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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고향마을 산소 사초할 때 산철쭉 뿌리를 주워심은 화분에 꽃을 피웠다
작년 고향마을 산소 사초할 때 산철쭉 뿌리를 주워심은 화분에 꽃을 피웠다 ⓒ 양동정
고향마을 앞에 앵무산(원래는 양미산으로 임진란 때 충무공이 벼낱가리처럼 이엉을 둘러쳐 군량미로 보이게 했다는 설화가 있는 산)이 있다. 이 산에는 큰적굴, 작은적굴이라는 골짜기 두 개가 있다.

골짜기 이름의 유래를 옛 문헌과 어른들의 증언으로 알아보니 원래는 대사동, 소사동으로 큰절골, 작은절골이라고 불렸는데 발음상의 편리를 좇아 큰적굴 작은적굴로 변형되어 불리게 된 것이란다.

고조할머니 산소에서 내려다 본 고향마을 모습. 마을뒤로 갈대밭과 에스자형 수로와 낙조사진으로 유명한 순천만이 한눈에..
고조할머니 산소에서 내려다 본 고향마을 모습. 마을뒤로 갈대밭과 에스자형 수로와 낙조사진으로 유명한 순천만이 한눈에.. ⓒ 양동정
큰 절이 있었다는 큰적굴에 가면 고조 할머니 두 분의 산소가 나란히 쌍봉으로 모셔져 있는데 어른들 말씀에 의하면 생전의 두 분 고조할머니가 큰부인 작은부인이면서도 워낙 사이가 좋아서 후손들이 생후에도 같이 다정히 지내시라고 한자리에 산소를 같이 모셨다고 한다.

이 산소에서 우리 마을이 바로 내려다보이고 마을 뒤로는 순천만의 S자 수로가 보이는 낙조사진으로 유명한 순천만 갈대밭이 펼쳐진다. 명당 중의 명당이 아닌가 싶다.

조상님 산소에 상석을 놓는 80이넘으신 후손들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조상님 산소에 상석을 놓는 80이넘으신 후손들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 양동정
이런 산소가 오래되고 무너져 내려 사초를 해야 한다고 하시면서도 여러 사정 때문에 손을 보지 못한 것을 늘 짐스러워 하시던 80이 훨씬 넘으신 아버님께서 작년에 결단을 내려 비석도 장만하고 사주쟁이한테 날도 받고 하여 말끔히 정비하셨다.

산소 정비를 마치고 종손이신 아버님(84세)께서 제를 모시는 모습이 이렇게 엄숙합니다
산소 정비를 마치고 종손이신 아버님(84세)께서 제를 모시는 모습이 이렇게 엄숙합니다 ⓒ 양동정
일제 당시 징용까지 다녀오시고 어려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셔 7남매의 큰형으로 할아버지 역할까지 해 오신 아버님은 묘역을 완전히 정비하시고 난 후 "이제는 죽어도 조상님 앞에 갈 수가 있겠다" 하시면서 정성스레 마련하신 제물을 차려놓고 제를 올리셨다. 그 엄숙한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고향 마을 뒷산에서 촬영한 순천만 S자 수로의 낙조
고향 마을 뒷산에서 촬영한 순천만 S자 수로의 낙조 ⓒ 양동정
이런 우리 고향에는 매년 이맘 때면 진달래와 산철쭉이 지천으로 피었다. 어려서 진달래는 참꽃, 산철쭉은 개꽃이라고 하여 먹을 것이 없던 시절 꽃 아래 부분을 만져보아 찐득거리면 개꽃이고 찐득거리지 않으면 참꽃이라 하여 참꽃의 꽃잎을 한없이 따먹고 허기를 채운 적이 많다. 어떤 친구는 이를 구분하지 못해 개꽃을 따먹고 복통을 일으켜 토하기도 했다.

이런 개꽃이 묘 주변에 자라 벌초 때 베어내면 다음 해에 다시 자라고 하는 일이 반복하다 보니 줄기는 없고 뿌리만 고목이 된 상태였다. 그러다 잔디를 다시 심으며 파낸 것을 주워 모아 서울로 가져와 화분에 예쁘게 심었더니 금년에 우리 아파트 베란다에서 꽃망울을 터뜨린 것이 아닌가?

할머니 산소 주변에 서식하고 있는  희귀 식물이 될뻔한 할미꽃 군락
할머니 산소 주변에 서식하고 있는 희귀 식물이 될뻔한 할미꽃 군락 ⓒ 양동정
큰적굴 개꽃이 서울 도심 한복판 5대손 손자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꽃망울을 터뜨렸으니 나는 이 꽃에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한다.

뵙지도 못했던 고조 할머니 두 분이 해년마다 보셨던 꽃이라는 것이고 어려서 내가 소 몰고 풀 뜯기던 내 고향 큰적굴을 옮겨놓은 의미까지 있다. 아침마다 고향을 보는 마음! 이보다 좋은 일이 있을까? 잘 가꾸어서 서울에 살고 있는 형님과 동생 모든 가족에게 두고 두고 자랑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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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역할에 공감하는 바 있어 오랜 공직 생활 동안의 경험으로 고착화 된 생각에서 탈피한 시민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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