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옥탑방에 살아서 좋은 이유는 방 크기야 어떻든 방보다 훨씬 큰 옥상공간을 마음 대로 쓸 수 있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 베란다나 방에서 빨래 말릴 때, 너른 옥상에 빨래줄 걸어놓고 쨍쨍한 햇볕에 빨래를 말립니다. 다른 사람들 집안에서 냄새 풍기며 고기 구워먹을 때, 집 밖에서 맑은 하늘을 천장 삼아 시원한 바람을 환풍기 삼아 고기 구어 먹습니다.

이러한 다용도 옥상에 올해는 채소를 길러 보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채소 키워 먹을 자그마한 땅 한 평 없으니, 옥상에다 작은 채소밭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꾼 채소를 농약 걱정 없이 맘 편히 먹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이 상추를 키울 상자였습니다. 과일을 담는 나무상자나 스티로폼 상자를 구하라고 하길래, 어떻게 구해야 하나 잠깐 고민을 했습니다. 상추 심으려고 일부러 나무상자에 든 과일을 살 수는 없는 일, 또 요즘 과일은 종이 상자에 담겨 있어 나무 상자가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쉽게 스티로폼 상자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늦게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밤, 재활용쓰레기 더미 속에서 버려진 스티로폼 상자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 이 정도면 되겠어' 기쁜 마음으로 상자를 주워 왔습니다. 그러기를 두 번, 상자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 재활용 더미에서 주워온 스티로폼 상자
ⓒ 이갑순
그리고 봄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날씨가 풀리고 흙이 녹을 때를. 그런데 또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상추 모종은 대체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는 겁니다. 양재 꽃 시장에 가면 있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해 두었습니다.

날 풀리면 꽃시장에 나가 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도 아주 쉽게 해결이 되었습니다. 4월이 되어 동네 꽃집에서 상추 모종을 보았습니다. 아, 여기서 사면 되는 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식목일을 상추 심는 날로 잡았습니다.

드디어 식목일, 상추 심기로 한 날이 되었습니다. 먼저 스티로폼을 집 밖으로 가지고 나와 물이 빠질 구멍을 뚫었습니다. 다음은 흙을 구해 올 순서. 흙을 담아오기 위해 동네에 있는 하천으로 갔습니다. 하천 둔치에 있는 흙이 영양분이 많다는 주인 아주머니 말씀을 듣고 근처 산에 갈 마음을 접고 하천으로 갔습니다.

▲ 스티로폼에 구멍 내기
ⓒ 이갑순

▲ 흙 담아 오기
ⓒ 이갑순
흙을 스티로폼에 담아 다시 집으로 왔습니다. 스티로폼 아래엔 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주인집 창고에 있던 폐벽돌을 가져와 놓았습니다.

▲ 받침 벽돌
ⓒ 이갑순

▲ 받침 벽돌 위에 올리기
ⓒ 이갑순
그리고는 동네 꽃집에 가서 상추 모종이랑 고추 모종을 샀습니다. 상추 모종은 천 원에 네 개, 고추 모종도 천 원에 네 개에 팔고 있었습니다. 상추 모종 삼천 원어치, 고추 모종은 천 원어치를 사서 집으로 왔습니다.

▲ 꽃집에서 사온 상추와 고추 모종
ⓒ 이갑순
그리고 상추와 고추 모종을 심었습니다. 다 심고 나서 흙을 꼼꼼이 눌러 주니, 뿌듯하기 그지없습니다.

▲ 작은 채소 밭
ⓒ 이갑순
고추를 따 먹을 수 있을 정도가 되려면 아직 한참이나 있어야 될 겁니다. 천천히 물도 주고 사랑도 주면서 열매 맺을 때를 기다려야죠. 하지만 상추는 이번 주부터 당장이라도 따먹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내가 키운 채소를 먹는 기분은 어떨까, 벌써 기다려집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만큼 남아있길...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