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봄비가 여름 장마 비처럼 퍼부어대는 늦은 밤. 두 형제는 오래도록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무슨 이야기가 그리도 재미나는지 간간이 들리는 웃음소리에, 작은 방에서 여자들만의 수다를 떨던 동서와 저는 서로 마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동서는 된장을 풀고 콩나물과 쑥을 한데 넣고 시원한 해장국을 끓여내었습니다. 두 형제는 연신 ‘어 시원하다, 어 시원하다’를 연발하면서 해장국을 두 그릇씩이나 비웠습니다. 그리고 집을 나섰습니다.

밤새 퍼붓던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고, 하늘은 봄 햇살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는지, 허물 벗듯 먹구름을 걷어내고 있었고, 먼데 하늘은 성급한 봄 햇살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홀가분하게 일도 잘 마무리 해주었으니, 국도로 천천히 가지 뭐.”
그건 고속도로를 싫어하는 제게 대한 남편의 따뜻한 배려였습니다.

어쩌다 남편이 지방에 일이 있어 함께 따라나설 때 고속도로를 달리다보면 왠지 심장이 오그라드는 듯한 긴장감에 차에서 내리고 나면 온 몸을 아주 심하게 두들겨 맞은 것 같은 통증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고속도로는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고, 차들은 전쟁터를 향해 죽어라 달리는 것 같았고, 그런 차들을 보면서 느끼는 불안과 긴장으로 인해 온 몸에 힘이 있는 대로 들어가니 차에서 내릴 때면 당연히 욱신욱신하는 근육통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지방으로 일을 갈 때는 바쁘니까 하는 수없이 고속도로를 이용하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는 저를 위하여 한적한 국도나 지방도로를 이용하는 배려를 보여주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날 아침의 그 배려는 제가 고속도로를 싫어하는 것에 대한 배려보다는 전날 힘들게 일을 거들어 준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인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기분은 참 좋았습니다. 시동생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간다는 것에 대한 보람이 바로 행복으로 연결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익산을 벗어나 한참을 가다보니 강경이 나왔습니다. 강경에 도착하여 우리는 시아버님이 좋아하시는 새우젓도 한통 사고 명란젓도 한통 샀습니다. 그리고 다시 출발하여 논산에 도착하니 그곳엔 딸기축제가 한창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찌나 차가 많던지 주차할 자리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다 결국 차를 주차할 수가 없어 아쉽지만 그냥 지나쳐야 했습니다. 대신에 공주에 들러 갑사를 구경하고, 부처님께 우리 가족들의 화목과 소원성취를 빌었습니다.

갑사를 내려오는 길엔 군밤을 사서 먹으며 오랜만에 남편과의 오붓한 데이트를 즐기기도 하였습니다. 시간은 이미 점심때를 훌쩍 넘기고 있었지만, 남편이나 저나 예정에도 없던 여행에 마냥 행복한지라 배고픈 것도 잊고 있었습니다.

그때 남편이 “우리 작년 추석 때 부모님 모시고 성묘 다녀오면서 먹었던 우렁 쌈밥 그거 먹으러 가볼까.”
저도 그때 그 맛이 참으로 특별했던 것이 기억났고, 그 기억 때문인지 갑자기 허기를 느꼈습니다. 우리는 그 맛있는 우렁 쌈밥 집을 찾아 신나게 달렸습니다.

그런데 길눈 밝기로 소문난 남편이 그곳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당진 근처였던 것만은 확실하다고 말하면서도 남편은 정확한 위치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뱃속은 우렁 쌈밥소리에 예민한 돌기들을 곤두세우는지라 남편의 뱃속에서도 또 저의 뱃속에서도 꼬르륵 하는 아우성들을 쉼 없이 외쳐대고 있었습니다.

근처를 몇 바퀴나 돌던 남편은 도저히 안 되겠던지 간판에 ‘우렁’이라는 글자만 보고선 차를 세웠습니다. 얼마나 헤맸던지 시간은 벌써 오후 5시를 넘어서고 있었으니, 허기진 배에서 터져 나오는 그 아우성들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하여 그 우렁 쌈밥 집 찾기를 포기하고 근처 아무 식당이나 찾아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그때를 생각하며 우렁 쌈밥을 시켰고, 이제나 자제나 밥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는데 그때 주인아저씨가 들고 나온 쌈이 담긴 쟁반을 보고 저는 탄성을 질렀습니다.

▲ 봄을 옮겨놓은 듯한 꽃 쌈
ⓒ 김정혜
그건 바로 참으로 아름다운 꽃밭이었습니다. 저는 아저씨께 “아저씨! 이 꽃은 뭐예요? 장식 이예요? 아니면 이 꽃도 먹는 거예요?”
저의 의아스런 물음에 주인아저씨는 빙그레 웃으시며
“네. 그 꽃도 쌈을 싸서 드시는 겁니다. 유기농으로 저희가 직접 재배했습니다. 한번 드셔 보세요.”

남편도 저도 처음 보는 꽃 쌈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먹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봄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황홀경에 저는 한참을 수저를 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먹어 버리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꽃 쌈
ⓒ 김정혜
하지만 남편은 어느새 우렁 된장을 가득 떠 넣고 예쁜 꽃을 하나 얹은 커다란 쌈 하나를 만들어선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꾸역꾸역 그 꽃 쌈을 입으로 밀어 넣고 있었습니다.
“어때 맛있어?”
남편은 입속에 밀어 넣은 쌈 때문에 차마 말은 못하고 엄지손가락을 힘 있게 펴 보이며 끝내준다는 표시인 듯 고개를 몇 번 끄덕여 보였습니다.

저는 그 맛이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그 꽃으로 인해 잠시 잊었던 허기가 다시 발동해 남편처럼 우렁 된장을 한 스푼 떠 넣고 꽃 중에서 제일 예쁜 것을 골라 쌈을 만들곤 입으로 넣어 보았습니다.

▲ 우렁 된장속에도 꽃이 피었다.
ⓒ 김정혜
그 맛이란…. 뭔가 쌉싸름한 것도 같고 달짝지근한 것도 같고 하여간 그 맛이 기가 막혔습니다. 더욱이 꽃을 먹는다는 그 경이로움에 저는 그 맛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정신이 없었습니다. 남편과 저는 한참을 걸신들린 사람들처럼 정신없이 먹었습니다.

어느새 우렁 된장도 동이 나고 꽃들도 동이 나고 다만 허기졌던 배만 아주 포화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포만감이란 그 어떤 말로도 표현되지 않더군요. 단순히 한 끼 식사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는 것과는 거리가 아주 먼, 뭔가 아름답고 예술적인 그 어떤 것으로 제 육신의 허기를 채웠다는 그런 신비스러움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우리부부가 식사를 다 끝낸 것을 확인한 주인아저씨는 이번엔 허브차를 한잔 가지고 오셨습니다. 꽃 쌈으로 한껏 배불린 다음에 마시는 허브차라서 그런지 허브 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향기로운 것 같았습니다.

식당을 나와 다시 차에 오른 남편은 제게 그러더군요.
“어제 오늘 참 기분 좋다. 어제는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뭔가를 해주어서 기분이 좋고, 오늘은 생전 처음으로 꽃으로 배를 불리니 기분이 좋고 매일매일 이렇게 기분이 좋으면 좋겠다.”
저는 남편의 그런 기분 좋은 모습에 덩달아 행복해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참 웃을 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이 줄어들어 늘 걱정인 남편. 가장의 그 무거운 책임감 때문인지 요즘 부쩍 어깨가 처질 대로 처져 있어 한없이 가여워 보이던 남편.

노심초사 연로하신 부모님 걱정에, 늘 어려운 동생들 걱정에, 남들처럼 제대로 잘해주지도 못한다며 항상 못난 아빠 못난 남편이라며 자책하던 남편. 그런 남편의 핼쑥한 얼굴에 오랜만에 환하고 밝은 웃음꽃이 피는 걸 보는 제 가슴은 왠지 자꾸만 아리고 쓰려 왔습니다. 그런 제 마음속으로 조용한 다짐 한 가지가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부부일심동체, 그렇습니다. 부부는 일심동체이니 앞으로는 남편의 얼굴에 언제나 웃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항상 애쓰고 노력하리라 스스로 다짐을 해보았습니다.

비 개인 봄날 오후. 우리부부는 아름다운 꽃으로 배를 불리고 참으로 오랜만에 서로 마주보고 웃으며 잡아도, 잡아도 잡히지 않는 봄날 아지랑이 같은 행복이란 걸 마음껏 잡아 보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 '동생에게 해줄게 있어서 참 다행이야' 에 이어진 기사입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