것. 그러나 생명산업을 지키고 먹을거리를 지키고 자연을 지키는데도 농부를 하찮게 여기고 소외시키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고 말한다.

이들은 표정이 참 맑다. 닮았다. 어딘지 모를 깊이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바쁜 농사일 방해만 하다가 돌아온 것 같아 미안했다. 마고농원을 돌아 나오는 길, 봄날 지천에 꽃이 날린다. 향기롭다.

덧붙이는 글 | 마음이 참 맑은 젊은부부 농군입니다. 착하게 맑게 산다는 것, 참으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은 그저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 성공한 삶이라는 생각으로 소박하게, 감사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 포도잔이 넘쳐 정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기를 빌었습니다. 흙살림신문(www,heuk.or.kr)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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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그루 심는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세월이 지날수록 자신의 품을 넓혀 넓게 드리워진 그늘로 세상을 안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낌없이 자신을 다 드러내 보여주는 나무의 철학을 닮고 싶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산다면 또 세상은 얼마나 따뜻해 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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