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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그림
겉그림 ⓒ 비룡소
내가 태어나기 전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시고 없으셨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떠올릴 때면 자동적으로 먼저 외갓집이 떠오르게 된다. 어렸을 적 외갓집에 놀러가 다슬기도 줍고, 썰매도 타고 신나게 놀았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외갓집 쾌쾌한 냄새가 불현듯 싫어지기 시작하면서 사춘기가 접어들어서는 자주 안 가게 되었다.

외갓집에 가면 항상 반기는 것은 외할머니였다. 외할아버지는 나가서 농사일을 하시다가 들어오셔서 "으흠, 으흠." 소리를 내시고는 다시 경운기를 끌고 나가시고는 했다. 그래서 여동생과 나는 외할아버지가 멀게만 느껴졌다.

외할아버지가 경운기를 끌고 멀리 나갔다 오실 동안 외할머니는 소여물 주는 법도 가르쳐 주었다. 콧구멍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되새김질하는 소가 신기해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해가 져 달달달 외할아버지가 돌아오는 경운기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는 했다.

술도 즐겨하시고 담배도 피시는 외할아버지 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외할머니랑 숯불에 고구마 굽기, 외할머니가 만든 한과 부셔먹기, 막내 이모 방에 건너가서 변진섭 노래 듣기 등이었다.

가만히 따져보니 외할아버지 곁에는 가지도 못하고 말도 잘 걸어본 기억도 없다. 무뚝뚝한 외할아버지와 뭔가 한 것이 있다면 '미니 화투'가 다였다.

겨울 나절, 뜨끈한 아랫목에서 놀 거리가 없어 심심해하던 초등학교 3학년인 나에게 외할아버지는 화투를 하면서 세 판을 이기면 100원 내기를 하자고 했다. 처음 화투라는 것을 외할아버지에게서 배웠는데 하다 보니 내가 연속으로 이기면서 100원짜리 동전이 제법 내 옆에 쌓이게 되었다.

외할아버지는 "으흠, 으흠" 하시더니 이제 그만하자고 했다.

4년 전 외할아버지는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의 빈자리가 있기 전에 먼저 한 발짝 다가갔어야 했는데 큰 딸의 맏손녀인 내가 참 무심했다.

최근 우연히 존 버닝햄의 <우리 할아버지>라는 책을 발견했다. 간결한 어체에 선이 가는 아늑한 그림이 할아버지와 손녀와의 관계를 잘 표현해주고 있었다.

손녀는 할아버지와 소꿉놀이를 한다.

"이 곰이 여자아이란 말이지? 할아버지는 몰랐는걸."

"이거 참 맛있는 초코 아이스크림이구나."
"초콜릿이 아니라, 딸기 아이스크림인데요."

손녀는 할아버지와 자주 마실을 나간다.

"물고기를 잡으면 저녁에 요리를 해먹자."
"근데 할아버지, 고래를 잡으면 어떻게 하죠?"

"해리랑 플로렌스랑 언덕길을 쏜살같이 내려가곤 했는데, 그 크리스마스가 생각나는 구나."
"할아버지, 그러다 미끄러지겠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 할아버지는 오늘 나가서 놀 수가 없단다"라고 말을 한다. 손녀는 "우리 내일 아프리카로 가요. 할아버지가 선장이 돼 줄 수 있죠?"라고 말하지만, 시간이 지나 할아버지가 늘 앉아있던 녹색 소파는 늘 비어있게 되었다.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가 왠지 쓸쓸하게 느껴진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해맑게 웃고 조잘대던 손녀의 모습과 한 가지 사물을 두고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하던 둘이 서로 소통을 하던 모습은 참 인상적이다.

그림책 왼쪽 페이지는 색이 칠해지지 않은 스케치 그림이 나오는데 이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간결한 대화 속에 서로가 상상했고 바라던 속 얘기를 그림으로 전해주고 있다.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손을 잡은 손녀라니. ‘참 기분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우리 할아버지/ 존 버닝햄 글, 그림/ 비룡소. 7500원


우리 할아버지

존 버닝햄 지음, 박상희 옮김, 비룡소(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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