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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밖에서 바라본 우리집 모과나무
대문 밖에서 바라본 우리집 모과나무 ⓒ 이덕림
모과나무는 특히 진딧물에 약하다. 모과나무 어린 잎이 진딧물의 좋은 먹잇감이 되기 때문이다. 테이프를 한두 번 붙여서는 모과나무의 진딧물을 제대로 구제할 수 없다. 적어도 2~3일 간격으로 끈기있게 테이프를 붙이고 떼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테이프에 달라붙는 진딧물 숫자가 줄어듦에 따라 시드는 잎사귀도 줄어들고 나무는 점차 생기를 되찾아간다. 눈에 띄게 효과가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전 세계에 2700여종, 우리 나라에만도 330여종이 살고 있는 진딧물. 진딧물은 연약하기 짝이 없는 미물이지만 무리를 이루면 나무에게는 무서운 파괴력을 지닌 천적이다.

식물에 기생해 즙액을 빨아 먹고 사는 진딧물의 가장 큰 특징은 단위생식(單爲生殖), 곧 '처녀생식'을 한다는 점이다. 알 상태로 겨울을 난 뒤 3월 하순에서 4월 상순 사이에 부화하는데 모두 암컷으로 태어난다.

날개가 없으므로 한 숙주식물에 붙어 살면서 식물을 헐벗게 만든다. 성충이 되면 알을 낳는 것이 아니라 혼자서, 즉 수컷 없이 새끼를 낳는다. 새끼들도 어미와 똑같이 날개 없는 암컷으로 자라난다. 이렇게 몇 세대를 되풀이해 번식하다가 마침내 날개 달린 암컷이 생겨나게 되면 그제서야 새로운 숙주식물을 찾아 분산하게 된다.

진딧물은 동물계의 먹이사슬에서 가장 낮은 단계에 있다. 따라서 무력하게만 보이는 진딧물이지만 나름대로 자신을 방어하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위기에 처하면 뿔관에서 끈끈한 액체를 분비, 포식자의 입을 부자유스럽게 만들어 위기를 벗어난다. 최루탄을 쏘듯 하얀 밀랍가루를 뿜어내 주위를 혼란시키는 방법을 쓰는 종류도 있다.

진딧물이 식물에 끼치는 해악은 잎의 즙액을 빨아 먹어 나무를 고사시키는 것뿐만이 아니다. 광합성을 방해하는 '그을음병'을 유발함으로써 나무의 성장을 막는 해악이 그에 못지않다. 진딧물의 끈적끈적한 배설물인 감로(甘露)가 식물의 잎에 떨어지면 그을음병균을 불러 잎사귀가 시커멓게 더러워지면서 엽록소가 파괴돼 탄소동화작용을 못하게 만든다.

진딧물이 배설하는 감로를 섭취하려고 개미들이 수시로 나무를 오르내린다. 진딧물과 개미는 생태계의 공생관계를 얘기할 때 늘상 '모범사례'로 꼽힌다. 개미는 진딧물로부터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당분을 공급받고 진딧물은 무당벌레 같은 천적들의 공격으로부터 개미의 보호를 받는다. 대표적인 상리공생(相利共生) 관계이다.

앞의 글에서 구체적인 설명을 안 하고 넘어갔지만 진딧물을 없애기 위해선 먼저 개미와 진딧물 사이를 차단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 역시 '테이프 처방'으로 간단히 해결된다. 진딧물에게 가기 위해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는 개미들에게 있어 끈적끈적한 접착테이프는 바로 '개미귀신'인 셈이다.

가만히 지켜보면 개미들은 놀라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선 앞서 가던 몇 마리가 희생되면 얼마 안 있어 나무를 오르는 개미 행렬이 뚝 끊기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개미들이 찾아오지 않으면 진딧물들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때가 되면 테이프에는 점차 진딧물의 시체가 쌓여가기 시작한다. '테이프 구제법'은 개미도 잡고 진딧물도 퇴치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접착테이프에 '샛노랗게' 달라붙은 진딧물의 시체
접착테이프에 '샛노랗게' 달라붙은 진딧물의 시체 ⓒ 이덕림
이럴 즈음 뜻밖의 원군이 찾아왔다. '테이프 구제법'이 자연친화적이라 좋긴 한데 진딧물을 완전 퇴치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게 흠이다. 그런 어려움을 헤아리기라도 하듯 10여 마리의 참새떼가 찾아온 것이다. 진딧물 먹이감을 보고 몰려온 것이다.

시끄러울 정도로 재잘거리며 서커스를 하듯 가지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 잎 뒤쪽에 달라붙은 진딧물을 쪼아 먹는 참새들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참새들이 놀랄까봐 현관문을 열고 나가기도 조심스럽다. 참새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진딧물 메뉴를 즐기러 들른다.

그렇다. 모과나무에 농약을 뿌리기 않았기 때문이다. 오염 안 된 먹이를 알아보고 참새들이 우리 집 모과나무로 몰려온 것이다. "농약 안 뿌리기를 참 잘했구나." 무엇보다 그 사실을 자연이, 참새들이 알아준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다. 평소 뜸하던 참새들이 우리 집을 이처럼 자주 방문해 주는 것도 생각지 않던 기쁨이다. 담벼락에 희끗희끗 얼룩진 참새똥까지도 예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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