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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사십대를 흔히 “부모를 봉양하는 마지막 세대이며 자식에게 버림받는 첫 세대”라고 한다. 부모와 자식에 대한 책임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이들 '낀' 세대들은, 앞선 세대들의 삶과는 달리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노년을 지향하고 있다.

사년 전 치매를 앓으시던 할머니가 세상을 뜨신 후로 단촐하게 두 분만의 노후를 맞고 계신 친정부모님과 청상에 혼자되셔서 여든 여섯에 이르신 시어머니의 노년을 함께 지켜보며 드는 생각은 '어떻게 하면 좀 더 긍정적으로 자신의 노년을 받아들이며, 죽는 순간까지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람일뿐 실제로 마흔 중반의 내 시간의 어느 점쯤에 노년이 시작될 것이며 어떻게 하면 그 시간들을 안정적이고 행복하게 맞을 수 있을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고민해 본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아마도 나 역시 나이듦이나 늙음을 먼 훗날의 이야기쯤으로 착각하고 살기 때문일 것이다.

▲ 책의 표지
ⓒ 서해문집
<마흔에서 아흔까지>는 나처럼 가만히 앉아 머리로만 노년을 준비하는 대책없는 중년들에게 '나이듦'이란 어떤 것인지 조곤조곤 들려주는 지도서이다.

노년준비의 첫걸음은 노년에 대한 관심. 알아야 준비할 수 있다. 동네 골목이나 목욕탕, 지하철 아니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노인이 눈에 띄면 관심을 갖고 지켜보자. 노인은 머지 않아 만나게 될 우리의 얼굴이며 우리가 갈길을 앞서 걸어가는 선배들이기 때문이다. 노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나의 노년 그림을 그려가며 하나씩 준비해보자 - 아름다운 노년을 위해 중년에 꼭 해야 할 10가지 중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작가는 가장 먼저 노년에 대해 관심을 갖고 노인을 지켜보라고 한다. 그 노인들이 머지 않아 만나게 될 우리의 얼굴이라고 말하는 그녀의 글 속에는 15년간 노인복지에 몸담아 온 이력에서 알 수 있듯, 노인에 대한 경의와 애정이 담겨 있다.

<마흔에서 아흔까지>가 이제까지 보아 온 '나이듦'에 대한 피상적인 지침서와 달리, 손에 잡힐 듯 수월하게 읽힌다. 그것은 이 책이 노인복지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얻어진 체험서이자 실전서이기 때문이다.

노년기의 네 가지 어려움(四苦)으로 빈곤, 질병, 고독과 소외, 무위를 꼽는다. ‘여가의 시기’인 노년기를 재미있고 의미있게 보내려면 미리미리 노는것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밑그림을 그려 보는 것이 필요하다.(중략) 자원봉사는 다른사람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즐거움 못지않게 사회적 유용감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유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따라서 자원봉사활동은 가장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이며 동시에 최고의 노년준비이기도 하다 - 행복한 노년을 위한 인생지도/ 잘 놀기 위해 배워야 할 10가지 중


친정부모님은 치매로 고생하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리셨다. 노는 것도 계획과 훈련이 필요한데 어려운 시절을 바쁘게 살아오신 두 분은 이에 대한 훈련이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급속하게 쇠약해 지던 두 분은 2년 전 치매노인시설봉사를 시작하면서 건강과 웃음을 다시 찾게 되었고, 요즘엔 활력에 넘쳐 보이시기까지 한다.

<마흔에서 아흔까지>를 읽으며 수없이 머리를 끄덕이고 무릎을 치게되는 것은 이처럼 현실 속에서 우리가 만나고 있거나 만나게 될 노년에 대한 지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處富貴之地에는 要之貧賤的痛痒하며 當小壯之時에는 須念衰老的辛酸이니라(처부귀지지에는 요지빈천적통양하며 당소장지시에는 수념쇠노적신산이니라).


<노년전문가> 유경은 누구인가?

ⓒ김진석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시청각교육과를 졸업하고, CBS 아나운서로 입사해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하세요'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후 노인복지 현장에서 활동하다가 이화여자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노년을 공부했으며, 1996년 송파노인종합복지관의 개관 멤버로 참여해 복지과장 등을 역임했다.

2005년 현재는 프리랜서 사회복지사로 다양한 매체에서 노년의 풍성한 삶을 위한 담론을 펼치고 있으며, 노년과 중년을 위한 사회교육 프로그램 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 <꽃 진 저 나무 푸르기도 하여라> 등이 있다.
즉, '부귀한 처지에 있을 때는 빈천함의 고통을 알아야 하고, 젊고 왕성한 때에 모름지기 노쇠한 때의 쓰라림을 생각해야 한다'라는 채근담의 한 구절은 언제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지만 젊은 시절 노년을 생각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머지 않은 날 내 앞에 닥쳐올 노년을 배우고 준비하는 것이 중년의 생을 더욱 의미있고 풍요롭게 하는 작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노년을 위한 준비 역시 소홀함이 없을 것이다.

대책없이 살다 보니 어느새 중년을 맞았고 문득 암울한 노년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온다면 믿음직하고 친절한 노년 전문가 유경의 손을 잡고, 그가 들려주는 행복한 노년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마흔 중반 오늘의 작은 시도가 아흔까지의 인생을 보다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줄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된다면 우리가 바라는 행복한 노년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마흔에서 아흔까지 - 행복한 노년을 위한 인생지도

유경 지음, 서해문집(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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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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