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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프랑스의 노기자가 4년 동안 네 차례에 걸쳐서 도보여행을 한다. 코스는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西安)에 이르는 실크로드. 무려 1만2000 km라는 거리를 고집스럽게 도보로만 여행하겠다고 작정하고 묵묵히 그 과정을 실행에 옮긴다.

젊은 사람들도 하기 힘든 이 여행을 계획하고 완성한 사람은 프랑스의 베르나르 올리비에다. 그는 은퇴 이후에 안락한 여생을 마다하고 일반 사람들은 엄두도 내기 힘든 도보 여행길에 오른다. 60을 넘긴 나이에.

그는 여행을 하면서 보고 느끼는 것들 그리고 여행의 에피소드들을 마치 일기처럼 꼼꼼하게 즉석에서 적어 나간다. 그렇게 채워진 노트들을 우편으로 프랑스의 아들들에게 보내고 다시 새로운 노트에 계속 자신의 이야기들을 적어 나간다.

그렇게 해서 만든 책이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다. 물론 그의 여행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첫 해에는 도중에 아메바성 이질에 걸려서 여행을 중도에 포기하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온다. 다음 해에 그는 자신이 쓰러진 그 지점에서부터 다시 도보여행을 시작한다.

▲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
ⓒ 효형출판사
18세 때 결핵으로 친구를 잃은 저자는 젊은 시절부터 강박적일 정도로 운동에 몰입해왔다. 그 결과 20회가 넘는 마라톤 완주와 100km가 넘는 도보 여행을 해낼 정도로 튼튼한 체력을 유지해왔다. 아마 그것이 실크로드 도보여행의 가장 큰 밑천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실크로드 도보여행을 시작하면서 15kg에 육박하는 배낭을 메고 매일 수십km 씩 걷는 여정에서 허리와 발에 부상을 입고 때로는 탈진을 하기도 한다. 자신을 태워주겠다는 트럭 운전사들의 호의를 거절하고 걷는 것만을 고집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몸이 어떻게 '걷기'에 적응하고 있는지를 관찰하며 기록해낸다.

"우리 몸은 약점들을 그대로 두지 않고 복구하고 또 연구한다. 어떤 근육이 허약한지 움츠러들었는지 판단해서 그 부분에 영양을 공급하고 숨통을 트게 해줌으로써 마침내 균형을 이루게 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될 때 평화로움과 기쁨의 시간이 오는 것이다. 걷는 것은 조화로움을 만들고 또 자리잡게 한다."

타고난 낙천가인 그는 여정에 대한 욕망과 함께 고독에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느끼면서 잠자리마다 다짐했다. 4년 안에 여행을 끝내지 못하면 5년 안에 끝내면 된다고. 느려도 좋으니까 오직 걷는 것으로만 여행을 마치자고.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는 '저는 실크로드를 걸어서 여행하고 있습니다. 이스탄불, 앙카라, 테헤란을 거쳐서 시안으로 가고 있습니다'라는 글을 각국의 언어로 써서 가지고 다니며 현지의 주민들과 접촉했다.

물론 현지인들이 그에게 호의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도적들에게 시달리기도 하고, 자신을 스파이로 착각하는 군인들의 위협에 분노하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걸어나간다. 저자는 말한다.

"이곳에서 숙식과 안전을 해결해 주는 것은 거창한 국제교류도, 몇 푼의 돈도 아니다. 그것은 불안한 가운데 쭈뼛거리며 다가가는, 나와 정말 비슷하지만 또 매우 다른 이 인간 형제들의 손에 달린 것이다"

저자는 수십년간 정치사회부 기자로 활동한 경력에 걸맞게 곳곳에서 여행지의 역사와 사회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과거에 실크로드를 거쳐간 알렉산드로스와 칭기즈칸, 한 무제의 이야기들을 여기저기에 풀어놓는다. 터키의 카파도키아 평원에서는 기원전 47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파르나케스의 결전을 상상하고, 이란의 솔타니에 사원에서는 이 곳과 연관된 몽골의 칸인 올제이투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또한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여행 도중인 2000년에 비행청소년들을 위한 쇠이유(Seuil) 협회를 창설했다. 이 협회는 범죄를 행한 청소년들에게 소년원에 들어가는 대신 도보여행을 통해서 재활의 기회를 주는 단체다. 판사의 협조를 얻어서 이 소년들은 둘씩 짝을 지어서 최소 2500km 이상을 걸어서 외국을 여행한다. 조건은 단 한 가지. 녹음된 형태의 음악을 가져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제 인생 계획은 청소년 재범자들을 소년원에서 나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걷기가 치료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성공하면 영웅이 되는 것이고, 인생에서 뭔가 긍정적인 일을 해냈다는 사실을 평생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여행기임에도 이 책은 사진 한 장 없이 오직 글로만 채워져 있다. 400 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을 가진 책 3권으로 구성된 이 여행기는 양적인 면에서 보는 사람을 부담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그만큼 저자의 깊이 있는 시선과 다양한 생각들을 접할 수 있다. 재미 있는 여행기이면서 동시에 해당 지역의 정보를 제공해주는 책자이자 도보여행의 지침서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여행을 꿈꾼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그 꿈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저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라고 말한다. 1만2000 km의 대장정 끝에 중국의 시안에 도착한 저자는 자신에게는 걷는 것보다 멈추는 것이 더 힘든 일이었다고 한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서 멈춰야만 하는 것이 두렵다고 말한다.

"나는 다만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굴복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가야만 했다. 살아 있는 한, 인간은 가야 하니까."

나는 걷는다 1 - 아나톨리아 횡단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임수현 옮김, 효형출판(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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