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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지가 힘이 엄청 좋습니다
낙지가 힘이 엄청 좋습니다 ⓒ 박희우
나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낙지를 씻기 시작했다. 아내가 그런 나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나를 슬쩍 밀쳐내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보기가 민망했던 모양이다. 나는 못이기는 체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아내가 비명을 질러대며 내 허리를 꽉 껴안는 것이었다.

"여보, 낙지가 제 손을 물어뜯고 그래요."

나는 재빨리 아내의 손을 감고 있는 낙지다리를 떼어냈다. 정말 잠깐이었다. 아내가 무안한 듯 내 허리에서 손을 풀었다. 나는 헛기침을 몇 번했다. 아내를 뒤로 물리쳤다. 나는 낙지다리를 잡았다. 힘이 엄청 좋았다. 나는 아내더러 가위를 달라고 했다. 가위로 낙지다리를 잘랐다. 아내는 잘려진 낙지다리를 접시에 담았다.

낙지를 사이에 두고 아내와 나는 마주앉았다. 나는 낙지를 초장에 찍었다. 아내의 입에 넣어주었다. 아내가 못이기는 체 입을 벌렸다. 그러다 수줍게 웃었다. 낙지는 연신 접시 위에서 꼼지락댄다. 나는 낙지 한 젓가락을 집어들었다. 입에 넣었다. 낙지가 척척 입천장에 달라붙는다. 술잔이 오갈수록 아내의 표정이 밝아진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우리 벚꽃 구경갈까?"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아내는 마다하지 않았다. 우리 부부 말고도 벚꽃 구경나온 사람은 많았다. 밤에 보는 벚꽃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나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일까. 아내를 보는 순간 갑자기 춘흥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흥에 겨워 나는 아내를 꼭 껴안았다. 지나가는 사람이 힐끔 우리 부부를 쳐다보았다.

아내가 내 품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때 눈송이 같은 게 머리 위에서 흩날렸다. 벚꽃이었다. 벚꽃이 후드득 떨어지고 있었다. 아름드리 벚꽃나무였다. 아내와 나는 벚꽃나무 아래에 서 있었다. 어제는 달도 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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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이 맞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저는 수필을 즐겨 씁니다. 가끔씩은 소설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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