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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어느 순간 묵직한 것이 온몸을 내리 누르는 듯한 중압감에 눈을 떴다. 희미한 물체가 자신을 내리누를 듯 했다. 그는 버둥거리면서 억지로 눈을 뜨고 올려다보았다. 천장의 낯선 사방 연속무늬만 보일 뿐,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잠깐 동안 선잠에 빠졌던 것이다.

일어난 앉아 손바닥으로 얼굴을 서너 번 문지르며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보았다. 검붉은 얼굴에 퉁퉁 붓고 충혈 된 두 눈, 그리고 입술은 마르고 갈라져 있었다. 낯선 사람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다.

김 경장은 머리가 어지러워 군데군데 담배 자국이 선명한 장판지 위에 몸을 눕혔다. 그때 복도의 나무 바닥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득 긴장이 되었다. 얼른 일어나 문 뒤에 선 채 귀를 바짝 갖다 대었다. 한동안 바깥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쇠사슬을 걸어 놓은 채 슬쩍 문을 열자 검은 모자를 눌러쓴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저예요."

채유정이었다. 쇠사슬을 풀어 문을 열어놓자 그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모습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짧은 셔츠를 입고 그 위에 걸친 헐렁한 셔츠는 소매 부분이 묶여 있었다. 아래에는 낡은 청바지를 입고 가죽 운동화를 신고 있어 예전의 학구파 스타일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실내를 둘러보더니 고개를 한쪽으로 내저었다.

"생각보다 지저분하군요. 이런 곳에서 지낼 수 있겠어요?"

"할 수 없죠. 이곳이 안전하다면……."

김 경장은 그렇게 말하며 열어놓은 창문을 닫아놓았다. 그리고는 낡은 침대에 걸터앉으며 다시 물었다. "댁이 어떻게 이런 곳을 다 알고 있는 거죠?"

"이곳은 탈북자들이나 시골에서 올라온 조선족들이 많이 묵어가는 곳이에요. 집안에서 올라온 먼 친척 분이 이곳에 머문 적이 있어 잘 아는 편이죠."

"여기에 탈북자가 많다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중국 공안의 단속이 심할 텐데……."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죠. 그들이 찾는 당신은 하나지만 여기 탈북자들은 수백, 수천이 넘잖아요. 이 속에 묻혀 있는 게 오히려 더 안전할 수 있다는 겁니다."

김 경장이 낮게 고개를 끄덕였다. 채유정의 말이 이어졌다.
"더구나 여기 주인이 눈치가 참 빨라요. 공안이다 싶으면 얼른 신호를 보내주거든요. 그땐 문 바로 앞에 있는 비상구로 도망칠 수도 있죠."

김 경장은 채유정의 치밀함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부만 하는 그녀에게 이런 면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 그녀는 작심하고 유물을 찾아 나선 듯 했다. 자신을 파트너로 인정하고 보호하려는 것이다.

채유정은 들고 온 가방을 열어 생수와 소시지, 과자 따위의 음식을 꺼내놓았다.

"이건 모두 한국 물건들이에요. 여긴 한국 것이라면 최고로 꼽죠."

마침 목이 마르던 참이라 김 경장은 생수 뚜껑을 열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중국은 물이 탁해 깨끗한 물을 마시기가 매우 힘들었다. 긴장 한 채 요녕성 박물관을 다녀오느라 땀을 많이 흘렸던 터였다. 생수 한 병을 온전히 비워놓고 나자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듯 했다. 그러자 문득 궁금증이 일어 채유정에게 물었다.

"경찰서에 간 것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공안이 체포한 자의 신원을 어렵게 알아냈어요."

"어떤 자이던가요?"

"교도소를 두 번 다녀온 전과자였어요. 큰 죄는 아니고 단순 절도와 폭행으로 체포된 적이 있더군요. 출소를 하고는 특별한 직업 없이 빈둥대고 있었나 봐요."

"공안들은 그를 살인강도로 몰았어요."

"아무리 우발적이라 하더라도 살인까지 할 위인은 못되던가 봐요. 동네 주민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던걸요."

"그 집까지 찾아갔다는 겁니까?"

"찾아갔지만 그 집은 이미 이사를 가고 없더군요.

"자기 아들이 살인죄로 잡혀가는 다음날 곧바로 이사를 갔다? 뭔가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요."

채유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아주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고 해요. 검은 승용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그 집을 몇 번이나 찾아왔다는 말도 하더군요."

"그렇다면 그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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