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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자료사진)
김대중 전 대통령 (자료사진) ⓒ 연합뉴스 황광모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지금 단계는 북한의 핵 포기에 대한 상응한 대가를 주고받는 협상을 할 단계"라며 "이러한 가운데 핵문제의 한 당사자인 한국의 주장을 존중하고 그 역할을 활용해야 한다"고 미국 측에 강력히 제안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북한측에 대해서도 "서울로 못오면 도라산역으로라도 와야 한다"면서 "이것은 6·15 공동선언을 준수하는 길이고, 우리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해결하는 길"이라고 밝혀 한국과도 당국자회담 또는 정상회담을 조속히 열어 민족공동의 과제에 대해서 대화하고 협력할 것을 강하게 권고했다.

아울러 김 전 대통령은 "비료와 식량의 지원은 남한에 대해 불신과 적대감을 갖고 있는 북한의 민심을 감사와 동경으로 바꾸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면서 "이를 핵과 분리해서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사실상 한국 정부의 당국간 대화 및 비료의 연계방침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12일 경기도 오산의 한신대학교 개교 65주년 기념강연에서 "지금 한반도는 매우 불길한 위기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권고안이다. 최경환 비서관도 "이렇게 강한 톤의 강연은 없었다"면서 "김 전 대통령께서 그만큼 현상황을 심각하게 판단하고 있다는 근거다"고 밝혔다.

북한 핵문제 해법, 미국·북한·한국 정부에 강력한 권고안 제시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미래'를 주제로 한 이날 강연에서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 준비설이 나돌고 있고 이에 맞서 미국의 선제공격설까지 나오고 있다"고 전제하고 "북한과 미국 사이에 비외교적인 거친 비방들이 오고가고 있다"면서 "이 모든 것은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저는 여기에서 각 당사자에 대해서 몇 마디 제안을 하고 싶다"고 전제하고 핵문제의 당사자인 미국과 북한, 그리고 한국 정부에 각각 강력한 권고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우선 "미국은 이 단계에서는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고수하고, 제재조치를 취하는 것을 서둘러서는 안된다"면서 "지금 미국의 일부에서 운운되고 있는 선제공격은 우리 민족을 공멸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어 "지금 단계는 북한의 핵 포기에 대한 상응한 대가를 주고받는 협상을 할 단계"라면서 "이러한 가운데 핵문제의 한 당사자인 한국의 주장을 존중하고 그 역할을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한편 미국 내 일부에서는 대북강경조치에 동조하지 않는 한국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면서 "즉, 미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해서 많은 희생을 내면서 한국을 도와주었는데 지금 한국이 그 은혜를 저버리고 있다고 비판을 하는 지도자와 언론이 있다"고 상기시켰다.

"미국을 좋아하지만 잘못된 정책은 반대한다는 것이 우리의 태도이고 당연한 것"

김 전 대통령은 이어 "우리는 북한 공산군의 남침에 의해서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을 때 미군이 개입해서 이를 구원해준 은혜를 결코 잊지 않고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베트남전에 참전해서 5천명의 전사자와 1만1천명의 부상자 등 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미국에 협력했다"고 강조했다. 또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도, 2차대전 이래 미국으로부터 많은 은혜와 관용을 입은 프랑스나 독일은 이라크에 파병하지 않았는데도, 국내의 상당한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영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군대를 파병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우리는 미국의 책임에 대해서 기억해야 할 문제도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고 전제하고 미국의 한반도 분단 책임론을 공식으로 제기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45년 일제 패망 시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둘로 분단시켰으며, 우리의 의사와 전혀 관계없이 이루어진 분단 때문에 남북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고 60년 동안 만성적인 불안과 긴장 속에 살아온 것"이라며 "지금 미국 내의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일방적인 한국 비판은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 국민의 90% 이상은 미국을 좋아하지만, 다만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반대가 크다"면서 "이점은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미국의 우방국들이 같은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은 좋아하지만 잘못된 정책은 반대한다, 이것이 우리의 태도인 것이다"며 "그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측에 대해 "서울로 못오면 도라산역으로라도 와야 한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은 북한과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강력한 권고안을 제시했다.

먼저 북한에 대해 "북한의 핵 보유는 잘못된 전략이고 남한과 맺은 한반도 비핵화선언에도 위배된다"면서 "북한은 핵 포기의 용의를 계속 분명하게 밝히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지금 운위되고 있는 핵무기 발사실험은 결코 해서는 안된다"면서 "만에 하나라도 그럴 경우는 북한은 국제적으로 큰 반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무엇보다도 6자회담에 출석해서 할 말은 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는 당당한 협상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면서 "세차례나 참석했던 6자회담에 출석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순되는 것이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 전 대통령은 "한국과도 당국자회담 또는 정상회담을 조속히 열어 핵 문제는 물론 민족공동의 과제에 대해서 대화하고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서울로 못오면 도라산역으로라도 와야 한다"면서 "이것은 6·15 공동선언을 준수하는 길이고 우리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해결하는 길"이라고 권고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한국은 1991년 남북간에 맺은 한반도 비핵화선언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이를 위반한 북한 핵문제 처리에 있어서도 당사자이다"면서 "우리는 북한 핵문제 논의에 있어서 적극적인 당사자 역할을 할 권리가 있고 또한 책임이 있다"고 한국 정부의 책임과 권리를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에 대해서 6자회담에 적극 협력하고 핵을 완전히 포기하도록 종용해야 한다"면서도 "동시에 미국에 대해서도 북한에 대한 유연한 태도 속에 핵 포기에 대한 대가를 분명하게 제시하도록 요구해야 할 것"이라고 중재 역할을 강조했다.

"북한 사회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비료와 쌀 지원... 핵과 분리해야"

이와 관련 김 전 대통령은 특히 "비료와 식량의 지원은 남한에 대해 불신과 적대감을 갖고 있는 북한의 민심을 감사와 동경으로 바꾸는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면서 "이를 핵과 분리해서 다룰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한국 정부는 그동안 북한이 남북 대화의 테이블에 나와야 북한에 비료를 지원할 수 있다는 방침을 공개적으로 천명해왔다. 따라서 한국 정부의 남북대화와 비료 및 식량지원의 연계방침을 잘 알고 있는 김 전 대통령이 정부의 정책에 대해 사실상 반대견해를 피력한 것은 최근 북한이 남한 정부 대신에 중국 정부에 비료지원을 요청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즉 어차피 중국 정부가 지원할 것이라면 우리 정부가 주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 전 대통령은 "무엇보다 북한 사회에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은 남한의 비료와 쌀의 지원이다"면서 "남한이 매년 지원한 20만톤 내지 30만톤의 비료는 북한의 식량 생산량을 2배, 3배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고, 매년 40만 톤을 제공한 쌀은 상당수의 굶주린 북한 동포들을 기아로부터 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들은 남한은 미국의 앞잡이이고 우리가 북한에 대해 침략의 기회만 노리고 있는 것으로 교육받아 왔는데, 남한의 이러한 지원을 보고 감사하는 마음과 잘 사는 남한 사람들에 대해 동경심을 갖기 시작하고 있다"면서 "이 얼마나 큰 성과냐"고 반문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북한과 화해하고 북한을 돕는 것은 북한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고 전제하고 "바로 남한의 안보와 경제적 도약을 가져오는 데도 필요하다"면서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진출이 더욱 확대되어야 지금 남한의 많은 실업자와 400조원이 넘는 유휴자금, 한계 상황에 도달한 중소기업 문제 등을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다.

"평화와 국가 이익을 위해서 필요할 때는 누구하고도 대화하는 것이 외교의 기본"

특히 김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은 성공하고 있지만, 다만 북미관계가 계속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햇볕정책도 견제를 받아서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이룩할 수 있는 성공을 못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거듭 미국측에 '악의 축'과도 대화할 것을 권고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은 악을 행한 자와 대화할 수 없고 보상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과거에 미국은 '악마의 제국'이라고 비방했던 소련과도 대화했고 한국전 당시 침략자로 규정했던 중국과도 대화했으며 뿐만 아니라 1953년 한국전쟁 중에도 북한과 대화해서 휴전협정을 맺었다"고 상기시켰다.

김 전 대통령은 "이는 휴전선의 북쪽 지역을 북한이 지배하는 것을 승인했던 것"이며 "즉, 미국은 양자대화를 했을 뿐 아니라 (북한과) 주고받는 협상도 한 것"이라며 "53년에 (미국이 북한과) 맺은 휴전협정은 지금까지 반세기 동안 준수되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김 전 대통영은 "평화를 위해서,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필요할 때는 누구하고도 대화하는 것이 외교의 기본"이라고 북미 대화를 거듭 촉구했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은 "지금 일본과 한국, 일본과 중국관계는 상당한 갈등이 있다"고 전제하고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와 잘못된 역사인식 등은 동아시아의 미래 협력을 어둡게 하고 있다"면서 "이 문제는 일본이 독일처럼 바른 역사인식을 갖고 시정해야만 동아시아 전체의 신뢰와 협력을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전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가 한국은 네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미·일·중·러) 사이에 둘러싸여있다고 지적한 말을 인용하면서 "우리는 강대국의 역학관계를 잘 이용해서 우리의 주체성을 지키고 강대국의 거대 경제력 사이에서 큰 성공을 찾도록 해야 한다"면서 "이것이 우리가 처해있는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에서 전화위복할 수 있는 길이다"고 밝혔다.

이날 개교 65주년 기념강연을 한 한신대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김 전 대통령이 80년대 중반 미국 망명에서 돌아와 첫번째 대중강연을 했던 대학이 바로 서울 수유리 한신대 캠퍼스였다.

김 전 대통령도 "한신대는 위대한 선각자였던 김재준 목사를 위시하여 문익환 목사, 안병무 박사, 문동환 박사 등 기타 수많은 신학자와 목회자 등 통일과 민주주의에 헌신한 선구자들을 배출했으며 그런 가운데 한신대 학생들은 스승들과 더불어 자유를 위해서, 통일을 위해서 희생을 바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면서 "저는 이러한 한신대의 위대한 공헌에 대해서 항상 존경과 흠모의 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기꺼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강연에는 오영석 한신대 총장과 김성재 교수(전 문광부장관) 등 700여명의 교수와 학생들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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