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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문화고 한국음악과 학생들의 연주모습
한국전통문화고 한국음악과 학생들의 연주모습 ⓒ 한국전통문화고 제공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옛 것을 익혀 새것을 앎)을 교훈으로 전통이 살아 숨쉬는 고장 전북에서 전통문화 지킴이들을 키워내는 산실(産室)이 있으니 한국전통문화고등학교가 그 곳이다.

전주에서 금산사로 가는 길목인 중인리 모악산 자락, 구이중학교 중인분교 자리에 새로운 얼굴로 자리 잡은 전통문화고는 지난 2002년 3월에 처음 문을 열었다.

지난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라북도를 방문했을 때 천년고도인 전주에 전통문화학교 설립을 약속하면서 추진된 전통문화고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대학이 아닌 고교과정에서 전통문화를 특성화하게 됐다.

한국회화과 학생들의 작업장
한국회화과 학생들의 작업장 ⓒ 한국전통문화고 제공
4천여평의 넓은 부지에 100억원에 가까운 시설비를 들여 지은 이 학교는 생활과학과·공예디자인·한국회화과·한국음악과 등 4개 과에서 학생을 모집하고 있다.

생활과학과는 한식과 궁중요리 등을 배워 ‘대장금’과 같은 전통음식의 장인을 키워내는 곳이며, 공예디자인과는 나무 다루기, 종이제작법 등을 익혀 목수 또는 전통한지의 장인을 배출하는 곳이다.

한국회화과는 문인화와 사군자 등 우리의 전통회화를 배우고, 한국음악과는 판소리와 거문고, 가야금 등을 갈고 닦아 명창, 고수, 연주가를 키워내고 있다.

인간문화재로부터 자수를 배우고 있는 모습
인간문화재로부터 자수를 배우고 있는 모습 ⓒ 한국전통문화고 제공
한국전통문화고 학생들은 모두 학교 건물에 이어진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소리와 악기를 익히는 학생들은 개인별로 연습실이 갖춰져 언제든지 기량을 연습할 수 있다.

학교 건물도 1만4919㎡(약 4513평)의 부지 위에 본관동을 비롯해 강당과 기숙사동이 서로 연결돼 이용이 편리한 구조로 만들어져 있으며, 교사별 연구실까지도 따로 갖춰져 있다.

또한 지난 2002년에 문을 열어 올해 2월에 71명의 졸업생을 첫 배출한 이 학교의 졸업식은 처음이지만 특별한 졸업식으로 소문이 났다.

졸업식의 명칭도 ‘한국전통문화 혼불 수여식’으로 고쳐 부르고, 졸업식과 재학생, 학부모, 교사가 모두 함께하는 축제의 자리로 만들었다.

졸업생들을 보내는 송가도 일반적으로 부르는 ‘올드랭 사인(Auld Lang Syne)’ 대신 ‘홀로아리랑’ 가락에 가사를 붙여 만든 노래가 불려졌다.

아쉬움과 추억이 함께 한 졸업식장에 차려진 음식들은 이 학교의 생활과학과 학생들이 직접 만들었으며, 졸업식장의 연주는 한국음악과 학생들이 맡았다.

한국전통문화고의 우리 문화에 대한 자존심은 이미 체육대회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다른 일반 학교들처럼 체육대회 종목에 축구나 배구, 농구, 탁구, 줄넘기 등이 들어있지만, 민속 줄다리기, 씨름, 제기차기, 투호놀이, 닭싸움, 널뛰기, 팔씨름 등 전통적인 종목들로 ‘민속체육대회’를 치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전통문화고의 이러한 우리 문화사랑은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세계를 향하는 큰 뜻을 품고 있다.

최근 일본의 시마네현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이 학교는 일본 아이치현의 고교생 15명을 초청해 남원 만인의 총을 보여주고, 한·일간의 역사관계를 바르게 인식하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한국전통문화고 학생들은 오는 25일 도착할 일본 학생들과 함께 ‘일제 강점기의 위안부 강제동원’과 ‘독도’에 대한 문제도 한·일 고교생간 토론 주제로 내세울 예정이다.

이와 같이 전통문화를 수호하는 지킴이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이 학교의 학생들은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올해도 졸업생 71명 가운데 62명이 관련 전공을 찾아 서울지역과 도내 4년제 대학 또는 전문대에 진학했으며, 나머지 9명도 취업(4명)이나 재수(5명) 등 각자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전통문화의 도시를 자부하는 전주시에 전통문화 지킴이를 양성하는 한국전통문화고가 있다는 것은 시민들의 또 다른 긍지인 셈이다.

한국전통문화고 정문
한국전통문화고 정문 ⓒ 한국전통문화고 제공

꿈과 희망을 갖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습니다”
정일웅 한국전통문화고 교장

“꿈과 희망을 갖고 목표를 세워 돌진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 비교할 때 하루의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한국전통문화고 정일웅(60) 교장은 학생들에게 늘 ‘꿈과 희망’을 강조한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하루의 시간들이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의미 없이 허비되기 쉽고, 꿈과 희망이 없으면 노력하는 즐거움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 교장은 “어떤 훌륭한 지식이나 기술도 올바른 인간성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입니다”라면서 “예로부터 도공(陶工)들은 후계자를 양성할 때 무턱대고 가르치지 않고 먼저 숱한 인내와 사람의 도리를 배우게 한 다음 기술을 전수했습니다”라고 말한다.

지난 66년 교직에 들어 선 이후 40년 동안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 해온 정 교장은 “한 가지만 잘 해도 사회에서 제 노릇을 하고 살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합니다”라면서 “오로지 대학입시에 맞춰진 현행 교육시스템도 문제지만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낸 원인은 사회적 인식 탓이 가장 큽니다”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꿈과 희망’을 배운 한국전통문화고의 학생들은 이러한 사회적 어려움도 훌륭하게 극복하고 있다는 게 정 교장의 자랑이다.

“전통문화고 학생들은 하나하나 모두 보배입니다”라는 정 교장은 “단순히 입학 성적만으로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대학 진학을 1학년 때부터 ‘요리사’, ‘명창’ 등 확고한 꿈을 가진 학생들이 훌륭한 성적으로 해냈거든요”라고 설명한다.

이어 정 교장은 “전주는 전통문화의 도시지만 실상 전통문화를 가르치는 학교에 대한 관심을 그다지 크지 않은 것 같아 아쉽습니다”라면서 “현재 한국회화과 학생들의 부족한 실습실을 마련해주고, 학생들에게 베풀어줄 수 있는 다양한 장학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사회적 지원과 관심이 필요합니다”라고 덧붙인다.

또한 정 교장은 “훌륭한 학교의 인프라를 지역 사회에 돌려주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라면서 “기회가 되는대로 지역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행사를 기획해볼 생각입니다”라고 말한다. / 소장환

덧붙이는 글 | 전민일보 2005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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