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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가 2002년에 정의료기관을 방문해 작성한 보고서와 2003년 진행한 용역사업 실태조사 보고서
국가인권위가 2002년에 정의료기관을 방문해 작성한 보고서와 2003년 진행한 용역사업 실태조사 보고서 ⓒ 국가인권위원회
두 군데의 정신병원이 있다. 두 병원 모두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졌다.
A정신병원은 1971년 8월 개원하여 1980년대 중반 이후 정부의 정신병원 대형화 시책에 힘입어 2001년 현재 병상수 2414개에 달하는 대형 병원으로 발돋움했다. 정신과 의사만 38명이고 내과 등 다른 진료과 의사가 8명, 간호사가 133명에 사회복지사 22명 등 총 465명의 직원이 있다.

B정신병원은 1974년 3월에 설립된 기도원에서 출발했다. 1986년 9월에 복지원으로 법인을 변경하였으며, 1988년 8월 550병상 규모의 정신병원을 개원했다. 정신과 의사 14명, 그 밖의 다른 진료과 의사 4명, 간호사 78명, 사회복지사 3명 등 총 직원이 187명이다.

턱없이 부족한 의료 인력

A정신병원은 의사 1인당 환자비율이 1:59.8로 보건복지부 기준이 1:70임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실제 운영실태를 보면 의사에 따라 환자수가 불균등하게 배분돼 있어 경우에 따라 1:90에 이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간호사도 마찬가지다.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는 평균 1:12로 보건복지부 기준 1:13에 비해 양호하지만, 현실에서는 과도한 사례가 발견되기도 했다.

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B정신병원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정신과 전문의 1인당 환자 비율은 수치상으로도 1:91.6에 달한다. 간호사 역시 1:25의 비율로 보건복지부의 기준을 훨씬 초과했다. 물론 실제 운영과정에서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었다.

두 병원의 질병별 환자의 분포를 보면, A정신병원의 경우 2002년 현재 정신분열증 59.7%, 정신지체 6.0%, 알코올장애 6.0%, 조울증 2.9%로 나타나 절대다수가 정신분열증 환자다. 반면 B정신병원의 경우 정신분열증 환자가 47.7%인 데 반해 알코올장애 환자가 41.1%의 비중을 보였다.

정신병원은 불가피하게 폐쇄적인 구조를 띨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환자들의 인성과 감성을 안정시키고 치료에 부합할 수 있는 구조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A정신병원의 경우 비록 폐쇄병동이긴 하지만, 병동 내의 중앙 부분에 공동 활동공간을 배치하고, 그 주변에 환자들의 침실을 배치했다. 환자들은 침실과 활동공간을 오가며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했다. 반면에 B정신병원은 복도를 중심으로 양쪽에 병실이 배치되어 있는 T자형 구조다. 간호사들이 근무하는 시설 스테이션 도 A정신병원의 스테이션은 환자 거주 공간과 칸막이로 구분하지 않은 개방적인 구조다.

반면 B정신병원은 간호사와 환자가 견고한 철문을 두고 분리돼 있다. 스테이션은 간호사가 환자의 일상생활을 관찰하고 위급한 경우에는 곧바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 따라서 B정신병원은 간호사로 하여금 환자에 대한 관심이 못 미치게 할 가능성이 있고, 환자가 치료진의 도움을 받고자 해도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병원 구조는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더욱 문제가 된다. A정신병원측은 소방서와 합동으로 정기적인 소방훈련을 한다고 밝혔지만, 화재 발생에 대비한 외부에서의 접근성이나 비상탈출구 등이 취약했다. B정신병원의 경우는 더욱 심각했다. 대부분의 병동이 외부로 나가기 위해서는 자물쇠가 채워진 3개의 문을 열어야 하고, 창문은 안쪽으로 고착돼 있어 외부에서 뜯어 낼 수 없었다. 화제가 발생하면 인명 피해가 매우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입·퇴원 과정의 ‘회전문’ 현상

정신의료시설에서는 처음 입원부터 마지막 퇴원까지 잡음이 많이 발생한다. 가장 큰 문제는 환자의 이송과 입원 결정 과정에서 나타난다. 통상 보호자가 병원측과 사전에 협의한 후,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물리력이 행사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환자에 대한 진단 없이 입원 결정이 내려지는 경우도 있다는 증언이 병원 환자에게서 나왔다.

퇴원 과정에서는 가족이 환자를 도외시하거나 무연고 환자의 경우 상태가 호전돼 병원에서 퇴원시키려고 해도 인도할 가족이 없어 퇴원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병원에서 고의로 퇴원시키지 않는 사례도 있을 수 있다.

입·퇴원 과정의 문제로 지적되는 것이 ‘회전문’ 현상이다. ‘회전문’ 현상이란 정신과 관련 시설 사이에서 환자를 계속 순환 입원시키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다. 정신과 관련 시설에서는 환자의 입원기간이 6개월이 되는 시점마다 병원에 지급되는 의료 수가가 일정 비율 적어진다. 관련 시설은 그것을 보전하기 위해 환자를 순환 입원시키기도 한다. B정신병원 이사장은 또 다른 병원을 소유하고 있는데, 두 병원 사이에서 이런 회전문 현상이 발견됐다.

정신질환자의 치료는 환자가 사회에 복귀하여 일상적인 생활을 수행할 수 있는 재활 수준의 치료가 되어야 한다. A정신병원의 경우 비록 소수지만 근로를 통한 재활 훈련, 사회적응 훈련, 그리고 실제 외부 사업체에 취직한 환자들에 대한 관리 등이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자들에 대해 두 병원 모두 재활보다는 수용 자체에 급급한 실정이다.
노르웨이 국립정신병원 전경. 외부 환경이 자연과 조화를 이뤄 정신질환 환자들의 치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노르웨이 국립정신병원 전경. 외부 환경이 자연과 조화를 이뤄 정신질환 환자들의 치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 국가인권위원회
환자들은 병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따라서 생활공간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가가 무척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두 병원 모두 매우 공간이 협소하다는 평가다. B정신병원은 침상과 침상 사이가 지나치게 좁았고, A정신병원은 주어진 공간에 비해 너무 많은 사람이 기거하는 등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정신질환 수용자들은 외부와의 소통도 자유롭지 못했다. 두 병원 모두 외부 전화 통화는 주1회 정도만 허용되고, 그것도 간호사나 보호사가 통화내용을 들을 수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외부로 보내는 편지 역시 대부분 의사의 검열을 거쳤다. 의사들은 이러한 조치를 치료 목적상 어쩔 수 없다고 했으나, 관련 전문가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환자의 건강한 신체와 사회적인 삶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도 부족했다. 두 병원 모두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설비를 갖춘 대표적인 정신과 시설이지만 환자들이 운동이나 산책을 할 수 있는 공간은 부족했다. 야외활동이 어려운 한겨울에는 심각한 운동 부족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한편 병동에서 환자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세제 등 일상용품에 대해 병원측은 모두 병원에서 제공한다고 했다. 하지만 B정신병원의 환자들은 상당수가 직접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강박조치, 환자가 이유와 기간 인지 못해

강박조치는 정신과 관련 의료시설에서만 행해지는 독특한 치료 행위다. 강박조치는 통상 환자를 침상에 눕히고 묶어 놓는 형태를 말한다. 정신과 의사들에 따르면 강박조치는 매우 중요한 치료방법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서구와 우리나라의 강박조치 정도를 비교하면, 서구에 비해 우리나라는 그 빈도나 강도, 시행 시간이 매우 빈번하고 강력하며 장시간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었다.

A정신병원과 B정신병원을 비교했을 때, A정신병원이 강박조치의 시행 횟수나 기간 등이 더 짧았다. 무엇보다 신체 구속이 치료 수단으로 실시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구속사유에 대한 환자의 인지 정도가 A정신병원은 높은 편이었다. B정신병원의 경우 내규상 강박조치를 24시간까지 할 수 있다고 했지만, 실제 환자들의 간호사 기록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3~4일간 지속적으로 강박조치를 시행한 사실도 발견됐다.

환자가 구속 사유를 모르는 경우는 다음의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단순 처벌 위주의 구속이거나 환자와 의사의 관계 및 치료 환경이 매우 불량한 경우다. 병동 내부의 분위기도 치료 효과와 관련되는 중요한 환경 조건이다. 이에 두 정신병원은 상당히 대조적인 분위기를 보여 주었다. B정신병원은 조사관이 방문했을 때 내부는 매우 조용했으며, 환자들은 침상에 정좌한 채 움직이지 않았고, 방장 및 실장으로 보이는 환자들이 병실 입구에 한두 명씩 정렬해 있었다. 마치 군대에서 점호나 내무반 점검 때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상황이었다.
반면 A정신병원은 조사관들이 병동에 들어서자 환자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거는가 하면 심지어 조사관들을 껴안으려는 환자들도 많았다. 자유분방하다 못해 상당히 소란스러운 분위기였다. 이러한 차이는 평소에 환자를 관리하는 병원측의 태도를 반영하며 환자들 내부의 관계가 상이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환자들 내부 분위기는 병원 운영과 관련이 있다. 환자들의 일부는 병원의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A정신병원은 봉사원이라고 불리는 환자들이 병원 운영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참여는 운영에 부가적인 요소였으며, 그것이 다른 환자에 대한 강압적인 통제로 이용된다는 것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에 비해 B정신병원에서는 환자들로 구성된 실장과 방장이 환자들을 통제했다. 실장 및 방장 제도는 우선 환자 개개인의 의견이나 요구사항의 전달과정이 실장→방장→간호사 등 직원→의사로 이루어지면서 정신병원의 의사소통 구조가 상명하달식의 위계적인 방식으로 구성된다. 그러다 보니 환자들의 요구가 의료진에 전달되지 않거나 환자에게 과중한 책임이 전가될 수밖에 없다.

환자들 내부의 불평등 현상과 권력관계는 치료환경 및 인권보호에 결정적인 장애요인이라 할 수 있다. B정신병원은 실장과 방장으로 불리는 환자들이 다른 환자들의 강박조치에 참여하면서 그 시행 기간이나 이유 등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 행위인 강박조치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시행하는 사람은 간호사나 보호사에 한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환자에 대한 강박조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환자 내에 평등한 관계를 무척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

병원 내 신체질환자에 대한 처우도 문제로 지적됐다. 병원에서는 신체질환자를 합병증 환자로 부르며 별도로 수용하고 있지만 이들의 질병에 대한 치료비는 지급되지 않는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의료급여는 환자 1인당 동일액을 지급하는 정액수가제로 운용되고 있다. 신체질환자의 진료비용은 별도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 이런 구조는 중환자들에 대한 처우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다. 실제 A정신병원의 중환자실에 수용된 환자들은 몸이 어린아이처럼 오그라들어 있었다. 장시간 누워 있는 환자들은 매일 스트레칭을 통해 몸을 펴 주어야 하는데 현재의 의료비 체계로는 그러한 간호가 불가능해 생긴 일이다.

최소한의 생존 위한 기본 규정 미비

지금까지 소개한 두 병원의 실태는 국가인권위가 지난 2002년 10~11월에 진행한 조사 결과다. 이 실태조사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환자의 인권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사안이다.
정신병원은 질병 치료를 위해 환자를 수용하면서도 입원 환자의 최소한의 생존 및 인간적인 삶을 위한 기본적인 규정조차 마련하고 있지 않았다. 조사단은 이번 조사에서 정신의료기관 체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사의 판단에 대한 검증 시스템 △정신의료기관의 시설 기준 및 운영상의 기준이라고 판단했다.

조사 결과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단기적 과제로는 △강박조치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 마련 △증상별 환자의 분리 수용 △보호자의 보호 의무 및 접근권 강화·확대 △화재나 재난에 대한 대비 등이 지적됐다. 이와 함께 장기적인 노력을 통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정신의료 기관의 의료 인력 확충 △개방형 구조로 시설 변경 △재활 및 치료 프로그램의 실질적 운용 △국가의 지도 감독 강화 △정신질환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 개선 △지역보건의료 단위 치료 및 재활시설의 설치 등이다.

국가인권위는 이 실태조사와 그간의 진정사건 조사를 토대로 조만간 정신과 시설에 대한 종합적인 인권 개선방안을 권고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에는 각계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공청회가 열리기도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간하는 월간 <인권> 4월호에 실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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