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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렉트릭 유니버스>의 표지(생각의 나무 출간)
ⓒ 조성웅
사랑하는 연인과 처음 손을 잡았을 때 그 느낌을 기억하십니까? 해묵은 털북숭이 겨울옷을 한참 입다가 벗을 때 겪었던 그 찌릿함은요? 물 묻은 손으로 코드를 꽂다가 흠칫했던 경험은 있으실 테지요? 이 모든 경우에 우리는 '전기가 온다'고 말하곤 합니다. 흔히 '전기'라고 정의하고 '짜릿짜릿'이라는 형용어로 나타내는 그 실체에 대한 모든 것을 이 책은 감추지 않고 낱낱이 보여줍니다.

전기가 언제부터 있었을까? 이것부터 시작해보기로 하지요. 우주가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빅뱅이 일어난 바로 그 순간 텅 비어 있던 공간에서 회오리 같은 강력한 전자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이 전자들은 대개 단순한 수소 원자의 일부로 우주를 떠돌다가 거대한 별 속으로 떨어졌고 그 별이 폭발할 때의 더 강력한 힘에 의해 원자덩어리가 됐습니다.

그러다 태양계의 지구의 한 구석에 처박히게 되었지요. 언젠가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해주기를 기다리면서 말이죠.

인간이 처음에 발견했던 전기는 어떤 형태였을까요? 아마도 번개였을 겁니다. 미개한 인간들에겐 무척이나 두려운 자연 현상이었겠지요. 벼락에 맞아서 죽은 사람도 제법 될 걸요?

▲ 한때 번개는 신의 분노를 표현하는 것으로 믿어졌다. 번개를 직접 맞기라도 하면 재앙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적으로 이해된 번개는 구름과 구름, 구름과 대지 사이에서 일어나는 전기의 방전현상으로 이해될 뿐이다.
인간의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자연은 더 이상 인간에게 두려운 존재가 아니게 되었지요. 인간이 처음으로 전기를 이용한 건 바로 전보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모스 부호’로 알고 있는 모스가 그 원리를 발견했어요. 물론 그는 떼돈을 벌었지요.

이어서 벨은 전보를 좀 더 발전시켜서 전화를 만들었지요. 그가 전화를 발명하게 된 과정은 몹시 흥미롭습니다. 그야말로 말할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여성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애쓴 결과물이었거든요. 그야말로 사랑과 비즈니스의 완벽한 결합이었던 것이죠. 이 달콤한 러브스토리는 책에 자세하게 나오니 여기선 넘어가겠습니다.

그 다음부터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롤러코스터처럼 정신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우리는 지금 발명왕으로만 알고 있는 에디슨의 구린 뒷모습은 물론이고 세계굴지의 대기업인 J. P. 모건이 어떻게 덩치를 불렸는지도 슬쩍 엿볼 수 있어요. 전구가 개발되고 나서 연계된 전기 산업이 어떻게 발전되었는가 하는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왜 전기요금을 내게 되었는지도 분명하게 알 수 있어요.

전기가 가진 힘은 단지 이것뿐이 아니었어요. 전기는 힘의 장, 즉 역장을 가지고 있지요. 자기장도 가지고 있고요. 패러데이로부터 시작해서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로 이어지는 과학자들의 노력과 연구는 인류와 별개인 듯 보이는 순수과학연구가 우리와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인지 절절히 보여줍니다.

당시 사람들은 전기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힘의 장에 대해서는 인정하기를 꺼렸어요. 한 사업가의 결단(물론 그는 억수로 돈을 벌려고 한 일이었지만)으로 지금 생각하면 좀 터무니없지만 거창한 사업이 시작됩니다. 미국과 영국의 사이에 있는 대서양을 케이블로 이어서 소식을 주고받겠다는 구상이었지요. 이 과정에서 결국 힘의 장은 만천하에 공개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받게 됩니다.

이 힘의 장을 이용한 하인리히 헤르츠가 전파를 발견하는 과정을 다룬 6장은 그야말로 새로운 글쓰기의 한 전범을 보여줍니다. 그의 일기와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연설문, 논문 등에서 발췌해서 이야기를 엮어갑니다. 그 스릴과 긴박감은 읽지 않고선 모를 걸요. 이 책의 편집자로서 '강추'하는 장입니다.

전기가 이렇게 좋은 데만 쓰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유감스럽게도 곧 전쟁이 닥칩니다. 전자파를 이용해서 상대편 적기의 존재를 알아낼 수 있는 레이더파는 엄청난 살상을 가져옵니다. 세계 역사에서 크나큰 악몽으로 기억되는 드레스덴 폭격이 바로 그것입니다. 영국에서 먼저 개발해서 재미를 보다가 후발 주자인 독일이 더 뛰어난 레이더를 개발하고 이를 역이용하여 작전을 펼치는 장면은 스릴과 긴장이 넘치는 한 편의 할리우드 영화를 방불케 합니다.

▲ 조지프 헨리의 발명품인 계전기는 전기 기술에서 중요한 발전이었다. 이 장비는 훗날 전기 통신 기술과 초기 컴퓨터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기를 말하면서 컴퓨터 얘기를 빼놓을 수 없지요? 컴퓨터 창시자인 앨런 튜링은 요즘도 금기로 여겨지고 있는 동성애자였답니다. 대단한 공을 세우고서도 당시의 엄한 관습으로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불운한 천재였던 그의 일생이 한 편의 비극처럼 슬프게 그러나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이제 정말 나올 만한 내용은 다 나온 거 아니냐고요? 천만에요!

이제 다시 보더니스는 우리의 몸 속으로 우리를 이끌고 들어갑니다. 우리 몸의 구성과 작동의 메커니즘이 죄다 전기의 작용으로 인한 것임을 증명하는 그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처음엔 귀가 솔깃하다가 중간에는 홀딱 빠져들고 나중에는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자 이제 자막을 올릴 때가 되었나요? 아직 당신을 위한 특별한 보너스가 추가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저자가 준비한 남다른 보너스! '뒷이야기'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한 독자들을 위한 글입니다. '앙페르 씨 볼트 씨 그리고 와트 씨'에선 전기의 단위 암페어와 볼트, 와트의 역사와 개념을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지요. 이어지는 '더 깊이읽기'는 본문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더 흥미롭고 깊이 있는 내용이 다뤄집니다.

부록이라 생각하고 그냥 넘어가시면 후회하십니다! 마지막으로 '더 읽을거리'에서는 저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참조했던 수많은 책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냥 참고문헌으로 밋밋하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 책에선 어떤 점이 좋았고 어떤 점이 도움이 되더라는 식으로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여줍니다. 그래서 더 공부하고 싶어 하는 분에게 훌륭한 가이드가 됩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한글로 옮겨진 책을 따로 표시해서 독자들이 참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책의 편집과 관련한 뒷이야기를 해볼까요? 우선 이 책을 옮긴 김명남님 얘기부터 시작하지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편집팀장을 맡고 있고 '김명남의 과학책꽂이'라는 과학책 소개 코너를 맡고 있기도 합니다. 동안에 안경을 쓴 앳된 얼굴의 '열혈과학소녀'이기도 합니다. 카이스트에서 공부하고 꾸준히 과학책을 읽어온 데다 유머까지 있는 분이라서 보더니스의 유머 넘치는 과학책을 옮기는 데는 ‘딱’이었어요. 이 책이 옮긴이의 첫 책이기도 해서 편집자로서 무척 기뻤습니다.

김명남님이 이 책을 처음 옮길 때는 미국에서도 아직 완성된 책이 나오기 전이라 가편집본을 받아서 번역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보더니스 '아저씨'와 계속 이메일로 필담을 주고받으며 모르는 부분을 확인해서 묻고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어판 서문도 얻을 수 있었어요. 사실 데이비드 보더니스는 2001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기도 했던 저명한 과학저술가인데 그의 전작인 < E=mc² >은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얻기도 했습니다.

▲ 애플 컴퓨터의 벌레 먹은 사과 로고를 한번쯤은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로고는 컴퓨터의 창시자인 앨런 튜링이 독이 든 사과를 머고 죽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애플 창립자가 고른 것이라고 한다.
ⓒ 조성웅
잠깐 이 작가 데이비드 보더니스에 대해 말씀하고 지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카고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강의를 했습니다. 이 강의 제목이 좀 독특해요. '똑똑해지는 법, 적어도 덜 무식해지는 법'이란 제목의 강의였는데 옥스퍼드의 상임교수들은 물론이고 외부 청강생들까지 끌어 모으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답니다.

이렇게 강단에서뿐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 셸, BMW 등 쟁쟁한 대기업과 갖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중국정부의 에너지 관련 정책을 분석하고 예측해주기도 하는 등 실전에도 능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보더니스의 현실과 이론을 접목하는 탁월한 글쓰기는 아마도 이런 데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자, 이제 슬슬 접을 때가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들은 맛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하나만 지적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짜릿한 최고의 지적 자극과 재미를 만끽하기 위한 과학책으로 이 책 <일렉트릭 유니버스>를 추천합니다.

덧붙이는 글 | 조성웅 기자는 <일렉트릭 유니버스>를 낸 '생각의 나무' 출판사 편집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일렉트릭 유니버스 - 전기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는가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글램북스(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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