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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이 간이 맞는지 한 번 드셔 보세요?”

아내는 푸른색이 감도는 다슬기 국을 내어 놓습니다. 부추를 듬성듬성 썰어 넣고, 소금만으로 간을 맞추었습니다. 나는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다가 그냥 후루룩 마십니다. 짙은 고향의 향과 맛이 식도를 지나 가슴으로 사르르 녹아듭니다.

▲ 부추를 넣고 끓인 맑은 국
ⓒ 한성수
‘어버이 날’인 8일 아침, 우리부부는 아이들과 어머니가 계신 고향을 찾았습니다. 하루 전에 왔다는 부산 사는 누나들은 아침 일찍 다슬기를 잡으러 갔다고 합니다. 집안정리로 바쁜 아내를 남겨두고 아이들과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동네 앞 개울을 찾았습니다. 물색이 참 맑고 곱습니다.

이 개울은 3년 전까지만 해도 물고기가 살 수 없는 오염된 하천이었습니다. 심지어 냇물에서 물놀이를 한 조카가 피부병에 걸리기도 했습니다. 나는 항시 고향을 찾을 때마다 어린 시절의 청정한 놀이터를 앗아간 산골짜기 돌공장(바위를 깨어 자갈을 채취)과 여러 축산농가를 참으로 많이 원망 했습니다. 그러나 돌공장이 문을 닫고 나서부터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 첫인사 : 물위를 걷는 소금쟁이
ⓒ 한성수
자연(自然)은 참으로 빠른 속도로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스스로 내버려 두면 그렇게 처음처럼 있는 것’을 사람들의 이기심이 푸른 산야에 수많은 생채기를 내고 그 아픈 절규가 물고기와 다슬기의 목을 죄었나 봅니다. 아들과 나는 성큼 냇물 안으로 들어섭니다. 햇빛에 차가운 돌멩이들이 반짝입니다.

나는 큰 돌 하나를 들어다가 뒤집어서 아이들 앞에 놓습니다. 다슬기 몇 마리가 붙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부지런히 다슬기를 줍습니다. 그리고 다시 살며시 처음 있던 자리에 밀어 놓습니다. 더러 물고기들이 알을 슬어 놓은 모습도 보입니다. 움직이는 물고기 떼가 아들의 눈과 손을 묶어 놓았는지 아들은 이제 바위 틈에서 첨벙 거립니다.

▲ 돌을 뒤집자 다슬기가 보입니다
ⓒ 한성수
우리는 조금 위쪽에서 누나들을 만났습니다. 제법 많이 잡았는지 비닐봉지가 묵직해 보입니다. 30여분 밖에 못잡은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누나들의 뒤를 따릅니다.

고향에서의 하루 해는 참으로 짧습니다. 밭에서 통통한 머위를 뜯어서 여러 산나물과 갈무리하고 우리는 집을 나섭니다. 어머니는 형님들이 잡아 놓은 다슬기를 들어 보이며 다슬기 봉지를 챙겨 줍니다.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도로에는 효도 차량이 밀려서인지 진행이 더딥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는 소쿠리에 다슬기를 담습니다. 다슬기들은 함께 엉겨 뒹굴거나 더듬이로 춤을 추면서 소쿠리를 기어오릅니다. 시골에서 이미 한참을 물에 담가 씻어놓았기 때문에 끓는 물에 그대로 다슬기를 넣습니다. 하얀 거품을 두어번 걷어내고 다슬기를 건져 냅니다. 우리 가족은 손에 손에 바늘을 들고 다슬기를 깝니다.

“아버지, 깐 다슬기가 참 예쁘고 아름다워요.”

아들은 뱅뱅 돌려서 겉모습과 닮은 다슬기를 까서 접시에 담습니다. 나는 슬쩍슬쩍 입에다 넣습니다. 담백한 맛이 입안을 감돕니다. 아내와 나는 ‘참새구이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아이들은 ‘개울을 닮았다’며 웃습니다. 접시에 수북하게 다슬기가 쌓였습니다. 아내는 국에 다슬기와 부추를 넣고 다시 끓입니다.

▲ 깐 다슬기 : 아들은 개울을 닮았다고 하네요
ⓒ 한성수
다슬기가 간에 좋다고 해서 나도 몇 번 다슬기 국을 식당에서 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맛과 그 맛이 같을 리는 없겠지요. 우리가 어린 시절에 지천으로 널려 있던 다슬기도 이제 참으로 귀한 존재가 되었나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내 아들의 아이들은 동네 냇가에서 다시 다슬기와 물고기를 잡으며 물놀이를 즐길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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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있는 소시민의 세상사는 기쁨과 슬픔을 나누고 싶어서 가입을 원합니다. 또 가족간의 아프고 시리고 따뜻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아 가능할 지 모르겠으나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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