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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장은 채유정의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고 부축해 걸었다. 채유정은 다리에서 심한 고통을 느꼈지만 걷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내려오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숲이 우거지고 바위도 많이 부축하여 걷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김 경장은 걸음을 멈추고 다리를 구부려 앉았다.
"제 등에 업히세요."

"괜찮아요."

"이대로 가다가는 저들에게 발각되고 말 겁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할 수 없이 채유정은 김 경장의 등에 업혔다. 그녀를 자신의 등에 꽉 밀착시키고는 걸음에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거의 뛰다시피 언덕을 내려왔다. 바람소리와 새소리는 아득히 높은 곳에서 어지럽게 들리다가 문득 뚝 끊어지곤 하였다. 발 밑에 까맣게 부식된 낙엽들이 미끄러워서 굵게 비어져 나온 나무 뿌리와 덩굴식물들을 잡으며 가까스로 내려갔다.

거친 호흡소리와 심장의 박동이 귓가에 쿵쿵 울렸다. 이제라도 우악스러운 손길이 목덜미를 낚아챌 것만 같아 김 경장은 더욱 속력을 더해 내려왔다. 경사진 언덕을 내려오는 팔과 다리는 뻣뻣하게 굳어갔고 한없이 무거웠다.

겨우 언덕을 내려오자 껍데기 모양의 분지가 눈 아래에 펼쳐져 있는 게 보였다. 회오리바람이 황토 먼지를 휘감아 올리면서 들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 들판을 그대로 지나갔다가는 공안에게 발각될 것만 같았다. 둘은 일부러 산의 능선을 따라 걸었다. 길이 끊어지고 나무 뿌리와 칡넝쿨이 엉킨 곳을 옆으로 돌아갔다.

김 경장은 쉬지 않고 달려 숲의 대기가 액체처럼 가슴에 차 올라서 숨이 끊어지는 것만 같았다. 전나무 숲을 빠져나와 길가에 세워진 승용차를 발견했을 때 김 경장은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다리의 힘이 완전히 풀려나갔다.

채유정이 등에서 내리자 김 경장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목에까지 올라온 거친 숨을 마음껏 토해냈다. 하지만 그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채유정이 아픈 다리를 이끌고 운전석에 올라타는 것이다.

"운전은 제가 하겠습니다."

김 경장이 얼른 일어나 앞좌석의 문을 열었다. 채유정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제가 운전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차는 수동이잖아요. 두 다리를 사용하기엔 무리입니다."

김 경장은 채유정을 부축하여 그녀를 조수석에 태웠다. 그리고는 자신은 얼른 운전석에 올라타 차를 출발시켰다. 흙을 박차면서 차가 울컥 앞으로 나아갔다. 차는 비포장 도로를 춤추듯이 요동치며 돌진해갔다. 작은 돌들이 창문과 차체를 요란하게 때리고 튕겨져 나갔다. 뿌옇게 일어난 먼지가 사방의 시야를 가렸다. 백미러를 들여다 볼 여유도 없었다.

발전소를 옆으로 돌아 작은 마을로 접어들었다. 마을의 길 여기저기에 나뒹구는 오래된 생활 쓰레기들이 타이어에 짓이겨져 깨지거나 튕겨 나갔다. 그 소리들이 먹물 같은 어둠 속에 엎드려 있는 텅 빈 골목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겨우 여유를 얻어 백미러를 보았으나 따라온 차는 보이지 않았다. 저절로 긴 한숨이 새어나왔다.

"우릴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아요."

"안심하긴 일러요. 서로 무전 연락을 해서 길목을 지킬 지도 모르죠."

마을길을 빠져나와 제법 큰길로 접어들었으나 공안은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김 경장도 안심이 되는 듯 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며 핸들을 잡았다.

조수석에 앉은 채유정이 옆을 돌아보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되죠?"

"나도 모르겠어요. 일단은 여기를 빠져나가야겠죠."

차는 무순 시내로 들어가지 않고 곧장 심양으로 향했다. 심양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였다. 그러자 채유정이 고개를 내저었다.

"심양엔 여기보다 더 많은 공안들이 김 경장 님을 잡기 위해 진을 치고 있을 거예요."

"그럼 어디로 가야되죠?"

그녀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다가 바로 앞의 콘솔 박스를 열었다. 거기서 지도를 꺼내어 한참동안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환인현(桓仁縣)으로 가요. 이 길을 곧장 가면 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굳이 그쪽으로 갈 이유가 있는 겁니까?"

"환인현은 인구가 30만 정도 되는 작은 도시예요. 전체 인구 중에 조선족은 8천 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아 그들을 감시를 피할 수 있을 겁니다."

김 경장은 차를 돌려 환인현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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