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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고당의 모란
ⓒ 이선애
학생들이 수학여행 중 가장 기다리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에버랜드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것입니다. 경남에도 놀이공원이 제법 큰 것이 몇 개 있기는 해도 어디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에버랜드에 비기겠습니까? 아이들의 기대가 매우 큰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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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아침에 일어나니, 벌써 3학년 여학생들은 일어나서 꽃단장(?)을 하고 있더군요. 선생은 늦게 까지 자지 않은 아이들 단속하느라 잠을 설쳐서 부시시한 얼굴로 일어났는데, 새벽부터 드라이어로 머리를 다듬어 연예인처럼 하고 있더군요. 머리끝을 뾰족하게 만들어서 삐죽삐죽하게 만든 아이, 자잘한 주름을 넣어 편 아이, 둥글게 말아 넣은 아이…. 하여간 제 나름의 최고의 멋을 낸 모양입니다.

명성황후 생가 방문으로 하루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나라 역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일 중의 하나인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생각나더군요. 깨끗하게 정비된 건물과 새로 복원된 명성황후 생가. 감고당은 어린 시절 명성황후께서 지내셨다는 곳이라고 합니다.

별당에 한 송이 붉은 모란이 피어 있었습니다. 진홍의 화려한 자태를 보면서 조선의 마지막 왕후에 대해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영 관심이 없습니다. 스윽 한번 둘러보더니, 생가 앞 연못에 놀고 있습니다. 저 아이들도 언젠가 조선의 마지막 왕후의 죽음을 생각하고 슬픈 역사, 오욕의 역사를 기억할 때가 있겠지요.

명성황후의 생가를 뒤로 영릉을 향해 갔습니다. 영릉은 세종대왕의 묘입니다. 참 정갈하게 정돈된 곳입니다. 작은 박물관에는 세종대왕 시절에 만들어진 여러 기구들이 전시되어 있고, 뭐니뭐니 해도 한글에 대한 자료도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잡초 하나 없이 깨끗한 잔디밭길을 걸어가면 소나무 숲이 나오고 그 옆을 스쳐 지나면 영릉이 있습니다. 능이라기 보다는 깨끗한 정원을 보는 것 같아 참 상쾌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곳을 아이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많이 걸어 들어가야 하고 별로 볼 것도 없다고 투덜거립니다.

▲ 화려한 에버랜드의 튤립 꽃밭
ⓒ 이선애
그래도 측우기와 해시계, 천체기구 앞에서는 신기한 듯 들여다봅니다. 아이들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고 만져지는 것을 좋아하니까요. 고요함보다는 동적인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이 아이들이 속성이겠지요. 건강한 아이들은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른 점심을 먹고, 에버랜드로 입장하는 아이들은 희희락락한 표정입니다. 입장권이야 여행비에 포함되어 있지만, 기타 놀이기구를 타는 것은 아이들 몫입니다. 대부분이 자유이용권을 구입하였습니다. 에버랜드는 다른 놀이공원보다 좀 비싸서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았습니다.

4시 30분까지 정문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자마자 인파 속으로 사라진 아이들을 보며 저는 몇 시간을 이 속에서 보낼 생각을 하며 아득해지는 것입니다. 전 놀이공원으로 소풍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우선 앉아서 제대로 쉴 곳도 없고 먼지도 많고 사람도 많고….

기왕 온 것 열심히 구경을 하였습니다. 튜울립으로 꾸며진 정원과 서커스를 구경하고, 화려한 행렬도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꽃구경만으로도 그 값을 하겠다 싶어지면서 아이들을 찾아보았지만, 너무 많은 인파 속에 강마을 아이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물코너에서 수학여행 떠난 엄마를 기다릴 두 아들에게 줄 선물을 하나씩 샀습니다. 몇 시간을 돌아다니고 나니, 다리가 아파 어디든지 쉬고 싶어 작은 까페에 갔습니다. 차 한 잔을 마시면서 보니, 까페에 앉아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눈에도 인솔 선생님으로 보입니다. 아이들이야 재미가 넘치지만, 교사들에겐 고역이니까요. 특히, 저처럼 놀이기구를 무서워서 잘 못타는 사람에게는요.

몇 년 전엔가 소풍 때 아이들에게 끌려가서 '바이킹'을 한번 탄 일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무서웠던지 내려서 펑펑 울어서 아이들을 난감하게 한 일이 있습니다. 학교 와서 내내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무서운 '청룡열차', '바이킹'을 일곱 번을 타는 아이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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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릉에서 관람하는 아이들
ⓒ 이선애
시 30분이 다 되어 정문 앞에 나와 학생들의 인원을 점검하였습니다. 그런데, 몇 학생이 보이지 않습니다. 수민이와 수용이 등 4명이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습니다. 걱정을 하면서 찾아다니는데, 저쪽에서 헐레벌떡 뛰어옵니다. 1시간을 넘게 놀이기구를 타려고 기다렸는데 도저히 안타고 그냥 오면 억울해서 안될 것 같아 결국 늦게 왔다고 합니다.

사실, 자유이용권을 끊은 아이들의 대부분이 3-4번 정도 밖에 못 탔다고 합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와서 놀이 기구를 타려면 줄을 한 시간은 넘게 서야 한다고요. 문제였습니다. 야단을 치고 차로 돌아와서 두 번째 숙박지 도고온천으로 갔습니다.

덧붙이는 글 | 조인스/까페/사이버독자위원회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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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남 의령군 지정면의 전교생 삼십 명 내외의 시골 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교사 이선애입니다. 맑고 순수한 아이들 눈 속에 내가 걸어가야할 길이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더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죠.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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