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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마을 식구들. 이들은 함께 지내는 장애우들이 아니라 '가족'이다.
나눔마을 식구들. 이들은 함께 지내는 장애우들이 아니라 '가족'이다. ⓒ 장희용
"처음에는 '나눔'이란 내 것을 주는, 그래서 내 손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주고 또 주어도 내 안에 더욱 풍성해지는 것, 그것이 '나눔'이고 '사랑'이었습니다."

전북 군산시에서 '나눔의 집'을 꾸리고 있는 김 선 원장의 말이다. 12명의 장애우들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고 있는 김 원장은 목회자인 아버지와 장애가 있는 동생 사이에서 자라면서 지금의 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또한 그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1991년 문을 연 나눔의 집. 그 시작은 장애아동들을 위한‘조기 교육원’이었다. 김 선 원장은“조기 교육원을 운영하며 장애아동에게 필요한 것은 1, 2, 3, 4… 의 숫자도 아니요, ㄱ, ㄴ, ㄷ…의 한글도 아니란 걸 알았다”며 “혼자 옷을 입고, 양치질을 하는 등의 삶을 배우는 것이 더 급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장애아동들과 공부가 아닌 삶을 함께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눔의 집, '복지시설' 아닌 가족이 모여 사는 '집'

‘나눔의 집’에는 36개월 된 아이 정빈이부터 40세에 이르는 성인까지 12명의 식구가 함께 생활하고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12명의 식구가, 그것도 크고 작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12명이나 되는데 생활하면서 부딪치는 어려움이 어찌 한 둘이겠느냐 싶은, 섣부른 판단이 앞서지만 김 원장은“힘든 일이 전혀 없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처음엔 큰소리도 나고 힘든 일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크고 작은 다툼속에서 일어나는 어려움을 김 원장은 간단한(?) 세상의 이치로 극복했다. 바로‘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

김 원장은 “혈연으로 이뤄진 가정에서도 남편과 아내, 자녀와 부모의 생각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걸 인정해버리면 간단한 문제”라면서 장애와 비장애의 다름이 아닌, 너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는 마음이 생기니 더 이상 문제될 것이 없었다고 한다.

식구들의 연령이 다양해 한 사람, 한 사람 나이에 맞게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하는 것도 부딪치는 또 다른 어려움이 아닐까 싶지만 김 원장은 오히려“엄마 아빠 언니 동생뿐 아니라 할머니 삼촌 이모까지 대가족이 모여 사니 즐겁고 재미난 일이 더욱 많다”면서 "우리는 대한민국 그 어떤 가정보다도 따뜻한 가정을 느끼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얼굴도 성격도 연령도 다 제각각인 대가족이 늘 북적이며 살을 맞대고 생활하고 있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한 ‘나눔의 집’ 식구들의 얼굴에는 늘 웃음이 가득하다.

사랑의 러브하우스 '나눔의 집' 전경. 이 집은 지역의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 조금씩 정성을 모아 지은 '사랑의 러브하우스'다.
사랑의 러브하우스 '나눔의 집' 전경. 이 집은 지역의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 조금씩 정성을 모아 지은 '사랑의 러브하우스'다. ⓒ 장희용
더 이상의 '정빈이'가 있어서는 안된다!

요즘 김 원장은 미혼모에 대해 관심을 많이 기울이고 있다. 여건이 되는대로 나눔의 집에 미혼모 시설을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김 원장이 미혼모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정빈이를 통해서다.

정빈이는 우여곡절 끝에 나눔의 집에 온 아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에 오게됐다. 당시 정빈이는 심한 병을 앓고 있었다. 아픈 몸에 부모에게 버림까지 받은 아이. 김 원장은 36개월 된 정빈이를 통해 세상 보는 눈이 더 넓어졌다고 한다.

김 원장은 특수교육을 전공한 탓에 관심사는 오로지 장애아동뿐이었는데, 정빈이를 보니, '내가 아무리 엄마처럼 사랑을 줘도 배 아파 낳아준 엄마만큼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이에게 엄마는 그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존재라는 것.

그래서 아이에게는 엄마의 따뜻한 체온이 세상살이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김 원장은 정빈이를 통해 본 것이다. 그래서 김 원장은 욕심(?)이 생겼다. 김 원장은“현재 대부분의 미혼모 시설에서는 아이를 맡기면 엄마가 아이를 포기해야 한다”며 모자가 함께 할 수 있는 미혼모 시설을 운영할 생각이란다. 또 다른 정빈이를 보는 것이 마음 아프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이 앞선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주위 분들의 도움과 나눔의 집 식구들이 장애라는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폐지 등을 모은 돈으로 나눔의 집을 운영하는 탓에 지금도 어려운데 시설과 가족을 늘리는 것이 마음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는 조금 고프더라도‘함께 하는 삶’의 풍요로움을, 기쁨을 알기"에 김 원장은 이 일을 두려움 없이 하고 싶단다.

나눔의 집 식구들은  세상과 소통하면서 당당한 삶을 산다. 군산시민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모습
나눔의 집 식구들은 세상과 소통하면서 당당한 삶을 산다. 군산시민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모습 ⓒ 장희용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서해교차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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