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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향기가 바람을 타고 교실로 들어 옵니다.

2층 교실에서 시를 외는 아이들 사이로 바람결에 개구리 소리가 아카시아 내음새를 타고 창문에 매달리는 것 같습니다. 멀리 물잡은 논에 모판을 넣고 계시는 어르신도 보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아카시아가 피면 모심기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찔레꽃이 활짝 필 때는 모심기가 한창인 것 같습니다.

강마을 아이들은 이제 시험이 코 앞에 닥쳐 있습니다. 즐거웠던 수학여행도 끝나고 오월 오일 어린이날도 지나고 쉴 공휴일이 없어진 이 때 시험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냅니다. 점심 시간이면 운동장을 뛰어다니던 녀석들이 담임 선생님의 눈총으로 교실에 앉아 공부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니,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입니다.

▲ 강마을의 밝은 모습- 아래에 선 아이가 설영이다.
ⓒ 이선애
우리 학교는 수학여행 때문에 중간고사가 약간 늦은 편입니다. 도시의 아이들은 대부분 지난 주에 쳤다고 하는데, 우리 학교는 이번 주에 시험이 있습니다. 공부를 좀 하는 아이들은 노트에 중요한 점을 빼곡하게 적어서 정리도 하고, 문제지도 풉니다. 하지만 성적과 무관한 녀석들은 점심 시간에 운동장에 나가서 축구를 하지 못하는 것만 억울한 모양입니다.

우리 학교는 1학년 16명, 2학년 13명, 3학년 15명으로 전교생 44명의 작은 학교지만, 큰 도시의 학교에서 하는 모든 것을 다 합니다. 백일장, 웅변대회, 전교회장 선거, 과학의 날 행사…. 그래서 어떤 아이는 참 많이 상을 받기도 합니다. 시험 역시 학생 수가 적다고 일등과 꼴찌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공부는 좀 덜해도 골찌는 굉장히 싫어합니다. 당연한 일이지만요.

그래도 저는 시골 아이들에게서 가장 좋은 점이 공부를 잘하는 아이나 공부를 좀 못하는 아이나 모두가 친구인 점이 참 좋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자란 학생들은 남학생과 여학생들이 곧잘 싸움도 합니다. 청소 시간이면 남학생들은 도망다닐 궁리를 하고, 여학생들은 찾아서 야단을 치고 청소를 시킵니다. 또, 어쩌다 다른 일이 생겨 남학생들이 일을 하게 되면 투덜투덜 거립니다. 자기들 생각으로는 자기 반 여학생들은 힘도 쎈데 자기들만 일한다고요.

우리 반 반장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설영이라는 학생인데, 지난 토요일이 생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반친구들을 초대해서 생일 잔치를 했다고 합니다. 시골이어도 요즘의 부모님들께서는 친구들을 모아 통닭이나 다른 음식을 시켜서 생일 잔치를 많이 해 주십니다. 설영이는 성적은 조금 부족하지만 본인이 반장을 하기를 강력히 원해서 당선되었습니다. 설영이의 꿈은 공고에 진학해서 기술을 배우고 나중에 농기구수리 판매 센터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손재주가 아주 좋습니다. 확고한 자기 꿈을 가진 이 녀석도 오늘 아침은 내내 시험이 닥쳐오니 수학책을 들여다 보면서 뭐가 잘 안돼는지 자꾸 찡그립니다.

저는 10년이나 20년쯤 뒤에 설영이가 운영하는 농기구센터를 보고 싶습니다. 건강한 웃음을 날리면서 정성껏 농기계 수리할 모습을 생각하면서 설영이의 꿈이 이루어지길 빌어 봅니다.

아카시아 향기가 날리는 창가에서 물잡는 논을 바라보며 감미로운 첫 여름을 시작합니다.

덧붙이는 글 | 조인스/까페/사이버 독자위원회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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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남 의령군 지정면의 전교생 삼십 명 내외의 시골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사 이선애입니다. 맑고 순수한 아이들 눈 속에 내가 걸어가야할 길이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죠.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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