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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이가 들면 눈물도 흔해지는가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도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 신경림 <갈대>


▲ 뒷산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
ⓒ 박도
지난 20일 30여 년간 살던 집에 문패를 떼고, 딸이 공부하며 살 수 있는 셋방을 마련해 준 뒤, 마침내 어제 오후 아내와 함께 두 달 만에 다시 안흥으로 내려왔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눈물도 흔해지는가. 서울을 막 떠나오려는데 갑자기 눈물이 울컥 쏟아졌다.

40여 년간의 서울 생활에 대한 아쉬움인가, 딸 아들을 둔 채 떠나는 혈육의 아픔 때문인가, 아니면 여러 복합적인 감정 때문인가, 아무튼 남아서 전송하는 딸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외면한 채 서울을 떠났다.

매화산 전재 고개를 넘어 집에 이르자 저물 무렵이 됐다. 두 달간이나 집을 비운 데다가 서울집의 묵은 짐까지 퍼 늘어 놓으니 집안이 엉망이다. 아무래도 두고두고 여러 날 동안 치워야 할까 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 멧새들의 보금자리인 내 집 뒷산
ⓒ 박도
이른 아침 멧새들의 지저귐에 잠이 깼다. 뜰로 나오자 소리는 요란한데 멧새들은 보이지 않았다. 집 뒤꼍 숲에서 지저귀나 보다. 카메라를 찾아 메고서 뒷산 숲에서 앵글을 잡자 멧새들이 놀라서 달아났다. 그들에게는 카메라가 자기들을 해칠 흉기로 보이나 보다. 다시 카메라를 제자리에다 갖다두고 뒷산에 올랐다.

세상의 명리는 물거품이에요

안녕! 멧새들아, 놀라게 해서 미안타.

"저희들은요, 어쨌든 사람들이 무엇을 가지고 저희를 노려보는 것은 질색이에요."

그래 알았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 너희 귀여운 모습을 담고자 그랬던 거란다.

"저희는 우리들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밝혀지는 것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아요. 아저씨가 저희 모습을 담아서 인터넷에다 올리면 사람들이 저희를 잡으려 몰려오잖아요. 사실은 아저씨가 저희 얘기 쓰는 것도 좀 그래요. 고약한 사람들에게 저희가 사는 곳이 알려지는 게 싫거든요.

사람들은 저희와 더불어 이야기하거나 함께 놀 줄은 모르고 무작정 저희를 잡으려고만 해요. 저희도 하느님의 자손으로 이 세상을 당당히 살아갈 권리가 있는 데도 사람들은 저희들의 그런 권리마저 빼앗으려고 해요."


그래 너희들의 말이 맞다. 내가 너희 말을 사람들에게 그대로 전하겠다.

▲ 산골 농사꾼들이 고랭지 배추 모종을 내고 있다
ⓒ 박도
"아저씨, 이젠 아주 내려오신 거죠?"

그래. 아주 내려왔단다. 오늘은 아침밥 먹고 면사무소에 들러 주민등록부터 옮기려고 해.

"여기서 오래오래 사셔요."

글쎄다. 그것은 내 맘대로 할 수 없단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이거든.

"그 말은 맞네요. 저희 새들도 마찬가지예요. 아무튼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사시면서 저희들과 잘 지내요. 근데 여태 다리가 완쾌되지 않으셨네요."

곧 나을 테지. 귀여운 멧새들아, 염려해 줘서 고맙다.

"두 달 서울에서 지내보니 어땠어요?"

마음 고생 좀 했단다. 여기에 오니까 내 마음은 편한데 그곳에의 미련을 잘 떨쳐 버리고 너희들의 동무로 잘 살게 될지 미리 장담할 수 없구나.

"아저씨는 잘 배겨 내실 거예요. 이 산골에 사시면서 산골마을 이야기랑 저희 얘기랑 다람쥐 고라니들의 얘기랑 쓰시면서, 아저씨가 예전부터 쓰고 싶은 얘기들 죄다 쓰시면서 느긋하게 지내세요. 세상의 명리는 한낱 물거품이에요. 한때 잘 나간다는 사람도 쇠고랑차고 큰집에 드나드는 사람이 좀 많나요. 사람 세상에는 이런 말도 있다면서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너희들이 모르는 말이 없구나.

"저희 멧새들이 보금자리를 잃고 있어요"

▲ 면사무소가 있는 안흥 관말마을
ⓒ 박도
"그럼요. 저희들은 귀가 밝아서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멀리서도 다 들어요. 글을 쓰시다가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거나 사람의 일로 속이 상할 때는 뒷산으로 올라오세요. 그런데 아저씨는 담배를 안 태우시네요."

나 무척 골초였다가 3년 전부터 딱 끊었단다.

"아주 잘 하셨어요. 저희들은 담배 물고 산에 오르는 사람 제일 싫어해요. 차를 타고 달리면서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집어던지는 사람은 아주 나쁜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저희 멧새들이 보금자리를 잃고 있어요. 얼마 전에도 고성 양양 일대에서 산불이 나서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 이곳으로 옮아온 형제자매들도 많아요."

몇 해 전에 나도 산불 현장을 봤단다. 정말 무섭더구나. 그때 산불도 등산객이 버린 담뱃불이 원인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더욱 금연하기로 결심도 했단다.

"아저씨, 정말 잘 하셨어요. 그래서 아저씨는 저희 동무가 될 수 있어요. 드리고 싶은 말은 많지만 다음에 또 할게요."

그렇게 하려무나. 나도 얼굴 닦고 면사무소에 가야한단다.

"아저씨, 다음 날 또 봐요."

안녕, 멧새들아.

아침밥을 먹은 뒤 아내와 함께 면사무소로 가서 전입신고를 마쳤다.

▲ 강원도는 온통 산불 비상이다. 산불조심 깃발이 강원도를 뒤덮고 있다
ⓒ 박도

덧붙이는 글 | 그동안 연재해 오던 <안흥 산골에서 띄우는 편지>를 도서출판 지식산업사에서 단행본으로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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