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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사는 조카 녀석이 겨울을 우리 집에 와서 보내면서 눈 구경할 수 있을 거라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석달을 지내는 동안 눈다운 눈 한번 내리지 않자 꽤나 실망하는 눈치였습니다. 스무살이 되기까지 살아온 포항에서는 겨울에 눈다운 눈을 본적이 없다던 녀석은 강원도에서도 눈 구경에 실패하자 꽤나 실망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녀석이 포항으로 내려간 지 얼마 뒤부터 포항을 비롯한 동해안 일대에 많은 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강원도에서 보지 못한 눈을 고향인 포항에서 푸짐하게 볼 수 있었으니 소원 하나 이루었다며 좋아할 녀석의 얼굴이 눈에 선했습니다.
3월 2일에 내린 눈은 우리 가족에게 많은 어려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걷기는 하지만 다리가 약한 준수는 중학교 입학식에 참가하기 위해 집 앞에서 택시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눈길에 길이 막혀 택시조차 잡기 힘들었습니다. 아내와 준수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택시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삼십분을 추위에 떨면서 택시를 잡기 위해 허둥댔지만 빈 택시가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지나가던 자가용을 세워 사정을 얘기하고 겨우 입학식 시간에 맞추어 학교에 도착했답니다. 저녁이 되자 아내는 코맹맹이가 되어 끙끙 앓았습니다.
3월 5일에 내린 눈은 양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눈은 눈인지라 길바닥 여기저기가 미끄럽습니다. 경비실 아저씨는 아침 일찍부터 경사진 길목마다 염화칼슘을 뿌렸습니다. 아저씨가 뿌리는 게 무얼까 궁금해 하던 광수 녀석이 아저씨께 그게 소금이냐고 물어 보았답니다. 그랬더니 염화칼슘인데 소금 사촌쯤 되는 거란 대답을 들었다고 합니다.
며칠 전만 해도 화창한 날씨에 들녘의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한껏 기지개를 켜면서 봄을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연이어 내린 눈을 맞은 나무들은 하얀 눈을 가지에 얹은 채 쓸쓸하게 서 있습니다. 그래도 영하 몇 십도의 강추위를 동반하지 않았으니 차라리 축복된 눈이라고나 할까요.
밀물 같던 만세의 함성이 들릴 것도 같은 삼월에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축복일 수도 있다는 한 지식인의 기고문이 엄청난 파문을 불러왔습니다. 식민지 유산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 현대사의 뒤틀린 모습의 하나였습니다.
제 철을 알지 못하고 내린 눈은 많은 이들의 삶에 어려움을 줍니다. 제 철을 알지 못한 채 불쑥 튀어나온 기고문이 많은 이들의 가슴에 분노를 일으키게 합니다.
삼월에 눈이 내린다고 오던 봄이 되돌아가지는 않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차라리 축복이었다고 아무리 외쳐보아도 역사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철의 흐름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일컬어 옛 어른들은 철부지라 불렀습니다. 철 따라 사는 삶의 지혜가 부쩍 생각나는 시절입니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 http://www.giweon.com에도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