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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화이트, 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마이클 화이트, 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 함께
<가상역사 21세기>를 손에 쥐었을 때 불현듯 잭 런던의 <강철군화>(잭 런던, 차미례 옮김, 한울출판사)가 내 머리를 스쳤다. 왜? 1908년에 출간된 <강철군화>는 20세기 초 노동자를 위해 투쟁한 혁명가 어니스트 에버하드의 이야기인데, “그의 상류계급 출신의 아내 애비스 에버하트가 기록해 둔 원고가 사회민주주의의 전 세계적이고 최종적인 승리가 이루어진 이후로도 7백 년 동안이나 발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가, 마침내 사회주의 세계국가 아디스의 한 문헌학자에 의해 발견되어 공개된 형식을 취한 이색적인 구성의 걸작품"(<강철 군화> 3쪽)”이기 때문이다.

<가상역사 21세기>가 100년 후 서기 2112년을 현재로 삼아 회고하는 방식이 독특해서 눈길이 간다? 에이, 겨우 100년 가지고 뭘 그러시나! 강철군화는 무려 700년 후인 27세기를 현 시점으로 삼고 있는데.

<가상역사 21세기>와 같은 먼 미래를 예측하는 책들은 현재(2005년)의 패러다임이나 시스템이 미래에는 어떻게 작용을 하는지, 만약 소멸이 됐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됐는지를 설명해야 하는데, 그런 일련의 작업들이 결코 만만한 게 아니다.

그러므로 지은이의 미래 예측에서 섬세함을 기대한다는 건 애초에 단념하는 게 좋을 듯싶다. 대신 뭉뚱그려졌을지라도 현 패러다임과 시스템의 미래버전이 어떤 형식을 취하고 있는가에 중점을 두고 지켜본다면 나름대로의 소출이 있을 듯싶다.

바로 1~2년의 미래가 아닌 약 100년여에 걸친 미래라면 더욱더 공백은 클 수밖에 없다. 그 공백을 메우는 건 오직 지은이들의 상상력의 질에 의해 좌우된다. 따라서 가상역사의 공간을 채우는 지은이들의 픽션이 무엇을 근거하고 있는가가 미래서(書)의 주 관건이 된다.

미래서이기에 과학기술만 그 예측 근거로 쓰인다면, 반토막짜리 가상역사가 될 뿐이다. 의학, 환경, 인권평화, 시민사회 등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과학만의 미래가 될 뿐이다. 그런 세상은 너무 위험하게만 느껴진다.

공동저자인 마이클 화이트와 젠트리 리가 각각 과학저술가와 미 우주항공국의 주임연구원인 터라 책장을 넘기기 전까지는 과학이 사회의 다른 영역을 앞도 하는 방식으로 내용이 전개되지 않나, 하는 우려가 있었다.

다행히 저자들의 직업관이 짙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세계관이 그리 폭넓지 못하다 게 필자의 결론이다. 서구의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한 서술이나 기술이 또 다른 물신주의의 반열에 올려지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바로 그것이다.

유전자 지도

하지만 첫 번째 장인 생물학 혁명 부분은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21세기 벽두에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킨 인간 유전자 지도의 완성은 유전학의 그 무한한 가능성을 알리는 서막에 불과했다. 게놈의 지도화로 동네 약국 어디에서나 개인 유전자 정보를 확인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 분석을 근거하면 각 개인의 향후 미래의 삶까지 예측되기에 고위 공직자들, 특히 정치인들은 인사 청문회나 재산공개뿐만 아니라 유전자 검증도 받아야 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랜디 홀랜드가 유전자 정보 스캔들에 휘말리는데, 그 정보는 단지 그의 머리카락 한 가닥에서 나왔지만 그를 곤궁에 처하게 된다.

“전 세계의 신문과 웹사이트도 이 기사로 거의 도배하다시피 했다. 홀랜드는 즉각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했다. 그러자 부통령 후보가 공화당의 새로운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일주일 뒤 민주당은 기록적인 대승을 거두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유전학은 새로운 학문이 지닌 거대한 힘을 과시하면서 정치의 판도를 바꿔놓았다(21쪽)”며 게놈이 우리 일상사에 미칠 엄청난 영향력을 강조한다.

더구나 물리학이 접목된 형태인 분자의학으로까지 발전하게 된 유전학은 인류의 생명연장을 뛰어넘어 직접 아기를 디자인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필자는 섬뜩함이 느껴졌다. 아기를 디자인 한다는 게 마치 생명을 ‘찍어’낸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필자가 특별히 종교생활을 하지는 않지만 인간에 의한 ‘생명창조’가 과연 합당한 일인지 물음표를 달아 놓을 수밖에 없다.

또한 유전학과 미디어의 결합에 대한 부분도 빈약함이 느껴졌다. 지은이들은 대중의 자각이 있기 전에 핵시대가 도래했다며, 미디어를 통해서 유전학이 대중들의 견제를 받는다면 그것으로 좋은 일이라는 장밋빛 견해를 내놓았다. 그러나 필자는 미디어와 동반자 길을 걷는 유전학이 긍정적인 요인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예측에 동의할 수 없다.

미디어에 의해 각색된 유전학은 대중의 환상에 부합되어 유전학이 몰고 올 파장을 희석시키지 않을까? 현재의(2005년) 서울대 황우석 박사에 대한 언론들의 시각이 칭찬 일변도인 터라 대중들의 유전학, 생명공학에 대한 접근 역시 그 범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유전학이 알기 쉬운 분야가 아닐 뿐더러 (예방의학에 의한)생명연장과 같이 개인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다주기에 그 폐해를 통재한다는 건 대중들의 심리를 정면으로 거스를 수도 있다.

핵무기처럼 대량살상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눈에 보이는 이득을 주는 유전학이 미디어의 힘까지 얻는다면 그것에 대한 폐해는 점점 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다. 언젠가는 분명 폭발하겠지만.

핵전쟁

앞서도 언급했듯이, 먼 미래를 예측하는 책들은 현재의 패러다임이나 시스템이 미래에도 존재할 것인지, 존재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예측하는 것을 지켜보는 게 미래서 읽기에 초점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가상역사 21세기> 두 번째 장인 핵전쟁 편은 전형적인 픽션이었다. 2016년, 인도의 사이버 공격과 잠무∙카슈미르에 대한 기습 공격으로 모든 국가기능이 마비된 파키스탄이 핵탄두 미사일을 인도에 발사하고, 그 보복으로 인도도 파키스탄에 핵미사일을 발사해 일류는 말로만 듣던 핵전쟁을 맞이하게 된다는 게 줄거리다.

두 번째 장에서 핵 무장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이 잠무∙카슈미르를 두고 해묵은 분쟁을 일으킨다는 건 현재(2005년)의 구조다. 하지만 양국이 핵무기를 사용해, 말로만 듣던 핵전쟁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그 구조에서 벗어나 최악의 길을 걷는다. 그런데 문제는 2005년의 구조와 2016년의 탈구조 사이에 인과관계가 미약하다는 것이다. 아니 좀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전쟁이 하루 만에 종전된다는 건 핵전쟁의 가공할 만한 위력을 역설적으로 설명했다고 긍정적으로 해석 할 수 있다.

게릴라전에서 시작된 분쟁이 인도의 정규군 투입과 함께 사이버 공격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어차피 픽션이기에 수세적 입장에 놓인 파키스탄의 핵사령관이 핵무기 버튼을 누른다는 가정은 얼마든지 세울 수 있다.

하지만 재래식 전쟁에서 핵전쟁으로 넘어가는 장면 전환은 단 몇 시간 만에 이루어질 만큼 매우 설득력이 떨어졌다. 더군다나 아무리 도시 기능의 마비로 통신 시설이 차단됐다고 하더라도 뜬소문을 근거하여 핵 버튼을 누른다는 게 당혹스러웠다.

뿐만 아니라 방사능 오염에 대한 고려가 없었는지, 자국 국경과 가까운 곳을 향해 핵미사일이 발사되는 대목에서는 힘이 빠질 정도였다. 반목하는 상호간의 핵 보유를 두고, ‘공포의 균형’ 이라는 말을 쓸 만큼 핵무기의 사용은 마지막 카드, 최후에 카드로 사용돼야 함에도 <가상역사 21세기>에서는 ‘공포의 균형’이 와해되는 순간이 너무 순식간이었다.

오히려 강대국들의 핵잠수함 사령관의 오판으로 인하여 핵전쟁이 시작됐다고 하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상대국의 사이버전의 파장으로 지상과의 모든 교신 수단이 제한된 핵잠수함이 재래식 무기(어뢰)에 의해 피격된다. 잠수함 사령관은 이미 핵전쟁이 시작됐다고 판단, 적재된 탄도미사일(SLBM)을 모두 발사한다. 결국 온 인류는 핵전쟁의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뭐 이런 식으로….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

위에 두 부분은 <가상역사 21세기>에서 필자가 가장 설득력 있게 느낀 것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예로 든 것이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라 의미 있게 다가오는 부분은 꽤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3장 대혼란에서, 미래사회에서는 현재와 같은 고정급 임금제도가 낡은 방식으로 치부될 수 있다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현재와 같은 급여지급 방식이 절대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5장 네트와 6장 환경과 우주 부분도 눈여겨 볼만한 장이었다. 지은이 중의 한 사람인 젠트리 리가 미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원인 까닭에 우주에 대한 부분은 꽤 생동감이 있었다.

서론부분에서 <가상역사 21세기>를 감히(?) <강철군화>와 비교시켜 불쾌함을 느끼실 분들도 있었을 것이다. 가장 위대한 사회주의 작가라 칭송받는 잭 런던의 대표작 <강철군화>와 비교를 하다니! 둘 다 시점이 미래라는 것, 그런 만큼 픽션에 의해 쓰였다는 공통점이외에는 별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강철군화>는 위대한 소설이니까!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있다. 현재는 과거가 민만큼 미래가 당겨서 이루어졌다. 과거와 미래는 현재를 견인하는 두 축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과거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 관심도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로 <가상역사 21세기>는 미래를 그려 볼 수 있는 계기를 던져주었다.

우리가 그리는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물론 유토피아적인 미래를 꿈 꿀 것이다. 그러나 손 놓고 있으면 자연스레 유토피아가 되는가? 미래가 유토피아든 디스토피아든 사람의 의지에 의해 그것이 결정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사실!

덧붙이는 글 | 도서 전문 리뷰 사이트 리더스 가이드(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가상역사 21세기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책과함께(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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