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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도 어버이날 기념, 영산강변 구진포에서
2002년도 어버이날 기념, 영산강변 구진포에서 ⓒ 나천수
꿈 많은 청춘을 다 사르고 나씨 집안 시집살이 안으로 삭힐 때 가슴속의 절굿공이도 반은 사랑이요 반은 한(恨)으로 닳았다.

어머니의 댁호(宅號)는 고산(高山)이다. 어머니는 항상 높은(高) 산(山)처럼 사셨다. 어려서 효성이 지극하여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1년간 똥오줌을 받아 내시고 꽃신을 선물로 받았는데 꽃신이 작아 발을 줄여 신으셨단다.

노령산맥 발꿈치에 위치한 고산마을에서 자란 어머니는 학력은 없지만 영리한 두뇌를 가지고 여러 가지 재주를 익히셨다. 춤추기를 좋아하시고 육자배기 노래도 꽤 잘 하셨다.

어머니는 면허증 없는 재주가 여러 개 있다.

어머니의 가마솥 솥뚜껑 운전재주는 가히 신기(神技)이다. 솥뚜껑을 자유자재로 돌리면서 아마도 보리 백 섬, 쌀 백 섬을 가마솥에서 익혀내어 가족을 먹여 살렸다. 가마솥 무쇠가 윤기 나도록 닦으면서 부엌이 수 천리 되는 듯 이리저리 뛰면서 아궁이에 불 지피랴 설거지 하랴 반찬 장만하랴 허리가 휘도록 부엌을 지켰다.

요즈음은 전기밥통, 압력밥솥이 부엌을 차지하고 전기 스위치만 누르면 밥이 되고 국이 되는데, 그것도 하기 싫어 즉석요리 식품으로 무슨 정을 만들어낼까.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도 일류 재단사이시다. 옛날에 무슨 재봉틀이 있으랴. 오직 바늘 침 하나로 꼼꼼히 바느질하여 한복은 물론 양복도 만들어 자식들 예쁘게 입히셨다. 좋은 옷을 보면 자식 입힐 욕심이 많아서 신문지로 본을 떠서 밤 세워 똑같은 옷을 만들고야마는 눈 때가 매서운 솜씨를 가지셨다.

이제 어머니도 팔순에서 구십을 바라보기까지 늙으셔서 절굿공이로 김치를 담글 힘이 없다.

어머니도 늙고 절굿공이도 다 닳고 또 쓸모없게 되었다. 다 닳은 절굿공이가 반평생을 어머니의 손에서 어머니와 같이 절구통 바위 돌에 닳고 닳아서 어머니를 닮아 버렸다.

뿐만 아니라 세상이 너무 변하여 절굿공이로 김치를 담그는 것은 향토 박물관에서나 볼거리로 변모해 버렸다.

아울러 절굿공이 사랑이 깃든 웅녀의 이야기도 한갓 전설로 흘러가 버리고, 김치 양념도 전기 믹서로 갈아버린다.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요즘 아이들은 김치와 쑥국보다는 서구식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마늘 김치와 쑥국으로 사람이 된 웅녀 이야기가 우리들 가슴에 남아 있는 한 어찌 김치의 향수를 잊을 수 있을까. 한국의 어머니, 우리들의 어머니의 흔적을 절굿공이 박달나무에 새겨 이 글과 절굿공이를 길이길이 보존하고자 한다.

어머니 만수무강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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