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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밝히는 촛불이라고 할까? 양순자 할머니를 보고 있으면 깜깜하기만 한 세상 속에서 앞을 밝혀 주는 촛불을 보는 것만 같다. 과장이 아니다.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모니카 수녀'를 연상케 하는 할머니는 올해 65세로, 37세부터 교도소에서 교화위원으로 사형수들을 상담해 왔다. 일생의 많은 부분을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일부러 걸어가려고 했고, 실제로 그랬던 사람이 바로 양순자 할머니다.

ⓒ 명진출판
'가시밭길'이라는 표현으로도 어색하기만한 그 길은 남을 위한 고단한 길이었다. 쳐다 보기조차 어려운 범죄자들의 곁으로 일부러 찾아가 말을 나누기를 벌써 29년. 법무부 교정대상, 국무총리 인권옹호상 등을 받았다고 하지만 누가 상을 준다고 해서 그 길에 올라서기를 자처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할머니는 올라섰다. 그리고 꿋꿋이 오늘도 그 길 위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내고 있다.

그 고된 삶 속에서 할머니가 '인생 공식'을 정리한 <인생9단>을 선보였다. 제목은 할머니의 별명에서 따온 것인데 <인생9단>은 이제껏 할머니가 살아오면서 겪었고 느꼈던 이야기들, 그리고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묶어 놓은 것이다.

사실 <인생9단>의 소식은 뜻밖의 소식이다. 남들에게 쓴 소리 한 번 못해 봤을 것 같은 할머니가 인생의 공식을 말한다니 약간의 의아스럽기도 하다.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보건대 할머니가 무슨 영광을 바라고 책은 내놓은 것을 아닐 터인데 무슨 까닭이었을까? 인생의 공식이 무엇인지도 궁금하지만 책을 내놓은 사연도 궁금하다.

"한 번 왔다 가는 인생인데 너무 힘들게 살면 안 되잖아. 그렇게 살지 않으려면, 가벼운 걸음으로 살려면 바로바로 문제를 처리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단 말이지.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겠어?" - '프롤로그' 중에서 -

'인생 9단'이라고 불리는 할머니는 사람들이 잘 사는 법을 알려 주고 싶으신 게다. 할머니는 굳이 그것을 공식이라고 부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누구든지 배워보라고 한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경지에는 비할 수 없지만 대한민국에서 한평생 살아온 사람이자 연장자로서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냉수를 얻어 마시듯, 혹은 웃기는 옛날이야기를 듣듯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에서 공식을 얻어 보라는 것이다.

<인생 9단>도 할머니의 봉사하는 마음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 준다는 게 쉬운 일이겠는가? 잘한 일, 착한 일만 들려 준다면야 모를까 <인생 9단>은 그렇지 않다. 이혼했던 경험과 배신 당한 경험까지 지난날에 얻은 상처와 아픈 이야기들까지 털어 놓고 있다. 이 또한 봉사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상처까지 드러내면서까지 인생 후배들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말하는 것은 또 하나의 봉사라고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인생 9단>은 '인생 기본 공식'과 '사람 사이 공식', 그리고 '가족 사이 공식' 등 세 개의 파트로 인생사 문제들을 두루 다루고 있는데 이 작품은 보는 사람을 세 번 놀라게 한다.

첫 번째는 구어체가 그대로 사용돼 직접 할머니의 육성을 듣는 것 같아서 놀라게 되고 두 번째는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연애 문제 등 젊은이들의 문제까지 상당히 광범위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기에 놀라게 된다. 책 내용만 보고 할머니의 연세가 65세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마음의 문이라는 건 사람한테만 여는 게 아니야. 나한테 오는 곤란한테도 문을 열어 놓아야, 그 곤란이 나를 괴롭게 하지 않는단 말이야. '언제나 편한 세월이 올까?' 이런 투정은 하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마. 그런 세월은 없으니까. 불편한 세월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잘 달래면, 그게 바로 편한 세월이 되는 거야." - '기본공식2. 곤란 없기를 바라지 마' 중에서 -

"혹시 상대한테 내가 첫 사랑이 아닌 게 마음에 걸린다면 이렇게 생각해 봐. 내가 지금 굉장히 매력 있는 사람을 사귀고 있구나 하고 말이야. 당신 애인 같이, 당신 남편, 아내같이 멋진 사람을 누가 가만 나뒀겠어? 진짜 사랑이니 가짜 사랑이니, 첫 사랑이니 두 번째, 세 번째니 따지지 마. 그 시간에 차라리 오늘 저녁에 둘이서 뭐 먹고 뭐하고 놀까, 그 생각을 해. 그게 훨씬 기분도 좋고 사랑이 오래 가는 비결이니까." - '사랑공식2. 사랑에다 소금을 뿌려봐' 중에서 -

"부모들이 행복하면 아이들 인생도 행복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자신들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어떻게 자녀들에게 보여줄까 그 궁리나 해. 그게 조기유학 보내는 것보다 훨씬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는 방법이야. 아이들이 '우리 부모님 참 괜찮은 사람들이야'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이미 얘기는 끝난 거야.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부모가 되는 거야." - '부모공식. 최고의 유산은 부모의 행복이야' 중에서 -


<인생9단>을 보며 세 번째로 놀라는 것은 할머니가 말하는 공식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지혜'라는 사실이다. 사실 할머니는 책에서 다룬 내용들을 공식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지혜라는 말로도 바꿀 수 있다. 그러니 <인생 9단>은 실상 할머니의 '지혜'인 셈인데 생각해 보면 얼마나 새삼스럽게 여겨지는 말인가.

그 동안 말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누누이 말하면서도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귀 담아 듣지 않았던 그것이 아니었던가? 새삼스럽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오면서 겪은 그 이야기들이 어느 것보다 필요한 지혜인 것을.

<인생9단>에 귀를 기울이면 그것이 들린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한 번이라도 더 웃고, 한 번이라도 더 편안 마음으로 하늘을 볼 수 있게 하는 그 방법이 들린다. 그 방법이라는 것을 행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혼자서는 깨우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나이가 들어 스스로 알아내거나 이미 겪은 사람에게 배워야만 한다.

여기 쉬운 길이 있다. '인생9단'으로 불리는 양순자 할머니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비록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 9단>에서 할머니는 하고 싶은 말 다했으니 책으로나마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인생사, 이미 겪을 대로 겪어본 '인생9단'의 할머니에게 지혜를 얻는다면 최소한 지금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인생 9단 - 고전의 향기

장영동 지음, 좋은땅(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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