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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즈타니 선생의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의 겉그림
ⓒ 에이지21
'일진회' 광풍이 사회 전반을 휩쓸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일탈행위부터 충격적인 범죄행위까지 연일 언론지상을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많은 어른들이 개탄의 목소리를 높이며, 청소년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제 '일진회'로 대표되는 청소년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사회적 과제가 되었습니다.

자! 그럼, 이 심각한 청소년 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저는 미즈타니 선생의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합니다.

미즈타니는 일본의 한 야간고교 교사입니다. 그는 밤이 되면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일본의 환락가와 으슥한 뒷골목을 누비고 다니며 약물, 폭력, 폭주, 섹스에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을 건넵니다.

"얘들아! 밤거리는 위험하니 집으로 돌아가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요즘 얘들이 어떤 얘들인데 그런 말을 듣겠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미즈타니의 말을 듣습니다. 일본의 아이들이 우리의 아이들보다 착하고 예의가 바르기 때문일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기에는 노력, 헌신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아이들에 대한 미즈타니의 사랑이 있습니다.

책을 보면 '기다렸다', '해가 뜰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라는 내용이 자주 나옵니다. 미즈타니는 밤거리의 아이들에게 조용히 다가갑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신과 대화에 응해 줄 때까지 하루고 이틀이고 일주일이고 기다립니다. 그런 기다림을 통해 소통이 이루어지게 되면 밤이 새도록 아이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는 이런 생활을 12년째 해 오고 있습니다.

각종 범죄와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는 밤거리는 미즈타니에게도 역시 위험한 곳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마약상에게 칼을 맞은 적도 있으며, 폭력조직에서 탈퇴하려는 아이를 대신해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두고 '죽음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교사'라고 합니다.

아이들에 대한 미즈타니의 사랑은 비단 이런 위험을 무릎 쓰는 것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에 의해 새 삶을 찾은 아이가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어 자신을 초대하더라도 자신은 결혼식에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가 자신을 보고 슬픈 과거를 떠올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그는 일반인의 상식을 초월하여 아이들 편에 서 있습니다.

미즈타니는 아이들이 온갖 나쁜 짓을 하더라도 100%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기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고, 또 자세히 들여다보면 착한 구석이 1%는 있다고 믿습니다. 그는 이 1%에 자신의 모든 것을 겁니다. 또한 아이들이 나빠지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른들의 무관심과 유무형의 폭력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어른들이 자신의 눈높이를 아이의 눈높이로 온전히 내려놓고, 아이들의 존재를 확인해 주고, 관심을 가져 주면 아이들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은 미즈타니 자신의 실천을 통해 우리에게 생생히 증명해 보입니다.(실제 수많은 아이들이 미즈타니 선생으로 인해 새 삶을 찾았습니다.)

이 사회와 우리를 한 번 돌아 봤으면 합니다.

이 사회에서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주변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은 공부 이외는 거의 없습니다. 거기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은 잘못된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하고, 인정받으려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비행청소년'이라 불렀고 최근엔 '일진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소위 '사고'를 친 아이들은 학교에서 상담과 지도보다는 처벌을 받습니다. 학교는 징계를 받은 학생을 수업에 들여보내지 않은 채, 학생지도실이나 교무실 한 쪽 귀퉁이에서 하루 종일 반성문을 쓰게 하거나 학교 청소를 시킵니다.

그 보다 더 큰 '사고'를 친 학생들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보내 버리거나 '자퇴'하길 강요합니다. 또 '형사처벌'을 받을 정도로 큰 '사고'를 친 아이들의 경우는 '퇴학'을 시켜 버립니다. 그렇게 학교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은 사회에서도 버림을 받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 아이들을 혐오하고 불신하면서 더불어 살아가지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 살리기 위해서 아홉을 죽일 수는 없다.', '당한 아이들의 고통을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에게는 강력한 처벌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강력한 처벌만을 해 왔습니다. 그렇게 해 왔지만 하나를 죽여서 아홉을 살리지도 못했고, 고통 받는 아이들이 줄어들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스쿨폴리스(학교폭력으로부터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전직 경찰을 학내에 배치하는 제도)', 'CCTV 설치'를 논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동안 쭉 해 왔던 단속, 적발, 처벌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이것도 효과가 없으면 아이들에게 '마이크로 칩'이라도 박아 감시를 할 셈인지 묻고 싶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생활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냅니다. 학교에서 공부 외에 재미를 붙이고 할 수 있는 '거리'를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회피하지 않고 진정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의 눈높이로 내려가 그들을 기다려주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생각하는 것은 아홉을 죽이고 하나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와 앞으로 고통 받게 될 아홉을 함께 살리는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미즈타니 선생이 책의 말미에서 한 말을 되뇌어 봅니다.

"생선이야 썩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절대로 썩지 않아. 그들이 그렇게 된 건 누군가가 그들을 썩게 만들었기 때문이야. 그런 아이들을 구하는 게 교육이야!"

얘들아, 너희가 나쁜 게 아니야 - 밤거리 아이들과 함께한 ‘밤의 선생님’의 감동 스토리!

미즈타니 오사무 지음, 김현희 옮김, 에이지21(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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