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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착공 이후 개관되지 않은 전남 보성군 서재필 기념공원
1991년 착공 이후 개관되지 않은 전남 보성군 서재필 기념공원 ⓒ 김학수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신문을 창간한 독립운동가, 개혁가, 언론인, 의료인으로 추앙받아온 애국지사 송재(松齋) 서재필(徐載弼)박사.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생가가 있는 전남 보성군에 설립된 서재필 기념관이 착공 15년 세월동안 개관을 하지 못한 채 86주년 3·1절을 맞았다.

최근 일본은 "돌아오라 다께사마"를 외치며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망언을 떠들어대고 있다. 이런 현실속에서 오랜 세월 동안 준비해 온 애국지사 기념관이 개관도 못한 채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송재사에는 빈 촛대와 향로가 영정 앞에 놓여있다.
송재사에는 빈 촛대와 향로가 영정 앞에 놓여있다. ⓒ 김학수
"정부의 사업 투자비가 연차적으로 지급되다보니 그 시기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고 송재 선생 기념관에 전시할 유물과 자료들을 확보하는 데 애로가 있습니다."

(사)서재필 기념관 추진사업회 최형재 사무국장의 말이다. 사실 서재필 기념관은 전남 보성군 문덕면 용암리에만 건립된 것은 아니다. 이미 2004년 9월 18일에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근교 미디아시에 위치한 서재필 박사의 유택이 정부 지원하에 기념관으로 개관된바 있다.

전남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 서재필 생가. 박사는 이곳 초당에서 7살까지 생활하였다.
전남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 서재필 생가. 박사는 이곳 초당에서 7살까지 생활하였다. ⓒ 김학수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건립되고 있는 기념관은 개관을 위해 15년이라는 준비 기간동안 무엇을 해왔으며, 정부는 무엇을 지원해 주었단 말인가?

전남 보성군 서재필 기념공원의 안내 현판에는 '1991년 기념공원으로 조성을 시작하여 2003년에 준공하였다'라고 적혀있다.

기념관에 세워진 서재필 동상
기념관에 세워진 서재필 동상 ⓒ 김학수
3·1절이라서 가족들과 이곳을 찾은 김세중(32·여수시 대림사택)씨는 기념관이 아직도 개관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며 왔던 길을 되돌아 갔다.

1일 기자가 찾아간 서재필 기념관에는 간간이 찾아오는 참배객들을 안내해주는 사람도, 홍보물도 없었고 기념관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선생의 영정을 모신 송재사(松齋祠)에는 분향할 수 있는 향 조차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채 빈 촛대만이 영정 앞에 쓸쓸히 자리하고 있었다.

기나긴 세월 속에 감춰져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선열들의 함성이 후손들에게 길이 전해질 수 있도록 개관을 위한 정부 관계부처가 조속히 대책을 마련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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