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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가 교육계 전체를 한바탕 또 흔들어 놓았다. 지난 4월 29일 2008년 입시부터 논술형 본고사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탓이다. 이에 몇몇 사립대학들이 동조하면서 일선 고등학교와 학부모들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내신이 강화되는 입시를 치러야 할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중간고사를 맞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촛불집회까지 계획하는 마당에 터진 일이니, 이 또한 작지 않은 사건이라 할 만하다.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서울대는 '본고사'의 부활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논술고사'를 구상하는 것일 뿐이라고 해명하고 나섰다. 내신 100%로 뽑는 지역 균형 선발 전형과 학생부로 선발하는 특기자 전형 모집 인원을 늘리는 한편으로, 정시모집에서 논술을 강화함으로써 고등학생들이 기본소양을 충분히 갖추라는 취지였다는 것이다. 서울대의 이러한 해명이 진정하다면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립대로서 서울대가 갖는 위상과 그 영향력을 생각할 때 걱정이 말끔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일차적으로, 서울대의 구상에 동조하는 몇몇 대학들이, 지역 균형 선발 방식 등에는 눈도 돌리지 않으면서 논술고사 강화에만 군침을 흘리는 경향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대한민국 입시에서 서울대가 차지하는 위상을 서울대 스스로 소홀히 한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

보다 큰 문제는 정작 다른 데 있다. 이번 파동은, 교육부가 고수하는 '3불 정책' 곧 고교 등급제와 기여 입학제, 본고사를 불허한다는 원칙이 갖는 의미를, 국립대인 서울대가 앞장서서 손상시켰다는 점에서 문제다.

물론 서울대의 입시 정책이 앞서 말한 세 가지 방안을 조화시키는 방식으로 설정된 것 또한 이러한 정부정책에 부응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서울대의 논술 강화 방침에 동조하는 몇몇 사립대들의 반응이 결과적으로 증명하듯이, 서울대의 태도가 신중하지 못했다는 점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번 사태는 어휘 선택의 잘못이나 신중함의 결여 같은 사소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서울대를 포함하여 이른바 '일류'라 하는 대학들에서 3불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밝혀온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절대 다수의 고등학생과 학부모들을 분노케 한 고교등급제 논란은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하다. 서울대의 문제 발언이 '일류대학'들의 이러한 경향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우려일까.

3불 정책의 의미와 취지를 고려하면, 사정이 그렇지 않은 듯싶어 걱정이다. 3불 정책의 목적과 의의는 무엇인가. 미래 한국사회의 화합과 역동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사회 계층의 대물림 현상이 갈수록 강화되는 현실에서, 이에 따른 사회적 위화감을 줄일 수 있는 작고 유일하며 전통적인 통로가 그나마 교육일 뿐이라는 사실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실로 현재의 상황에 잘 어울린다. 100년 후의 한국사회가,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살 만한 사회라고 느낄 수 있기 위해서는 사회 계층간의 벽을 낮추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 비춰보면, 서울대의 본고사 강화 발언에 따른 이번 파문은 고교등급제 논란과 그리 먼 거리에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해서 좀더 넓은 맥락에서 이른바 '일류대학'들에 대한 제언 내지는 문제제기로 글을 맺고자 한다.

예전의 논란에서도 확인되었듯이, 3불 정책을 지지하는 입장을 두고 민중주의적인 평등주의로 매도하는 견해가 없지 않다.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기대어 그들은 고등학교들 사이에 실재하는 실력 차이를 인정하고 그에 따라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자유를 대학에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나라의 '일류대학'들이 세계적으로 보면 10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발상은 사실 대단히 염치없고 이기적인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쯤 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국의 대학들이 공부하는 곳과는 적지 않은 거리가 있음을 알고 있다.

대학평가제가 정착되어 온 지난 10년간 큰 변화가 있었지만, 그동안 한국의 대학들은 학생들의 교육이라는 기본적인 책무를 사실상 방기한 감이 없지 않다. 그 결과가 바로 온갖 대학들의 난립과 국제 경쟁력의 저하, 외국유학생의 급증, 고학력 실업자의 양산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 까닭에, 현재의 대학들 특히 이른바 일류대학이라는 몇몇 학교들이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겠다는 욕심만 앞세워 우리나라에서 대학 정책이 갖는 의미를 돌보지 않고 고교교육을 혼란하게 만드는 것은, 실로 이기적인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학생들의 교육이라는 본연의 의무를 충실히 한 후에 대학 정책상의 재량권을 확장해 달라는 염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칭 일류대학들이야말로 '일류 학생'을 뽑아 '삼류 사회 초년생'을 만들어 온 과거의 잘못을 시정하려는 노력을 먼저 보여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경북매일신문(2005.5.10)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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