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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의 나라> 상, 하
<천자의 나라> 상, 하 ⓒ 보리출판사
출판사 홍보 담당자인 나는 우리 회사에서 나오는 책들을 편집자 다음으로 가장 빨리 읽는다. 책이 나오자마자 널리 알려야 하니 당연한 일이다. 남들보다 먼저 곧 나올 책을 읽을 때, 그 글이 내 맘에 들면 아주 행복하다. 한 마디 거짓도 없이, 있는 그대로 그 책을 마음껏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그런 행복감을 맛보게 한 책들은 여러 권 있었고, 가장 최근에는 <천자의 나라>(김유인 씀/상, 하 각권 9,500원/오두막)가 그랬다. 그리고 이 책은 조금 특별했다.

솔직히 말하면, 책으로 나오기 전에 읽은 책은 완성된 책 모양으로 나와도 다시 읽지는 않았다. 핑계를 대자면, 그 다음에 나올 책 교정지들을 읽기에 바빴다고나 할까. 하지만 <천자의 나라>는 달랐다. 가제본한 모양새로 읽었던 그 내용들을 ‘책’으로 느껴보고 싶어서 다시 읽고야 말았다. 그것도 하루 만에 두 권을. 몇 달 전에 읽어서 내용이 가물가물할 것도 같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장면들, 대화들, 감동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처음 읽을 때보다 마음이 약해진 걸까? 책 마지막 부분에서는 눈물도 살짝 비치는데, 그 따뜻한 물기에 나도 놀랐다.

도대체 이 책은 어떤 힘으로 나를 끌어당겼을까? <천자의 나라>. 어찌 보면 너무 단순하고 조금은 촌스러운 느낌마저 주는 제목이다. 하지만 책의 앞부분에서 주인공 전조의 입을 빌려 나오는 ‘천자는 하늘의 아들, 그러므로 곧 백성’이라는 그 말에, 나는 아무 의심 없이 이 책에 빠져들었다. 왜 일까? 왜 당연하고 또 당연한 그 말에 내 마음을 바로 주어버렸을까? 지금 우리 사회가 민중들이 곧 하늘인, 그런 ‘천자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었을까?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사람들

몇몇 독자들은 <천자의 나라>에 나오는 사람들이 멋있어서 이 책이 재미있었다고 한다. 물론 겉모습만으로도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 인물 하나하나에 내가 빠져든 것은 겉모습 때문만은 아니다. 겉모습 보다는 그들의 아름다운 마음이 먼저다.

아주 바른 사람이어서, 아주 순수한 사람이어서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자꾸 반성하게 만드는 남협 전조. 그는 공손하면서도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고, 사람 목숨 하나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황제의 명령도 거역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언제나 ‘남’을 위해 검을 들지만, 아무리 바른 길에 쓰이는 ‘검’일지라도 그 검조차 없어지기를, 그 검이 녹아 땅을 일구는 호미와 낫이 만들어지는 평화로운 세상을 바라는 따뜻한 평화주의자다. 지금 내 모습,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사람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비록 소설 속 인물이지만 난 전조를 보면서 끊임없이 지나온 나를, 앞으로 살아갈 나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전조 못지않게 내 마음에 다가온 사람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그 마음이 어디에까지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 준 ‘북리현’이다. 그는 아버지의 역모를 막아 보려고 거짓으로,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못 쓰는 것처럼 살았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 죄 값을 치르기 위해 자기 목숨까지 던지려 했다. 마지막에는 정말로 옳은 길을 가기 위해 그렇게 사랑하는 아버지 가슴에 칼을 꽂고야 만다. 이 장면에서는 내 마음도 한 없이 서러웠다. 아들 칼에 찔린 그 순간, 그 어느 때보다 한 없이 평온한 웃음을 짓는 북리현의 아버지를 보면서는 끝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효(孝)’는 천륜이라 했는데…. ‘천자’, 곧 평범한 우리 민중들을 위해서라면 그 천륜조차 넘어설 수 있음을 이 소설은 말해주고 있다. 지독한 비장함이여!

정치인들에게 ‘꼭’ 보여 주고 싶은 책

북송 황제 ‘인종’이 인피면구를 써서 자기를 감추고, 새로운 인물 ‘이정 선생’으로 행동하며 하나하나 깨달음을 얻는 과정은 보는 것만으로도 참 통쾌하다. 어느 독자는 북송 황제 인종이 ‘진정한 지도자’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 담긴 이 책을, 바로 지금 우리 정치인들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다고 했는데, 내 맘도 꼭 그렇다.

《천자의 나라》 상
《천자의 나라》 상 ⓒ 오두막
황제라는,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당연했던 신분으로 태어난 인종도 진실된 사람 하나를 만나면서 진정한 천자됨이 무엇인지 깨닫고야 마는데. ‘황제는 흔하디흔한 이름을 가진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천자라는 이름을 부여받았을 뿐, 백성을 지키지 않으면 천자라는 이름은 참으로 헛되고 헛된, 그저 허명뿐인 텅 빈 껍데기가 된다’는 아랫사람의 직언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데. ‘진정한 치도는 결국 다스리는 사람이 아니라 그 다스림을 받은 사람들을 위해 있어야 하고, 치도는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치도가 뭔지도 모르는 채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백성들을 위해 있어야 한다’는 그 말도 뼈 속 깊이 새기는데.

치도가 뭔지도 몰랐던 어린 시절은 뒤로 하고라도, 이제야 치도가 뭔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나는 ‘인종’ 같은 마음을 지닌 지도자를 만나고픈 마음뿐이다. 우리 정치인들은 과연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을까?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는 대상이 대통령임을, 국회의원임을 알려 주는 ‘금배지’인지 그들 자신인지.

여성의 강인함을 보여 주는 ‘아령’ 또한 이야기에서 뺄 수 없는 인물이다. 비록 검을 뽑아들고 싸우지는 않으나, 사람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난 현명함으로 ‘인종’이 깨달음을 얻는데 큰 힘을 보탠다. 뿐만 아니라, 혼자서 익힌 ‘진법’으로, 싸움에서 위험에 빠진 전조를 극적으로 도와준다. 검객이기에, 사람을 죽이지는 않되 어쩔 수 없이 검을 들 수밖에 없던 전조보다 어쩌면 더, 이 책이 말하려는 ‘강즉정(强卽正), 강한 것이 곧 정의다. 아니다! 정즉정(正卽正), 바른 것이 곧 정의다’라는 주제를 잘 드러내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감각을 통해 독자를 민중적 세계관으로 이끄는 힘

<천자의 나라>는 대만 무협 드라마 <판관포청천>의 팬들이 모여 시작한 ‘인터넷 팬픽(만화·소설·영화 따위를 구분하지 않고, 대중에게 인기를 끄는 작품을 팬들이 자신의 뜻대로 비틀거나 다시 꾸며 쓴 작품)’에서 비롯되었다. ‘팬픽과 역사 소설, 무협과 추리물을 넘나드는 새로운 장르’라는 별칭은 거기서 비롯됐다. 작가는 백성 모두를 천자라 믿었던, 포청천의 오른팔 남협 전조의 이야기를 쓰면서 그가 바라는 세상을 그려냈다. 무엇보다 10대 아이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편하고 쉬운 글로 썼다.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에 물들어 있는 요즘 사람들, 특히 나이 어린 사람들한테 민중적 세계관을 심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스며듦’일 것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천자의 나라>를 읽었던, 읽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아마 자기도 모르는 새에 ‘민중이 주인 되는 새로운 세상’을 생각하고, 바라게 되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읽고 나서 마냥 깊은 감동 속에 빠지게 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저 그런 무협 소설이겠지. 피 튀기는 건 똑 같네 뭐.’ 이런 생각들을 혹시라도 하실 분들에게 더욱더 이 책을 권하고 싶은 까닭도 그렇다. 지배자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던 역사가 아니라, 성실한 변두리 인생들인 평범한 우리들이 역사의 변혁을 일구어 냈다는 것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느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천자의 나라>를 낸 ‘오두막’은 (주)도서출판 보리가 새롭게 만든 출판 상표입니다. 저는 보리 출판사에서 홍보 기획을 맡고 있습니다.


임금의 나라 백성의 나라 - 상 - 북리 군왕부 살인 사건

김용심 지음, 보리(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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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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