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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미지근한 물을 먼저 받고 뜨거운 물로 적정온도를 맞춥니다.
일단 미지근한 물을 먼저 받고 뜨거운 물로 적정온도를 맞춥니다. ⓒ 이선미
오랜만에 여동생과 고향집에 내려가니 욕실에 스티로폼 상자가 엎어져 있었다.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궁금하여 엄마에게 물어보니 엄마의 '전용 족탕기'란다. 손발이 차서 밤에 잠들기 힘들었던 엄마가 따로 족탕기를 사자니 웬만한 족탕기는 10만원이 훨씬 넘어가고 해서 마련한 것이 바로 이 상자이다.

최근 우연히 스티로폼에 담긴 냉동 손만두를 샀다가 만두는 냉장고에 넣고 박스만 남게 된 것이 이렇게 화려하게 족탕기로 변신을 하게 된 것이다.

가족들이 모처럼 거실에 모여 앉아 엄마가 손수 만들어준 닭갈비에 볶음밥까지 해먹고 여유롭게 이야기꽃이 무르익었다.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나른해진 사이 어느덧 잘 시간이 다가왔는데 엄마는 스르르 일어나시더니 스티로폼 상자를 욕실에서 가지고 나오셨다.

그리고 일단 상자에 미지근한 물은 받고는 온도조절을 위해 뜨거운 물을 따로 끓여서 적정온도를 손으로 저어가며 맞추셨다. 그리고 비장의 물건을 꺼내오셨다. 그 비장의 물건은 다름 아닌 아빠의 허브오일.

몇 주일 전 집 근처 허브농원에 갔다가 아빠의 고혈압에 좋다는 허브 오일을 하나 사왔는데 아빠는 얼마 쓰지도 못하고 족탕을 하는 게 쓰게 되었다. 마사지 겸해 아빠의 목에 바르는 오일이었는데 워낙 향이 강하다보니 아빠는 부담스러워 하셔서 이렇게 재활용을 하게 되었다.

스티로폼 상자에 오일 한두 방울을 떨어뜨리자 향이 퍼지면서 순간 아주 럭셔리(?)한 족탕기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비싸게 족탕기를 따로 산들 무엇 하랴. 이렇게 좀 수고스럽더라도 손수 물 온도를 조절하고 발을 담그고 도란도란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그게 바로 웰빙 족탕생활 아닌가.

족탕 장면입니다.
족탕 장면입니다. ⓒ 이선미
엄마는 "너도 손발이 차니 가끔씩 춘천 집에 가서도 족탕을 해봐라"하고 권하신다. 하지만 아침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자취생활하며 직장 다니는 내게 족탕이 가당키나할까 생각을 한다.

사실, 그 마지막에 허브 오일 한두 방울 떨어뜨리는 그 족탕의 키포인트를 보고는 마음이 살짝 동하기도 했다. 왠지 허브 향을 맡으면서 족탕으로 하루를 마무리 하면 '그래도 내가 참 부지런히 열심히 사는구나. 건강도 챙기고' 하는 생각에 왠지 모를 뿌듯함이 생길 것 같다.

고향집에 있었던 스티로폼 상자에 준하는 알뜰한 재활용품을 아직 찾지는 못했는데 여러모로 알아봐야겠다.

알뜰살뜰 아이디어만 있으면 사실 웰빙은 식은 죽 먹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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