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초례상(醮禮床) 밑으로 신랑을 보는 신세대 신부의 환한 웃음.
초례상(醮禮床) 밑으로 신랑을 보는 신세대 신부의 환한 웃음. ⓒ 곽교신
예전의 혼사는 매파가 사이에 끼고 양가 부모의 언약으로 이뤄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신부가 신랑의 얼굴을 초례 날 상 밑으로 살짝 본 것이 처음이었다거나, 그나마 부끄러워 얼굴도 못보고 첫날밤을 치르기도 했다는 말들은 전설 같기만 하다.

하지만 이 날의 신부는 살짝 보는 것은 고사하고 신세대답게 내놓고 환히 웃고 있었으나 결코 추하지 않고 오히려 상큼했으니, 백자 접시에 피자를 담아 낸 듯한 이런 모습은 문화 습속의 자연스런 흐름이요 변화일 것이다.

크게 부정적이 아니라면 변화하는 습속을 받아들이는 것도 문화 전수의 한 양상이다.

합근례 순서에서 합환주를 마시는 신부.
합근례 순서에서 합환주를 마시는 신부. ⓒ 곽교신
그래도 신랑신부가 첫 절을 나누고 표주박에 담아 신랑이 건네는 술을 마시는 '합근례'를 치르면서는 신세대 신부도 긴장하며 자못 진지했다. 합환주를 마시는 것은 한 남자의 영원한 반려가 되겠다는 뜻이요, 그 술엔 한 여자의 든든한 지아비가 되겠다는 한 남자의 뜻이 담겨 있다.

둘로 가른 표주박의 짝은 당연히 세상에 단 하나 뿐이다. 합환주를 표주박에 마시는 의미는 다이아몬드의 영원함을 강조하는 결혼반지 광고의 얄팍한 현란함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전통혼례에서 신랑신부가 절을 주고받는 행위는 그 자체의 의미가 크다. 인사로서의 절은 받거나 드리는 것이 전부이나 혼례에서는 신랑신부가 차례로 절을 주고받는다. 신부가 곱게 절을 하면 신랑도 예를 다해 절로 답한다.

남편이 부인에게 말과 행동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전래의 예절이다. 전통 혼례식에서 주고받는 절은 주례의 질문에 응답을 하는 신식 결혼과는 달리 몸으로 예를 표하는 깊은 뜻이 있다는 집례관의 설명이다.

내내 '홀기'로 얼굴을 가리고 식을 진행하는 집례관.
내내 '홀기'로 얼굴을 가리고 식을 진행하는 집례관. ⓒ 곽교신
신식 결혼식의 주례와 사회 역할을 겸한다고 보면 되는 '집례관'은 이승관(73) 성균관 전례연구원장이 맡았는데, 식이 진행되는 내내 부채로 얼굴을 반쯤 가렸다.

초례청에서 이 날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보다 얼굴을 크게 드러내는 건 예가 아니라는 뜻이라고 하니, 사소한 것에도 정성을 다하는 전통 혼례의 정갈함이 여기서도 보인다. 즐거움이 지나쳐 장난기마저 보이는 요즈음의 결혼식 풍경과는 격이 다르다.

얼굴을 가린 부채는 '홀기'라고 하는 데, 부채 안쪽에 식의 순서가 빼곡히 적혀 있어서 집례관은 이를 보며 혼례 절차를 실수 없이 진행한다.

엄격한 혼례 절차

혼례식 날에는 일반 백성도 왕가의 복식을 입을 수 있도록 했다. 이는 혼례를 '인륜지대사'로 여겨 이 날만은 백성들도 최고의 예우를 받았음을 뜻한다.

그런 만큼 전통 혼례의 절차는 복잡하기 그지없다. 혼담이 오가며 양가의 혼인 의사가 확인되면, 납채(신랑의 사주를 보내는 일), 연길(신부 집에서 혼례 날을 받아서 신랑 집으로 보냄), 납폐(지금도 흔히 치루는 함 보내기)로 이어진다.

'납폐' 때 '신랑 아무개가 신부 아무개에게 혼인을 청하며 예물을 보낸다'는 뜻으로 신랑이 함 속에 넣어 보내는 '혼서'는 일부종사의 의미로 고이 간직하다가 관 속에까지 넣어가는 귀중한 뜻이 있는 문서이다.

발걸음마다 거금을 뜯어내며 먹고 마시며 소란을 떠는 오늘날 함진아비의 풍습이나, 무리한 예물로 언쟁을 하는 오늘날의 결혼 풍습은 전통 혼례 절차 중 '납폐'의 본뜻을 망각한 크게 잘못된 습속이다.

납폐 이튿날 '친영'(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치름. 오늘날의 결혼식에 해당)이 있으니 '장가간다'는 말의 원형이요 우리가 잘 아는 초례청의 모습이다. 초례청은 엄숙하고 단아하지만 동시에 정겨운 덕담과 농이 오가면서 참석자 모두가 즐거운 흥이 넘치는 자리이다.

친영 후에는 일정기간 신부 집에서 머무는데, 이 기간은 며칠이 되거나 몇 달이 되기도 하고 일 년이 넘기도 한다.

드디어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시댁으로 가게 되니 이것이 '우귀'다. 말 그대로 신부가 완전히 시댁 식구가 되는 날로, '시집간다'는 말은 이 '우귀'에서 유래한다.

가마 타고 시댁으로 향하는 우귀 길은 신부로서는 언제 다시 친정에 들르게 될지 모르는 이별의 길이었으니 이제부터 '엄마'가 '친정 엄마'가 되는 눈물의 이별이 길기만 했다.

사진 속의 요강은 한지를 꼬아 엮은 지승요강에 옻칠을 먹인 고급품으로 가볍고 소리(?)가 나지 않는다.
사진 속의 요강은 한지를 꼬아 엮은 지승요강에 옻칠을 먹인 고급품으로 가볍고 소리(?)가 나지 않는다. ⓒ 곽교신
우귀 때, 옆 마을 각시라면 문제가 아니겠으나 가마멀미가 날 정도로 길이 멀 때는 가마 안에 간단한 요깃거리는 물론 요강도 필수였다.

꽃 장식으로 호사를 다한 가마 모습이 오히려 애처로워 보이는 것은, 가마에 흔들리며 초긴장 속에 시댁으로 갔을 어린 신부의 시집살이 두려움이 필자의 눈에도 뵈어서일까.

가끔 영화 등에서 보면 말 타고 가마 타고 이동하는 장면 뒤에 초례청 대례 장면이 보이는데 이는 옳은 순서가 아니다. 요즘의 결혼식은 전통 혼례의 '친영'만 남은 것으로 보면 되겠다.

대추는 득남을 의미해 폐백 음식에서 빠지지 않으며 시아버지가 며느리 치마 폭에 던져줘야 맞다.
대추는 득남을 의미해 폐백 음식에서 빠지지 않으며 시아버지가 며느리 치마 폭에 던져줘야 맞다. ⓒ 곽교신
우귀 날, 친정에서 보낸 음식과 술로 상을 펴고 시어른들께 새 식구로서의 첫 인사를 드리니, 이것이 폐백이요 밤 대추 닭이 빠지지 않는다.

친정에서 함께 보내진 음식이 '이바지'인데, 집안 형편에 따라 정성껏 보내면 되었다. 오늘날은 이바지 음식도 돈 치장을 한다니 본뜻의 곡해가 어지럽다.

우귀 당일 또는 며칠 후 '사당 차례'(시댁의 조상 신위에 새 식구가 들어왔음을 고하는 일)까지 마치면 전통 혼례의 모든 절차가 끝난다.

그러나 이 모든 절차가 모두 엄격히 지켜진 것은 아니며, 양가의 형편과 혼인 당자의 속사정에 따라 "그랬다 치고"도 많았으니, 이는 아무리 인륜지대사라도 가세와 형편에 맞게 치른다는 속뜻이 깊다. 혼수 문제로 법정다툼까지 하는 작금의 결혼은 전통의 혼례 예절 속에선 상인들의 거래이지 결혼이 아니다.

하객을 향해 인사하는 신랑 신부. 품격이 예식장의 어수선함과는 거리가 멀다. 시어머니는 '이제야 장가를 들인 것 같다'고 흐뭇해 했다.
하객을 향해 인사하는 신랑 신부. 품격이 예식장의 어수선함과는 거리가 멀다. 시어머니는 '이제야 장가를 들인 것 같다'고 흐뭇해 했다. ⓒ 곽교신
최근 전통 혼례의 뜻과 의미를 소중히 여겨 관심을 갖는 신세대 예비부부가 많다고 한다. 예식장 결혼 비용 수준으로 품격 있는 전통 혼례를 치를 수 있는 곳이 몇 군데 있는데, 젊은 층의 문의가 예상 외로 많다는 관계자의 말이다.

잊혀져가는 각종 전통혼례용품들을 원형대로 볼 수 있는 "청사초롱 불 밝히고" 전시장에서는 전통 혼례복을 입고 현장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깔끔한 대례복을 무료로 대여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전시장에 가시면 전통혼례에 대한 안내도 받을 수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