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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단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작가 다이 시지에의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가 재출간돼 저자의 작품을 찾던 사람들에게 반가움을 주고 있다.

2000년 당시 <소설 속으로 사라진 여자>라는 이름으로 출간됐지만 이내 절판되어 아쉬움을 남겼던 만큼 재출간 소식이 신간 등장만큼이나 기쁜 소식으로 여겨질 법하다.

다이 시지에는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소설가들의 경력이 워낙에 다채롭다고 소문났지만 저자의 경력에 미치는 소설가들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저자의 경력은 굴곡이 크다.

현재 프랑스에서 소설과 영화 사이를 넘나들며 예술적 재능을 한창 뽐내고 있다는 점이나 정식으로 소설계에 발을 들여 놓은 지 3년 만에 페미나상을 수상했다는 점 등이 눈길 끄는 경력이지만 역시 다이 시지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문화대혁명'을 견뎌냈다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현재 중국의 '문화대혁명'은 낯설게 여겨지는 단어가 아니다. 학술적인 연구와 언론의 소개 등으로 대략적으로나마 그것이 무엇인지를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떠했을까? 지식인이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살아남았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를 듣기는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됐다는 것인가?

문화대혁명 당시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지목돼 3년간 산골에서 '재교육'을 받아야 했던 저자는 이 물음들의 답을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에 숨겨놓았다. 작품 속 주인공인 '나'와 '뤄'도 재교육을 받기 위해 세상에서 격리된 듯한 두메산골로 보내진다. 재교육이라는 단어는 말 그대로 다시 교육을 받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문화대혁명 당시의 재교육, 작품 속의 '나'와 뤄가 다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시골로 보내져 촌장의 지시에 절대복종하며 시키는 일을 모두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그것을 '위대한 인간실험'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젊은 지식인들이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는 인간실험을 위한 실험 재료가 되었을 때 그들은 어떤 생각을 품을까? 적의, 분노, 절망 같은 '어두운' 감정들이 아니었을까? 그렇다. '나'와 뤄도 그런 감정들을 가슴 속에 차곡차곡 쌓아간다.

그러나 그것을 가슴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작품 또한 어두운 감정들을 비껴나 있다. 오히려 울어야 하는 상황들을 익살스럽게, 해학적으로 그려내는데 그 솜씨가 마치 김유정의 단편소설들을 연상케 할 정도다.

문화대혁명 때 정해진 책을 읽는다는 것은 '끝'과도 통하는 일이다. 그런데 '나'와 뤄는 뜻밖에 친구 아닌 친구 '안경잡이'를 통해 발자크의 소설을 얻게 된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으로 소설을 얻게 된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안경잡이로부터 더 많은 금서들을 획득하게 되고 결국 주인공들은 시대의 뜻을 거스르며 책을 읽어가게 된다.

'재교육'을 받는 그 과정들이 문화대혁명 당시 지식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시간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면 발자크의 소설로 시작된 금서와의 만남은 고통의 시간들을 잊게 만드는 꿈결 같은 시간들이다. 또 발자크의 소설로 시작해 뤄가 사랑에 빠진 재봉사의 딸에게 소설들을 읽어주기 시작하는 것도 고통의 시간을 잊게 만드는 꿈결의 한 부분들이다.

작품 속에서 소설을 두고 벌어지는 과정이 주인공들의 영혼을 위로해준다면 작품 밖에서는 독자가 고통의 시간을 익살스럽게 엿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고 있다. 고통의 시간을 익살스럽게 보게 만든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앞서 김유정의 단편소설 이야기를 꺼냈듯이 울어야 하는데 웃게 만드는 그 재주들이 오히려 가슴을 파고드는 짙은 호소력을 띤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도 마찬가지다. 처음과 끝이 꽁트를 연상케 하고 있을 정도로 작품의 분위기는 경쾌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경쾌함으로 포장된 '재교육'을 받는 장면들이 보여주는 비극의 농도는 경쾌함이 짙어질수록 마찬가지로 더 짙게 드러나 독자들이 그 당시 지식인들의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책'이 인연이 되어 벌어지는 사연들과 '책'을 덮으라고 강요하던 시대의 충돌이 담긴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이 소설은 저자의 이야기라고도 하는데 보면서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를 두고 꽤나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흔치 않은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현대문학(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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