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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4.4 대호지독립만세운동 재현
기미4.4 대호지독립만세운동 재현 ⓒ 안서순
86년 전인 1919년 4월 4일 충남 당진군 대호지면에 울려퍼진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4월 4일 그날의 현장에서 되살아났다.

이 만세운동은 1919년 4월 4일 대호지면 출신인 이인정, 송재만, 남주원 선생이 중심이 되어 대호지면 주민 600여명을 모아 면사무소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천의장터까지 8km를 시위행진한 만세독립운동이다.

이날 민종기 '대호지 4.4 독립만세 기념사업회' 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아직도 일제의 만행이 뚜렷이 남아있는데 후안무치한 일본사람들은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긴다"며 "어려웠던 시절 독립운동을 하던 그 정신으로 오늘의 난국을 헤쳐 나가 독도뿐만 아니라 간도 등 실지회복을 해 나가자"고 말했다.

4.4 대호지만세운동기념탑
4.4 대호지만세운동기념탑 ⓒ 당진군청
4.4대호지 만세운동은 1919년 3월1일 서울 파고다 공원에서 있었던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귀향한 남주원, 이두하, 남계창, 남상직, 남상락 선생 등이 우리 고장에서도 독립운동을 할 것을 다짐하고 1차로 면직원인 민재봉, 강태원, 송재만, 김동운, 남주원, 한운석 선생 등이 '대호지 만세운동'을 모의하면서 태동됐다.

이들은 지방유지인 이인정, 이춘응, 이대하, 남상집, 김홍균, 홍순국, 백남덕, 남정혁, 홍월성 선생 등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해 천의장날을 기해 거사를 하기로 하고 '대호지 만세 운동'을 일으킨 것이다.

면직원 등은 4월 2일 주민들에게 '면장 명의로 위장 4월 4일 주민출역'을 알려 동원시키고 4월 4일 오전 9시 대호지면사무소 앞 광장에서 30자 높이의 대나무에 태극기를 게양한 다음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애국가 제창을 한 다음 만세시위에 들어갔다.

이날 만세운동에 참가한 군중들은 비폭력으로 시작했으나 놀란 일경이 총을 쏘아 대는 바람에 흥분해 '천의 왜경 주재소'를 부수고 왜경을 잡아 구타했다.

이 만세운동은 천의장터에 이르러 장날을 맞아 운집한 군중들과 합세 1000여명의 대규모 군중집회로 발전해 나가는 동시에 밤에는 군내 면천, 순성, 당진읍 지역에서 횃불시위로 번져나갔고 5일에는 송악면, 8일 밤에는 천의면 수당리와 여미리(현재 서산시 운산면)에서 횃불 봉화시위 등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됐다.

그러나 진압보복에 나선 일군 등에 의해 송봉운 선생 등 3명이 현장에서 학살됐고 옥중에서 혹독한 고문으로 이달준, 박경옥, 김일도 선생 등 3명이 옥사했다.

이 만세운동으로 구속된 인사는 200여명이 넘었고 이 중 징역 5년에서 8개월까지 언도를 받은 열사가 36명, 태형 90도 이상이 90명이 되는 등 수난을 당했다.

이날 만세운동 재현에는 '대호지 4.4 만세운동 기념사업회(회장 민종기)와 면민 등 500여명이 참석해 그날의 뜻을 기렸다. 이들은 만세운동에서 희생당한 선열들을 모신 '창의사'에서 면사무소 앞 3거리까지 300여m거리까지 태극기를 들고 그날의 시위 행진을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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