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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새벽 산행에 나서는 우리집 인상, 인효.
ⓒ 송성영

오늘도 보통 때처럼 아이들과 함께 새벽 산행을 나섰습니다. 작은 아이 인상이 녀석은 늘 그렇듯이 긴 나무칼 옆에 차고 토끼처럼 펄쩍 펄쩍 잘도 뛰어다닙니다. 일상에서는 느려빠진 녀석이 산에만 올라가면 펄펄 납니다.

"니들 내일 학교 안가고 놀아서 좋겠다."
"내일? 왜 노는디?"

세상 돌아가는 일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인상이 녀석은 내일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어휴, 그것도 몰라?"

세상일에 시시콜콜 관심 많은 수다쟁이 큰 아이 인효 녀석이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입니다.

"무슨 날인데?"
"어린이 날이잖아."
"아, 아~ 어린이 날."
"너는 어린이날도 모르냐. 근디 아빠, 아침마다 목 말러."

인효 녀석은 요즘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목이 칼칼해진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4학년짜리 녀석이 때 이른 변성기가 오려나 봅니다.

"너 변성기 오는 거 아녀. 목소리가 월월, 개짖는 소리처럼 굵어지는."
"에이 참 아빠는 목말라 죽겠구먼."
"그럼 이거 먹어봐."

나는 녀석에게 찔레 순을 따서 껍질을 벗겨주었습니다. 우리 삼부자가 종종 노루들을 만나는 '노루의 숲'에서는 아직 꽃망울을 터뜨리지 않은 찔레들이 곳곳에서 새순을 피워 올리고 있었습니다.

▲ 찔레순을 껍질 벗겨 먹으면 사각사각 달콤 쌉쌀한 맛이 그만입니다.
ⓒ 송성영
적당히 물이 오른 찔레순은 사각사각 씹히는 맛이 그만입니다. 달콤 쌉쌀한 맛이 납니다. 입맛 까다로운 큰 아이 인효 녀석도 사각사각 맛을 보더니 칼칼한 목이 시원하게 뚫렸다며 엄마 것도 따가자고 합니다.

내 어렸을 때 학교를 오가며 벗겨 먹던 찔레순. 우리 삼부자는 매년 이맘 때면 찔레순을 벗겨 먹습니다. 나는 어렸을 때 벗겨먹던 찔레순 얘기를 해주며 우리 집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자신들의 자식들과 함께 산책을 나서 싱싱한 찔레순을 벗겨 먹일 것이라는 기분 좋은 상상을 봅니다.

"이거 말구, 토끼나 노루가 먹는 것은 다 먹을 수 있는 겨."
"그라믄 요것도 먹을 수 있는겨?"

늘 엉뚱한 행동을 보이는 인상이 녀석이 풀을 뜯어 입에 넣으며 말했습니다.

"그럼 먹을 수 있지. 근디, 조금만 먹어. 많이 먹으면 탈나니께 쪼금만 먹어야 돼."

▲ 미역취와 찔레순
ⓒ 송성영
늘 그랬듯이 오늘도 산행 길에서 만나게 되는 고사리와 미역취도 뜯었습니다.

"이건 미역처럼 생겨서 미역췬디, 나물 해먹으면 아주 맛있다. 니들도 먹어봤지?"
"뭐, 미친쥐?"
"아니 미역취."
"구역질이라구?"
"아니, 미.역.취 라고!"

인상이 녀석이 사오정처럼 엉뚱한 소리를 해대니까 옆댕이에서 듣던 인효 녀석이 답답해하며 또박또박 말해 줍니다.

"이제 내려가자 학교 갈 시간 늦겠다."

인상이 녀석은 뭔가에 정신이 팔려 내려갈 생각을 안합니다. 가만히 보니 개미굴 앞에 쪼그려 앉아 그걸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인효 녀석이 저만치 앞서서 보챕니다.

"얼릉 가자고."

보통 6시 반쯤에 산에 올라 한바퀴 돌고 집에 돌아오면 7시 반이 됩니다. 거의 한시간 동안 산행을 하는데 집에 돌아오면 아내는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립니다. 아이들 엄마는 왜 새벽 산행을 하질 않냐구요? 아내는 그럽니다. 하루 종일 이런저런 집안 일을 하다보면 산에 올라가지 않아도 충분히 운동이 된다고 합니다.

보통 때도 밥 잘 먹는 녀석들이지만 오늘따라 밥맛이 더 댕기나 봅니다. 찔레순을 따먹어서 그런가 보다고 했더니 녀석들도 고개를 끄덕끄덕 거립니다.

인효 녀석이 학교 갈 준비를 다 마치고 가방을 메고 마당에서 서성거리고 있는데 인상이 녀석은 방안에서 나올 생각조차 안합니다. 여느 때 같으면 뜰팡에서 신발을 신고있을 녀석인데 오늘은 방안에서 뭔가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어제 학교 운동회로 일찌감치 잠에 들어 일기를 쓰지 못해 오늘 아침에서야 급히 쓰고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천하 태평으로 일기장에 코를 박고 있는 녀석의 일기를 보았더니 어제 운동회 날에 있었던 달리기 시합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아빠인 나를 닮아(엄마도 마찬가지) 달리기를 했다하면 3등 안에 드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인효 녀석은 6명 중에 4등을 했고, 인상이 놈은 겨우 꼴찌를 면했습니다. 그것도 우연이었습니다. 꼴찌발이로 달리다가 앞서 달리는 녀석이 넘어지는 바람에 꼴찌를 면했던 것입니다. 산에서 펄펄 나는 놈이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 인상이는 운동회날 앞에 달리던 아이가 넘어지는 바람에 겨우 꼴찌를 면했습니다.
ⓒ 송성영
인상이 일기장에는 운동회 전날 연습 차원에서 뛰었던 달리기도 적혀 있었습니다. 이날도 역시 꼴찌를 했는데 앞서 달리는 녀석이 줄을 바꿔 제 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꼴찌를 했다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맨 마지막 줄에 꼴찌를 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다고 적었습니다. 친구가 꼴찌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것입니다.

인효 녀석은 마당 한복판에서 여전히 씩씩거리고 있습니다. 얼른 학교에 가서 아침 자습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달리기는 꼴찌지만 인상이가 빠른 것도 있잖아, 산에 올라가는 것도 제일 빠르고, 노는 것도 엄칭히 빠르잖아. 참 이상한 놈여, 그치잉."
"아참 답답해. 어제 일기 쓰고 자라니께 그냥 자놓고."

녀석들은 집에 돌아올 때는 걸어서 오지만 아침에는 자동차로 학교에 갑니다. 학교 가는 차안에서 녀석들에게 물었습니다.

"니들, 내일 어린이날 뭐할텨?"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인효 녀석은 독립기념관 아니면 무령왕릉을 가자고 합니다. 하지만 인상이 녀석은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냥 집에서 놀자."
"뭐? 집에서 뭐하고 놀 건디?"
"그냥 놀지."

▲ 인상이 녀석은 사오정처럼 아주 엉뚱합니다. 비오는 날 뽕나무 위에 올라가기도 합니다.
ⓒ 송성영
우리집 아이들은 어린이날이 돌아오면 공주시내에 나가 공주교육대학에서 마련해주는 '어린이날 행사'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소방관 아저씨들의 소방차 쇼와 이러저러한 게임을 하며 놀았는데, 이제 머리통이 좀 굵어졌다고 그것도 시시한 모양입니다.

사실 녀석들은 부모와 늘 함께 있다보니 어린이날이라 하여 크게 감흥이 없나 봅니다. 어린이날이 부모와 함께 연례 행사를 벌이는 날이라면 우리 집 아이들에게는 늘 어린이 날이나 다름없습니다. 돈벌이를 적게 하는 만큼 시간이 많은 우리 부부는 늘 녀석들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 산행을 함께 하고 또 학교에서 돌아오면 함께 놉니다. 우리 부부가 단지 아이들과 놀아주는 게 아니라 녀석들도 우리 부부와 놀아줍니다. 우리 부부 역시 아이들이 없으면 엄청 따분하고 심심할 것이니까요. 함께 놀아주는 녀석들이 되려 고맙기도 하지요.

"선물은 뭐 사줄까?"
"솜사탕."
"나도 솜사탕."

그 부모에 그 자식이었습니다. 녀석들도 이제 부모 따라 적게 먹고사는데 익숙해졌나 봅니다. 우리 부부는 그런 녀석들이 고맙기만 합니다.

나는 차에서 내리는 녀석들에게 매일 똑같은 인사를 건냅니다.

"재미있게 놀다와라!"

녀석들도 역시 환한 미소로 답하며 교문 앞으로 씩씩하게 걸어갑니다.

덧붙이는 글 | 세상 모든 어린이들이 인상이 녀석처럼 '어린이 날'도 모를 정도로 매일 그냥 그렇게 신나게 놀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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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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