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큰애 '새하'입니다.
우리 큰애 '새하'입니다. ⓒ 박희우
그제야 아내가 피식 웃는다. 나는 한숨 돌린다. 아내가 기분이 좀 좋아진 모양이다. 사실 나도 피곤하긴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서류와 싸운다는 게 예삿일이 아니다. 어디 서류뿐인가. 일일이 서류에 적힌 내용을 컴퓨터와 대조해야 한다. 그렇다 보면 오전이 가기도 전에 눈이 침침해진다. 퇴근 무렵은 말할 것도 없다. 눈은 고사하고 몸 여기저기가 쑤신다. 그러나 집에 와서까지 피곤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아내도 내 못지 않게 힘든 하루였을 것이다.

"새하가 같은 반 애하고 싸웠다나 봐요."

아내가 풀죽은 소리로 말한다. 아, 그래서 아내가 저렇게 시무룩해 있구나. '새하'는 내 큰애다.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인데 여자아이다. 나는 새하를 불렀다. 얼굴 어딘가에 상처가 있겠지. 어, 그런데 그게 아니다. 얼굴이 깨끗하다. "헤헤" 웃기까지 한다. 아내는 아이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새하는 다섯 대를 때렸대요."
"그렇게나 많이?"
"뭐가 많아요. 새하는 그 곱인 열대를 맞았다는대요."
"뭐야?"

나는 새하를 흘겨보았다. 그런데 녀석은 여전히 "헤헤" 웃기만 한다. 물론 그런 말이 없는 건 아니다. 맞은 사람은 다리 뻗고 자고 때린 사람은 오그려 잔다는 말이 있긴 하다. 그래도 이건 좀 심했다. 일방적으로 맞았다는 느낌이 든다.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 걸 애써 참았다.

"억울하지 않니?"
"아빠, 제가 그 아이보다 몸집이 큰 걸요. 저는 괜찮아요. 하나도 아프지 않아요. 화해도 했어요."
"여보, 쟤 보셨지요. 쟤가 저렇게 순해 터졌다니까요!"

그러면서 아내는 아이에게 단단히 주의를 준다. 엄마가 다 물어줄 테니까 절대 맞고 오지 말라고 한다. 나는 그 무슨 소리냐며 아내의 말을 가로막는다. 아이 싸움이 자칫 어른 싸움이 된다는 말도 한다. 그래도 아내의 기세는 꺾이지 않는다. 하긴 어디 내 아내뿐이겠는가. 많은 엄마들이, 아빠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자, 저녁 먹어야지, 우리 공주들!"

나는 밥상을 편다. 냉장고 문을 열고는 반찬을 꺼낸다. 아내가 미나리무침을 만든다. 된장찌개가 바글바글 끓는 소리를 낸다. 나는 숟가락으로 거품을 걷어낸다. 살짝 맛을 보고는 엄지손가락을 힘껏 세워 보인다. 아내가 그런 나를 밉지 않은 표정으로 바라본다.

"당신, 오늘은 참 별나요. 아이가 맞고 온 게 그렇게 좋아요?"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새하가 맞았다니요. 우리 새하가 얼마나 힘이 센데. 봐 준 거지요. 아빠 말 맞지, 새하야?"

새하가 고개를 끄덕인다. 동생인 산하도 "아빠, 언니 힘세다"며 언니 편을 든다. 아내도 더 이상 참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동안 참았던 웃음을 한꺼번에 쏟아낸다. 그 웃음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새장에 갇혀 있는 장난감 새가 짹짹 우는 소리를 낸다.

몇 달 만에 들어보는 새소리인가. 새는 큰소리를 낼 때만 울었다. 특히 장난감 새는 웃는 소리를 좋아했다. 그동안 우리 가족이 너무 웃지 않고 살았던 모양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는데 앞으로는 좀더 많이 웃어야겠다. 아이가 맞고 왔는데 웬 웃음이냐고요? 그렇다고 울 수는 없잖아요. 더구나 우리 새하는 진 게 아니라고요. 힘이 세서 양보한 거라고요.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와 아이들은 숟가락질에 한창이다. 그러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내일도 모레도 이런 웃음을 만들어내겠노라 다짐해 본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