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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프를 쓰지 않기 위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수많은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워온 야스민.
스카프를 쓰지 않기 위해, 여성에게 가해지는 수많은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싸워온 야스민. ⓒ 김남희
하지만 어차피 세상에 대한 모든 해석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는 객관적 진리, 보편성이라는 단어들이 점점 어려워짐을 발견한다. 과연 그런 것들이 이 세상에 있기나 한 것일까 불순한 의심을 품기도 한다.

어느 나라, 어느 땅을 여행한들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의 입장이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더구나 외부인이 짧은 시간 동안 겪고 보고 느낀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 한발 더 나아가 그 땅이 내가 나고 자란 나라와는 판이하게 다른 문화권이라면, 또 그 땅에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제한적이라면, 그 말은, 그 말이 가져올 파장을 의식해 더 조심스러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모든 여행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여행하는 모든 나라를 새롭게 해석하고, 새롭게 창조해 내는 것이다. 다만 나는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거짓 없이 말할 뿐이다. 그로 인해 독자들에게 그릇된 정보와 인상을 준다면, 그 비판은 내게로 돌아와야 함을 알고 있다. 나는 돌 맞을 각오를 한다. 아직도 어떤 나라에서는 돌에 맞아 죽기도 하는 여성들이 있는데, 인터넷상으로 던져지는 돌을 마다할 이유가 무엇인가.

말이 길었다. 이제 두 달간의 경험을 압축적으로 풀어 놓아 보자. 이 자리에서는 주로 나를 아프게 하고, 분노하게 했던, 스카프로 표현되는 여성의 삶에 관한 이야기만을 풀어 놓고, 나를 웃게 하고, 행복하게 했던 다른 경험들은 다음 이야기에 하기로 하겠다. 이 소통에서 내가 또 실패할지는 모르겠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실패와 고통은 언제나 내 삶의 위대한 학교였으므로.

파키스탄 여성들, 부르카와 스카프를 말하다

카리마바드 걸스 컬리지에서 조회 중인 여학생들
카리마바드 걸스 컬리지에서 조회 중인 여학생들 ⓒ 김남희
처음 파키스탄에 들어섰을 때, 나는 낯설었다. 이 땅이, 이 땅의 전면에 서 있는 남자들이, 완벽하게 뒷세상에 가려져 있는 여자들이,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하는 종교적 삶 속에서 같은 신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이 신의 이름으로 서로를 죽고 죽이는 문화도, 낯설었다.

그때 나는 부르카에 분노해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부르카를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는 없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여성들이 나처럼 부르카를 저주하지는 않는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또 알고 있다. 이 땅의 많은 여성들이 부르카를 저주한다는 것을. 헤잡을 쓰게 해달라고 외치는 프랑스의 이슬람 소녀들이 있듯, 헤잡을 벗게 해달라고 간절히 절규하는 여성들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들의 절규는 숱한 사회적 장벽과 제약으로 인해 드러나지 않는 절규인 경우가 대부분임을 알고 있다.

나는 그들을 만났고, 이야기했고, 함께 아파했다. 그들이 이 땅의 일부의 여성뿐일지라도, 분명히 있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선택의 권리는 주어져야 한다는 것, 그게 내가 맺은 결론이다. 최소한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선택한 후에는 그들을 보호할 사회적 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 아직 이 땅에는 선택의 권리가 없고, 선택한 자들을 보호하는 사회적 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제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여성들. 카리마바드.
제각기 다른 곳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여성들. 카리마바드. ⓒ 김남희
야스민(35·여고 교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끔찍해. 난 파키스탄이 아니라면 그 어느 땅이라도 괜찮아. 여긴 나를 숨막히게 하는 곳이야. 스카프를 쓰지 않기 위해 이 산골로 온 후 난 3년을 투쟁했어. 그리고 졌어. 이제는 이들을 설득하는 걸 포기했어. 학교에서 난 스카프를 쓰지 않지만, 바깥에 나가서는 써. 그리고 스카프뿐 아니라, 내 웃는 모습과 말하는 태도와 걷는 모습, 모든 면에서 나를 규제하고 판단하고 평가하려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가십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 그들을 만나지 않아. 이곳에 온 후 나는 최소한의 의무적인 만남만을 가질 뿐이야."

포지아(29·여성 자수협회 근무)는 이렇게 말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헤잡을 싫어해. 다른 사람들이 헤잡에 관해 어떻게 말하든, 뭐라고 느끼든 그건 상관없어. 단지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헤잡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그걸 안 쓸 수 있는 권리는 주어져야 한다는 거지. 우리 사회는 그런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면에서 끔찍한 거야."

야스민의 친구이자 동료교사인 파잘(35·남성·교사)은 말한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부르카를 쓰고 다니셨어. 하지만 지금은 스카프면 돼. 얼마 지나면 스카프도 사라질 거라고 난 확신해.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야. 내가 야스민에게 바라는 건 그 변화를 기다리자는 거야. 스스로를 희생양으로 만들 필요는 없잖아?"

부르카, 파키스탄의 전통을 지키는 것인가?

"누군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다면 변화는 절대로 그냥 찾아오지 않아. 모든 자유에는 슬프게도 피의 냄새가 깃들어 있는 거라고. 내가 너처럼 교육 받은 지성인들, 깨어 있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이들에게 바라는 게 뭔지 알아? 너의 여동생과 아내에게 기다리라고만 말할 게 아니라, 누군가 야스민처럼 사회적인 관습에 대항해 싸울 때 적어도 그들 편에는 서 줘야 한다는 거야.

모든 동네 사람들이 그녀를 비웃고, 그녀에게 돌팔매질을 하려할 때, 진정한 친구라면 그녀를 말리기만 할 게 아니라, 그녀에게 돌을 던지려는 사람들을 말리고, 그 돌팔매를 때로는 함께 맞아 줘야 하는 거야. 그녀가 혼자 세상에 대항해 싸우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앞에 나서지는 못해도 밀어주는 사람이 뒤에 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줘야 하는 거야.

우리는 그렇게 민주주의를 쟁취했어. 거리에서 돌을 던지고 화염병을 만들던 시절, 그 숫자는 늘 적었어도 우리에게는 믿음이 있었어. 지금 도서관에서 법률책을 뒤적이는 친구들, 언젠가 우리 편에 설 거라는 믿음. 내가 코너에 몰릴 때, 탄압 받을 때, 내가 결정적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 내 편이 되어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언제나 믿었단 말이야. 그 믿음이 사람들을 앞으로 나아가게끔 추동했고, 스스로를 희생양이 되도록 만드는 것을 두렵지 않게 했어."

스카프를 쓴 어린 여자아이가 수줍게 웃고 있다. 카리마바드
스카프를 쓴 어린 여자아이가 수줍게 웃고 있다. 카리마바드 ⓒ 김남희
야스민이 말을 이어간다.

"어느 날 이 남자 선생들이 이렇게 말하는 거야. 스카프를 쓰는 건 우리 문화를 지키는 거라고. 난 소리 질렀어. '그럼 너희 남자들이 스카프 쓰고 살아! 그렇게 지킬 문화가 없어? 여자의 옷차림에 대해서밖에 지켜야 할 문화가 없는 거야? 그럼, 우리의 위대한 종교 지도자 프린스 아가 칸은 어때? 그 아내와 아이들은 스카프를 쓰기는커녕 무릎까지 오는 치마를 입고 다니지 않아? 다시는 내 앞에서 스카프 같은 얘기는 꺼내지도 마!' 이렇게 소리를 질러버렸어.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어."

압둘 말릭(27·아가칸 지역지원프로그램 매니저·남성)은 말한다.

"남자들이 그들의 아내와 딸들에게 스카프를 씌우고 싶지 않아도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건, 눈 밖에 나는 게 두렵기 때문이지. 여긴 작은 지역 사회이고 종교지도자들의 힘은 너무나 크니까."

"사실은 이슬람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근본주의자들에게 문제가 있는 거야. 원래 이슬람이 아랍 사회에서 시작되었잖아? 원래 그 사회는 남성 위주의 사회라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버리는 경우도 많았고, 예언자 무함마드는 그런 악습을 버리고 여성을 보호하려는 의지도 강했어. 1400년 전의 아랍 사회의 관습을 그대로 이 사회에 적용하려는 사람들이 문제야. 조금씩 변하고 있고, 변해갈 거야.

이제는 파키스탄 대부분이 전기도 들어오고, TV가 나오잖아. TV는 아무 것도 감추지 않고 다 드러내잖아. 사람들은 원래 변화라 하면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무조건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어. 여기 카라코름 고속도로를 놓을 때도 동네사람들이 얼마나 반대했는지 알아? 내 밭으로 도로가 지나간다는 것, 뭔가 변한다는 것 때문에 도로가 가져올 생활의 개선이나 긍정적인 변화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반대부터 하고는 했지."

이슬람 사회는 여성과 함께 변하고 있나?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여자들. 가네시 마을.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 여자들. 가네시 마을. ⓒ 김남희

시아파란?

여기서 간단히 시아파에 관해 설명하자면,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망 이후 후계자 문제를 놓고 대립했을 때, 당시 이슬람 공동체의 '만장일치'제를 반대하고, 예언자의 순수한 피가 혈통으로 이어진 가족이 칼리프가 되어야 된다고 주장하며 그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를 후계자로 옹립했던 파들이다.

이들은 이런 이유로 초대 3대 칼리프를 인정하지 않으며 칼리프란 말 대신에 '이맘'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이맘은 무오류와 무결점의 순수한 혈통으로 죄를 짓지도, 실수를 하지도 않는 존재인 까닭에 신자들은 이맘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권위에의 순종이야말로 시아파를 이성과 개인적 판단에 호소하는 수니파로부터 구별해 주는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이슬람에서 10% 내외를 차지하는 시아파는 대대로 박해 받는 쪽이었으나 요즘에는 수니와 시아가 서로 죽고 죽이기를 반복해 박해 받는 자의 의미는 별로 없어졌다. 시아파 안에도 수많은 파벌로 나누어져 있지만, 대표적으로 이스마엘파, 두오데심파, 자이드파가 있다. 이 이스마일리-시아파의 49대 이맘인 현 종교 지도자 프린스 아가 칸(Aga Khan)은 서구 사회에서 나고 자란 탓인지 이슬람 공동체에 주목할 만한 현대화를 가져왔다.
신기하게도 내가 만나 이야기했던 대부분의 남자들은 변화가 오고 있으니 조금 더 기다리면 된다고 말했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 변화의 속도를 못 견뎌 했으며 변화가 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호소하고 있었다.

가장 보수적이고 경건한 이슬람 도시로 유명한 폐샤와르에서 내가 만났던 여대생들은 어떠했던가. 그들 역시 스카프를 쓰지 않고,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나 비교적 생각과 행동이 자유롭던 의대생 라일라(20)는 내게 말했다.

"난 지금 같은 과 남학생을 사귀고 있어. 만약 내가 연애를 한다는 걸 가족들이 알면, 이웃의 눈 때문에 무척 곤란해질 거야. 여긴 너무나 보수적인 도시니까. 부디 우리 사랑을 위해 기도해 줘."

내가 한 달 보름간 머물렀던 훈자. 그 곳은 시아파의 한 계열인 이스마일리-시아를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스마일리-시아는 수니와 시아 모두에게 진정한 이슬람이 아니라며 비판 받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여성을 좀 더 평등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이곳 훈자와 파수, 심샬의 산간마을에서 만난 여성들은 말하고 있었다.

"우리 이스마일리-시아는 수니와 시아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편이야. 우린 집이나 동네에선 스카프를 쓰지 않기도 해. 하지만 네가 만약 길기트나 칠라스 같은 곳을 간다면 훨씬 끔찍한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될 거야."

명예살인, 여성을 겨눈 합법적인 폭력

양들을 이끌고 돌아오는 할머니. 카리마바드. 훈자
양들을 이끌고 돌아오는 할머니. 카리마바드. 훈자 ⓒ 김남희
나는 지금 오직 스카프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 스쳐 지나는 외국인 눈에 아주 간단하게 드러나는 문제에 관해서만 목청을 돋우고 있는 셈이다. 더 끔찍하고 흉흉한 이야기들, 외국인에게는 잘 들려오지 않는 이야기들을 파잘은 들려 주었다.

한 달 전, 펀잡주의 한 마을에서 남녀가 같이 있는 장면이 목격되었다. "Objectionable level(반대할 만한, 의심이 가는, 못마땅한 상황)"이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그 여성의 오빠가 누이와 함께 있던 남자를 누이의 명예훼손죄로 '판차야'라는 지방 법률기구에 고소했다. '판차야'에서는 이슬람의 율법대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적용, 복수할 것을 허락했다. 판결 후 바로 이 남자 집안의 남자들 다섯 명이 몰려가 상대남자의 여동생을 집단 강간했다.

파키스탄 최고의 인권변호사와 비정부기구 단체들이 이 사건을 문제 삼아 대법원에서 상고심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 다섯 남자들은 무죄로 풀려나 있다.

폐샤와르의 여대생들. 집안에서만 스카프를 벗는 그녀들은 바깥에서도 스카프 없는 세상을 꿈꾼다.
폐샤와르의 여대생들. 집안에서만 스카프를 벗는 그녀들은 바깥에서도 스카프 없는 세상을 꿈꾼다. ⓒ 김남희
역시 올해 발로치스탄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여성병원의 의사로 일하고 있는 여성이 자신의 집에서 동네 군인에 의해 강간 당했다. 그녀는 자신의 몸 안에 남아 있던 남성의 정자에서 DNA를 채취해 감식을 의뢰하고, 지역 군부대에 DNA 검사를 통해 범인을 찾아줄 것을 요청했다. 지역 부대에서는 그런 남자는 없다며, 위대한 파키스탄 군대의 군인이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그녀는 그 상황에 절망하고, 파키스탄을 떠났다.

이 땅에서는 아직도 여성이 이혼을 요구하면 결혼할 때 여성이 가져온 지참금(마하르)의 두 배를 남편에게 배상해야 하고, 남성이 이혼을 요구하면 남성은 지참금만큼만 배상하도록 법률이 규정하고 있다. 여성의 간음이나 강간죄를 고소하기 위해서 남성은 두 명의 증인만을 필요로 하나, 여성이 남성의 같은 죄를 고소하기 위해서는 네 명의 증인을 세울 것을 법정은 요구하고 있다.

수많은 여성들이 '명예살인'이라는 이름으로 남성의 손에 의해 죽어갔으며, 아직도 1년에 천 명의 여성들이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죄목으로 남성들에게 살해 당하고 있다. 그리고 명예살인을 저지른 남성은 처벌받지 않거나, 대부분 경범죄에 해당하는 처벌로 그친다.

이런 경우에도 남의 문화이니 존중해야 한다고 말할 것인가? 제발, 쉽게, 편하게 말하지는 말자. '문화'라고 모두 존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남의 것'이라고 무조건 존중해야만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런 식이라면 우리가 지구 위에서 같은 인류로 살아가는 일의 의미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아픔을 나누고, 억압하는 이들에 대항해 함께 싸우고, 손 내미는 이의 손을 뿌리치지 않는 것, 그게 문화인이자 교양인의 태도가 아닌가.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도시 폐샤와르. 폐샤와르 대학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도시 폐샤와르. 폐샤와르 대학 ⓒ 김남희
나는 이슬람이 이 땅에 끼친 긍정적 영향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에게 도덕심을 심어 주고, 최소한의 학교와 스승의 노릇을 해 왔으며, 공동체 정신을 함양해 왔으며, 어떤 면에서는 여성들에 가해지던 오랜 악습과 관행을 막아내기도 했다.

단지, 나는 여전히 이 사회에 악습으로 남아 있는, 여성의 권리와 자유로운 삶을 제약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통치 방식을, 스카프라는 물건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거다. 그리고 이 땅의 많은 여성들이 그 억압과 차별에 대해 분노하고 있으며, 무기력해 하고 있으며, 변화를 갈구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지금, 나는 감히 말한다. 파키스탄을 사랑하기에, 이 땅의 전통과 문화를 사랑하기에, 이 땅의 여성들이 겪고 있는 현실과 그 피눈물 나는 싸움을 외면하지 못하는 거라고. 분명 '헤잡'과 '부르카'로 상징되는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은 사라져야 한다.

이스마일리-시아

이스마일리-시아는 6대 이맘의 사망 후 후계자 문제를 놓고 시아파 간에 이견이 일어났을 때 그 계승자로 이스마엘을 선택하고 따른 사람들을 지칭한다.

이들이 다른 수니나 시아와 구별되는 점을 살펴보면,

첫째, 이들은 라마잔(사움)을 행하지 않는다. 가난한 이웃의 아픔을 나누고, 금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통제하기 위해 행해졌던 라마잔은 본래 뜻이 사라진 채, 그저 한 달간 금식하는 형식적 의미만 남아 있다고 본다. 이스마일리-시아는 일년 열두 달 스스로 삶을 자발적으로 통제하며, 일상이 라마잔이라는 뜻에서 한달 간의 금식에 의미를 두지 않는다.

둘째, 하루에 다섯 번 기도(샬라)하는 수니나 시아와 달리 이들은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 기도한다. 기도는 형식이나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므로 큰 절도 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여성의 사원 출입을 허용하지 않는 수니나 시아와는 달리 파격적으로 여성과 아이 온 가족이 함께 '커뮤니티 홀'에서 기도를 드린다.

셋째, 네 명까지 아내를 허용하는 다른 파와는 달리 아내는 오직 한 명만 둘 뿐이다. 예외적인 경우는, 첫 아내가 아이를 갖지 못해 스스로 두 번째 아내를 원할 경우에만 두 번째 아내를 맞는 것을 허용한다.

넷째, 이들은 성지순례(하지)를 하지 않는다. 즉 메카에 가지 않는 것이다. 겨우 돌덩어리(카바)를 만지기 위해, 혹은 무함마드의 탄생지를 둘러보기 위해 엄청난 돈을 써가며 하는 순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또한 현대적인 가이드 라인을 제시받지 못하고, 뚜렷한 단결의 구심점이 없는 시아와 수니가 통일과 단합의 상징으로 메카 순례를 이용한다고 보기도 한다.

다섯째, 이스마일리-시아 여성들의 경우 부르카나 스카프에 대한 엄격한 규정이 없다.

이런 이유로 수니와 시아 양쪽 모두에서 진정한 이슬람이 아니라며 이스마일리-시아는 비판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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