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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입니다.
겉그림입니다. ⓒ 새만화책
<1> 봄을 생각하면서

나무마다 새순을 틔우려고 한창 준비하고 있는 봄입니다. 아직 활짝 피어난 봄꽃은 눈에 띄지 않지만 산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찬물에 빨래를 해도 손이 시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원합니다. 빨래하는 손이 시원하니 빨래는 더욱 즐겁고, 빨래하기가 더욱 즐거우니 마음도 시원해집니다.

날씨도 나날이 풀립니다. 저는 며칠 앞서부터 반소매 옷을 입는데, 더위를 많이 타고 추위를 적게 타서 이렇게 입기도 하지만, 요즘 날씨 참 포근하지요? 더위도 곧 다가올 겁니다. 자, 추운 겨울(하지만 이번 겨울도 그다지 안 추운 겨울이었습니다)이 가고 따뜻한 새봄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 봄을 어디에서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요?

서울을 중심으로 서울 아닌 곳도 도시로 치닫고 있으며 시골에서도 문을 꼭꼭 닫아 건 채 텔레비전을 보고, 신문을 보면서 봄소식을 듣고 있지는 않나요? 봄소식은 맨 먼저 산이 알려주고, 다음은 들이 알려주지 싶어요. 이른 아침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참 맑고 고우며, 새벽 다섯 시면 어느덧 동이 터오고 있는 터라, 느낌도 산뜻합니다.

그러고 봉께 요놈들, 콘크리트 틈새기, 뻘쭘한 표정…나랑 닮았구나<82쪽>

제아무리 시멘트와 철근과 아스팔트와 대리석 따위로 처바른 도시라 해도 틈새기마다 풀이 자랍니다. 비록 자동차 매연 때문에 100년도 못 살고 죽고 만다는 가로수이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푸른 새잎을 돋울 거예요. 해마다 겨울이면 온 가지가 뭉텅뭉텅 잘리는 방울나무라 해도 끝없는 생명력으로 새 가지와 새잎을 틔울 거예요.

(주희) 하늘의 별이 다- 땅에 내려와 부렀어.
(이모) 어이구야, 별타령은 밥이나 먹고 해라.
얼마나 헤맸는지 얼굴이 다 핼쓱하네.
이모가 된장국 맛있게 끓여놨어.
(주희) 그래서 여그 밤하늘엔 별이 없는 거라
<57~58쪽>

시골살이에 조금씩 익숙해지고는 있으나 도시살이에 길든 몸이라 시골 밤이 아직 좀 무섭기는 합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불빛 하나 없으니 무서움을 느낄 만하지 않느냐고 할 테지만, 도시고 시골이고 사람 빼고 사람 해칠 짐승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놈의 도시 물이란.

아무튼, 불빛 하나 없는 산속에서, 깊은 밤 자다가 쉬가 마려워 마당앞 텃밭으로 나와 일을 볼 때면 하늘을 올려다보는데요, 참 곱고 환합니다. 초승달도 밝고 보름달도 밝습니다. 달빛과 별빛만 있으니 달과 별이 참으로 달답고 별답습니다.

그런데 서울에 와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거나 일을 한 다음 하늘을 올려다보면 아무것도 안 보여요. 보름달이 떠도 가로등 불빛에 가려서 그냥 하얀 단추 하나로만 보일 뿐입니다. <그림자 소묘>에 나오는 어린 학생 주희가 하는 말처럼, '불빛이 너무도 많아 밤에도 환한 서울이니, 하늘에는 별이 없고 땅에만 불빛이 있는 것'일 테지요?

<2> 서울로 올라온 시골 아이

'내 마음의 지도'와 '그림자 소묘'라는 짧은 만화 두 편을 묶은 <그림자 소묘>라는 만화책을 보았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지만, 시골살이는 시시하다고 느끼는 주희가 '내 마음의 지도' 주인공입니다. 늘 보는 산과 강과 들과 사람에 시시함을 느끼던 아이는 이모가 서울로 데리고 올라와서 학교에도 넣고 화실에도 다니게 해 주어 새로운 곳을 느낍니다.

시골에서는 시시하다고 느끼던 아이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서울로 올라와서는 자연을 지닌 것이 거의 없음에 놀라는 한편, 그 틈바구니에서 자라나고 살아가는 꽃이나 나무를 보며 깜짝깜짝 놀라며 반가워합니다. 서울로 올라온 첫날, 이모네 집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이모 집에 감나무가 다 있다요~" 하고 웃음을 띠며 좋아하는데 이모는 "으응, 옆집 꺼. 나무가 너무 커서 집이 좀 답답해 보이지?" 하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꾸합니다.

주희는 조그마한 화실 주인이 화분에 심어 놓은 해바라기를 보며 놀라워하는데, 이모는 해바라기는 본 체 만 체, "얼마나 집 관리를 안 했으면 이런 문 앞에 잡풀이 다 날까!" 하고 데퉁스럽게 말합니다. 주희는 "헤헤~ 여그 강아지풀도 다 있네, 요~" 하고 말하는 데도요.

(주희) 이모! 상추를 돈 주고 사?
(이모) 그럼~ 아님, 상추가 어디서 나?
(주희) 아니, 상추 심을 데도 읎어?
(이모) 얘는~ 지가 방금 길바닥이 시커멓네, 어쩌네 해 놓고는...
아, 사람이 살 데도 없어서 난리인데 어디라고 상추를 심어,
심기는~
<18~19쪽>

학교를 서울로 옮기고 화실도 다니며 그림을 배우는 주희입니다만, 사람과 차와 길이 너무도 많은 곳에서 툭하면 길을 잃습니다. 자연과 너무 동떨어진 채 살아가면서, 자연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는 주희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모와 화실 선생님 빼고는 누구한테도 말을 걸지 못합니다. '촌것'을 바라보고 마주하는 서울사람들 모습과 말씨가 너무 거칠고 참으로 메말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는 말없이 고개를 돌립니다.

그러다가 대문 위 조그마한 자리에 흙을 놓고 상추를 기르는 할머니를 만납니다. 서울 와서 처음으로 '살아 있는' 상추를 만납니다. 그리고 대추나무를 봅니다. 호박넝쿨도 봅니다. 오동나무, 과꽃, 나팔꽃, 담쟁이, 토란 대, 고추, 맨드라미, 향나무도 잇달아 봅니다.

주희는 비로소 무엇인가를 느낍니다. 시골에 살며 자기가 참으로 시시하게 여겼던 이 꽃과 풀과 나무야말로 수수하고 눈에 안 띈다고도 하겠지만 사람을 가장 자연스럽게 하고 따뜻하게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이런 자연과 멀어지면서 자기 마음을 잃고 거칠고 메말라진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말문을 틉니다.

<3> 그림자 소묘

'그림자 소묘'에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아이'가 주인공입니다. 이 아이는 학교에서고 다른 곳에서고 자기 '있음'을 느끼지 못합니다. 자기가 살아 있는지, 자기가 다른 아이들하고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지,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에서 사람들과 부대끼고 걷는지, 집에서는 또.

이 아이가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다만 만화에 나오는 장면 둘에서 '중학생'인 것 같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건 하나도 안 중요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중요합니다. 이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 '무엇을 하며 사는지', '무얼 꿈꾸고 생각하는지'를 그저 묻어둔 채 사람들 무리에 집어넣을 수는 없거든요.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있기 마련이고 자기 삶과 꿈과 생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뭇사람들을 하나하나 개성이 있고 남다르고 저마다 고유한 모습이 있음을 받아들이고 껴안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입니다. 그래서 '이름 모를 아이'는 길을 헤맵니다. 멍한 채 지내기 일쑤고, "해만 바라보는 네게도 그림자가 있는 걸, 넌 아냐? <127쪽>" 하고 그림 속에 있는 해바라기에게 물으면서 자기 자신을 찾고 싶어 합니다.

(친구) 어떤 자세를 해야 맞는 건지
(주희) 맞고 자시고 할 것도 읎어.
그저 너가 있고 싶은 대로 있으면 돼.
서 있어도 되고, 앉아 있어도 되고.
(친구) 근데... 나, 저 사과 들고 있어도 되나?
<170쪽>

주희 그림을 만나면서, 또 주희와 함께 화실에 놀러가면서, 그리고 주희에게 모델이 되어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자기 모습을 내맡기게 되면서 '이름 모를 아이'는 차근차근 자기 자신을 느끼고 찾게 됩니다. 아직은 서툴지만, 또 두렵기도 할 테지만,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하고 반가울 자기 자신을 찾게 돼요.

<4> 고집 있는 사람과 만화를 생각해 보며

"어떤 자세를 해야 맞는 건지." 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이름 모를 아이'뿐 아닙니다.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기 삶을 찾고 가꾸면 되는데, 자기 자신을 느끼지 못하다 보니 어떻게 해야 좋은지를 모릅니다. 공부를 하건, 일을 하건, 놀이를 하건, 그림을 그리건, 사랑을 하건, 책을 읽건, 영화를 보건, 자기 스스로 어떤 또렷한 중심을 잡아서 밀고 나가는 사람이 드뭅니다.

엊그제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고집은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사람들이 자기 고집이 없이 이리저리 휘둘리고 휩쓸려 가기만 하면 안 돼요", "고집을 부리려면 자신감이 있어야 해요. 자신감이 없이 부리는 고집은 억지가 돼요" 이 얘기를 들으며 참 옳다 싶었고, 수첩에 이 말을 적어 놓았습니다.

고집, 자기중심, 자기 자신, 자연스러움, 있는 그대로, 이것들은 따로 떨어진 것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한데 묶여 있거나 한 뿌리에서 나왔으며 골고루 어우러지지 싶어요. 그림을 그리는 시골아이 주희한테도, 자기 자신을 못 찾고 외톨이로 헤매는 '이름 모를 아이'한테도, 만화책 <그림자 소묘>를 보는 사람한테도 마찬가지로요.

우리 자신을 찾게 하고 가꾸게 해 주는 자연에게서 자꾸만 멀어지고, 자연을 짓밟기도 하는 우리들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자연스러움을 잃고 자기 자신하고도 멀어집니다. 때로는 자기 자신을 내버리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리가 자연과 가까이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면 '그림자를 잃고 헤매'거나 '길을 잃고 헤매'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해요. 만화책 <그림자 소묘>는 우리들이 도시 삶을 꾸리면서 잃거나 내버리는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차분하게 보여주면서, 우리 스스로 찾아갈 '자기 그림자'를 생각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한 장 한 장 정성껏 그린 그림에서, 수수하고 투박하게 말하고 움직이지만, 거짓이나 부풀림 없이 자연스러운 시골아이를 보여주면서 말이에요.

다만 몇 가지 아쉬움이 있습니다. 먼저 작품이 짧은 만화로 싱겁게 끝나버린 대목, 주인공 주희가 남다른 까닭도 없이 시골 삶을 '시시하다'고만 느끼는 배경 설정, 시골 삶을 시시하다고 느끼던 시골아이가 서울로 올라온 첫날부터 외려 '시골 자연을 그리워하고 아주 소중히 여기는 듯' 하게 보여준 대목, 시골에서는 하찮게 여기던 것을 하루도 안 되어 아주 반갑게 여기는 대목 들은 썩 아귀가 안 맞는다는 느낌입니다. 이런 것은 아무래도 이야기를 짧게 끊어서 보여주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훌쩍 뛰어넘으면서 그리느라 나타나는 아쉬움일 텐데요, 나중에 이 작품을 좀 더 길면서 차분하게 다시 그려 본다면 훨씬 애틋하고 살가운 만화로 거듭날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이런 이야기는 짧은 만화 두 편으로 그치기에는 그림감이 너무 아깝습니다. 이런 만화를 사람들이 좀 더 가까이 두고 즐기는 한편, 말초감각만 건드리는 가벼운 농담 따먹기 만화에 길든 사람들 눈길과 머리를 깨끗하게 시원하게 씻어 줄 수 있으면 참으로 좋겠어요. 책 13쪽을 보면 '삐까번쩍'이란 말을 쓰는데, '삐까'는 일본말입니다. 우리말로는 '번쩍번쩍'이나 '으리으리'로 써야 알맞습니다. 이 대목도 바로잡아 주면 좋겠습니다.

몇 가지 아쉬움을 말하긴 했지만, 땀방울과 짙은 사랑이 곳곳에 배어난 그림을 보는 즐거움이 참 좋습니다. 여행하며 보고 듣고 겪고 부대낀 이야기를 만화로 그리려고 준비한다는 그림쟁이 김인 님입니다. 앞으로 우리 앞에 새롭게 선보일 만화에서도 이번 작품처럼 풋풋하면서 싱그러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으면 참으로 고맙겠습니다.

책 정보

- 책이름 : 그림자 소묘
- 그린이 : 김인
- 글씨넣은이 : 가시눈
- 펴낸곳 : 새만화책(2004.12.5)
- 책값 : 8500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책과 헌책방과 우리 말을 사랑하는 모임인 '함께살기(http://hbooks.cyworld.com)' 게시판에도 함께 올려놓겠습니다.


그림자 소묘 - 서울애니메이션센터 만화애니메이션총서 31

김인 지음, 새만화책(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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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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