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제 하루 종일 온 나라를 들썩거리게 했던 산불 소식에, 오늘 내리는 비가 참 안타깝기만 합니다. 어제 이 비가 내렸더라면, 훨훨 타오르는 그 불길을 다소 덮어 줄 수도 있었으련만….

화마가 휩쓸었던 온 산야에 지금 내리는 이 비가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참을 손바닥으로 비를 받아가며 밖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 하나 ‘비 오는 날은 김치부침개만한 특별식이 없지’ 하던 남편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오늘 하루도 고단한 일상에 지칠 대로 지쳐서 집으로 돌아올 남편의 얼굴에 환한 웃음을 만들어 주고파, 음식 솜씨는 별로인 제가 그래도 제일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김치부침개를 저녁 메뉴로 정했습니다.

아직도 깊은 땅 속에서 편안한 겨울잠을 자고 있는 김칫독 뚜껑을 열어보니, 발갛게 잘 익은 김치가 그 찬란한 모습을 드러내었습니다. 그 중에 큼지막한 김치 한 포기를 꺼냈습니다.

밀가루 반죽을 하고, 거기에 달걀도 하나 넣고, 또 청양고추도 몇 개 썰어 넣었습니다. 다음으로 김치를 잘게 썰어 한데 넣어 잘 섞었습니다. 그리고 잘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반죽한 것을 한 국자 떠 넣었습니다.

맛있게 지글거리는 소리에, 부침개가 입으로 들어가지도 않았건만, 벌써 그 고소하고 매콤한 맛이 위속으로 전해진 듯 참으로 감칠맛이 도는 것이, 일단 오늘 김치부침개도 성공인 듯하였습니다.

▲ 보기에도 군침이 도는 김치부침개
ⓒ 김정혜
어느새 제 입에서는 콧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비 오는 날 김치부침개를 해주면 남편은 그 어떤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다며, 밥도 없이 부침개 몇 장을 먹어 치우곤 "우리 마누라 최고"라며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비행기를 태워댑니다.

결국 남편은 김치부침개로 배가 부르고, 저는 남편의 칭찬에 배가 부르고…. 그런 장면이 벌써 제 머릿속엔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었으니, 흥에 겨워 콧노래가 절로 흘러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먼저 몇 장의 김치부침개를 부쳐 아버지에게 들고 가던 저는 황급히 슈퍼로 달려가 막걸리 두 통을 샀습니다. 그리고 김치부침개와 막걸리를 들고 친정으로 갔습니다. 창으로 흘러내리는 비를 멍하니 바라보고 계시던 아버지께서는 김치부침개와 막걸리를 본 순간 갑자기 얼굴이 환해지시더니, 조급한 마음에 상도 없이 그냥 맨바닥에 접시를 놓고 앉아 드시느라 정신이 없으셨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가 마냥 어린애 같다며 금방 술상을 봐 오셨습니다.

▲ 김치부침개와 막걸리의 절묘한 만남
ⓒ 김정혜
주거니 받거니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비 오는 오후를 정답게 즐기고 계시는 모습에 ‘김치부침개에 막걸리가 뭐 그리 대단한 음식이라고 저리들 흥겨우실까’ 싶었습니다. 별 거 아닌 일에 흡족해 하시는 두 분의 모습에 제 가슴도 어느새 따뜻해져 왔습니다.

어느새 아버지의 입에선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 비 내리는 이 밤도 애절구려….’

어머니는 박수를 치시고 아버지는 손바닥으로 무릎 장단을 맞추시고…. 두 분의 흥겨운 모습에 넋을 놓고 있던 저는 부랴부랴 집으로 와서 김치부침개를 마저 부쳤습니다. 그리고 막걸리와 함께 상을 차리는 그 순간에 남편이 코를 '킁킁' 거리며 집으로 들어섰습니다.

"와! 이거 무슨 냄새야? 김치부침개 했어? 역시 이심전심이군. 안 그래도 비가 내리길래 김치부침개 생각이 절실했는데…"

남편도 아버지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뽀얗게 뒤집어쓰고 온 먼지를 털어낼 생각도 없이 연신 젓가락이 김치부침개로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막걸리도 한 사발 들이킵니다. 그러더니 '꺼억' 하고 거한 트림을 토해냈습니다.

저는 안 되겠다 싶어 남편의 등을 두들겨 욕실로 들여보내고, 아예 친정에다 술상을 차렸습니다. 술상이라 해봤자 김치부침개에 막걸리가 전부인 참으로 궁색하기 이를 데 없는 술상이었지만, 아버지도 어머니도 남편도 최고의 술상이라며 그 어떤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다시며 매우 흡족해 하셨습니다.

그 칭찬에 탄력이 붙어 저는 연신 부침개를 부쳐 내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미 막걸리 두 통이 동이 나고, 남편이 달려가서 막걸리 한통을 더 사다 나르고…. 사위 사랑은 장모라고 어머니께서는 남편에게 막걸리를 부어주시며,

"요즘 힘들지. 그래도 힘내서 열심히 살다보면 좋은 날이 있을 걸세. 나는 자네가 얼마나 믿음직스럽고 고마운지 모른다네. 정말 고맙네."

무엇이 그리도 고마운지 어머니는 남편의 두 손을 꼬옥 붙잡고는 연신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편은 비운 막걸리 잔에 다시 막걸리를 가득 부어 어머니께 드리면서, “장모님. 아닙니다. 제가 부족해서 좋은 음식 한 번, 좋은 옷 한 벌 해드리지 못하고, 늘 걱정만 끼쳐 드립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이 사위가 효도 한 번 하겠습니다. 부디 건강하게 지내십시오" 합니다.

부침개를 서로 입에다 넣어 주면서 사위와 장모는 참으로 정겨운 사랑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에 저는 내내 웃음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니 김치부침개와 막걸리 한 사발이 이렇게 사람을 감동시킬 줄은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네.’

비 오는 오후. 우리 집엔 김치부침개와 막걸리 한사발로 고소한 가족사랑이 솔솔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왜 기자회원이 되고 싶은가? ..내 나이 마흔하고도 둘. 이젠 세상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루종일 뱅뱅거리는 나의 집밖의 세상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곱게 접어 감추어 두었던 나의 날개를 꺼집어 내어 나의 겨드랑이에 다시금 달아야겠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보아야겠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