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시아나항공 특별기를 타고 베를린 테겔 공항에 도착한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공식 수행원을 태운 차량이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특별기를 타고 베를린 테겔 공항에 도착한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공식 수행원을 태운 차량이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당

서울에서 11시간을 비행해 날아온 끝에 10일 오후 3시(이하 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테겔(Tegel) 공항에 도착한 노무현 대통령은 독일의 노(老) 대통령으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전 독일연방공화국 대통령은 이날 독일 바이마르시(市) 부켄발트 포로수용소 해방 60주년(11일)을 맞이해 유력 일간지 <타게스슈피겔(Tagesspiegel)>과 가진 회견에서 "과거를 반성했다는 '자기 도취'에 빠져서는 안된다"고 독일 민족의 일부 우경화 기류에 대해 강한 경고를 했다.

과거사 처리를 얘기할 때마다 일본과 두드러지게 비교되는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은 과거청산에 충실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으나 일본은 자국의 아시아 침략 행위에 대해 사죄와 속죄에 인색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돈은 많지만 친구도 없다'는 빈축을 사고 있다.

바이츠체커 "과거에 대해 눈감는 자는 결국 현재에 대해서도 눈멀게 된다"

바이츠체커 전 대통령의 '경고'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85년 당시 일본 수상이 '전후 정치 총결산'을 내걸고 A급 전범까지도 추도하는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했을 때, 바이츠체커 전 독일연방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40주년 연설에서 독일인의 혹독한 책임을 물음으로써 '과거극복'에 대한 일본과 독일의 정치 지도자의 인식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바이츠체커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대해 눈을 감는 자는 결국 현재에 대해서도 눈이 멀게 된다. 비인간적인 행위를 마음에 새기려 하지 않는 자는 또 그러한 위험에 빠지기 쉽다."

사실 독일 지도자들은 이처럼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신들의 잘못을 공식 인정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1994년 로만 헤르초크 독일 대통령은 바르샤바 봉기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나는 독일인들이 폴란드인들에게 행한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빈다"라며 고개를 숙였으며, 2002년 2월 이스라엘을 방문한 요하네스 라우 대통령은 이스라엘 의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과거 독일인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용서를 빌며 나와 내 세대의 잘못에 대해서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또 슈뢰더 현 총리도 지난해 8월 폴란드 아우슈비츠 해방 60주년 행사에 참석해 "폴란드를 점령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데 대해 우리는 다시 진심으로 머리를 숙입니다"라고 자신들의 잘못을 공식 인정했다.

'바르샤바 유태인 게토'에서 무릎을 꿇고 공식 사죄한 브란트 전 수상

특히 빌리 브란트 전 수상이 70년 12월 7일 폴란드 방문 당시 '바르샤바 유태인 게토'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의 잘못을 공식 사과한 것은 독일의 반성과 사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브란트 수상은 예기치 않은 이 '상징적 행동'으로 전세계 매스컴에 독일의 과거 청산과 사죄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당시만 해도 독일 여론은 과반수 이상이 '과장된 제스처'라고 평가하는 등 비판적이었으나 나중에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결국 브란트는 이른바 '동방정책'을 추진해 '접근을 통한 변화'로 동독과의 화해, 동유럽 국가의 신뢰 등을 바탕으로 '거대 독일의 재탄생'이라는 주변국의 우려를 불식시킴으로써 이 무릎 꿇음(Kniefall)은 90년 10월 독일 통일의 밑바탕이 된 역사적 사진으로 평가받게 된 것이다.

독일 정치 지도자들의 이러한 자발적인 반성의 모습과 노력은 프랑스 등 이웃국가는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인정받아 주변국들도 더 이상 독일에게 반성이나 배상을 요구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와 반대로 과거에 대한 명확한 반성이나 배상 없이 군국주의의 부활을 상징하는 신사참배를 강행하고 있으며, 그것으로도 부족해 독도 영유권 주장과 역사교과서 왜곡 등으로 주변국들의 생채기에 '소금'을 뿌리고 있는 것이다.

베를린의 심장부는 지금 '공사중'
유태인 희생자 홀로코스트 추모비(Holocaust Mahnmal) 건립

베를린의 심장부는 지금 '공사중'이다.

독일 정부는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門) 인근의 5800평 규모의 부지(1조원 상당)에 3천억원의 공사비를 들여서 유태인 희생자 홀로코스트 추모비(Holocaust Mahnmal)를 건립하고 있다.

홀로코스트 추모비가 세워지는 이 부지는 19세기말까지는 독일제국의 왕실시설이었고,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었고, 그리고 나치 치하에서는 선전상 괴벨스의 지하벙커가 자리잡고 있었던 곳이다. 또 부지 인근에는 히틀러의 지하벙커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추모비는 부지 내에 2711개의 검은색 직육면체 형태로 건립되고, 지하에는 유태인 학살 관련 학습안내관이 내부 시설도 들어선다. 오는 5월 10일 종전 60주년을 맞아 준공될 예정이다.

추모비 건립의 의미는 명징하다. 독일 통일 이후 독일 정부의 과거사 청산 일환으로 나치에 의해 희생된 유럽 전역의 유태인 희생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이 추모비가 지난 15년간 찬반 양론과 우여곡절을 거친 후 착공된 것은 독일인의 높은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획이 시작된 지난 88년부터 공사에 착수한 2003년까지 15년간 건립 자체뿐만 아니라 용도·활용목적에 대해 독일 정치권과 언론, 그리고 일반국민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의를 가졌다.

이를테면 지난 98년 선거전에서도 콜 당시 총리와 슈뢰더 현 총리 진영은 추모비 건립 방향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였다. 콜 총리는 유태인 희생자만을 위한 추모비 건립으로 방향을 잡은 반면에 슈뢰더는 추모비 건립보다는 미래를 겨냥한 '역사 학습센터' 건립을 주장했다.

또 지난 2003년에는 추모비 콘크리트 부식 방지재료 등을 납품하는 화학회사의 나치시대 독가스 제조 전력시비로 공사가 중단되었다가 과거 화해 차원에서 계속 참여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기도 했다.

결국 이와 같은 논란은 독일이 국제적 위상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과거 청산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자기반성과 미래지향적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