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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기를 앞둔 2월 25일 오후 2시, 안양시 실내체육관 보조경기장에서는 "추억의 교복 물려주기 대행진"이 성황리에 끝났다. 시중에서 20~30만 원하는 교복이 단돈 천원이란 홍보를 따라 학생들과 학부모 2천여명이 일시에 몰려 북새통을 이루었다. 시골 장터를 방불케 하며 아침부터 몰려든 길게 늘어선 행렬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 먼저 좋은 물건을 고르려는 인파로 북정이는 매장
ⓒ 김재경
2시 정각에 개통한다며 통제하는 출입문을 취재기자들 틈에 끼어 통과했을 때 '우~와' 탄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보조경기장 안에는 5500여 품목 중에 교복 3천여 점이 학교별, 품목별로 진열되어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넓고 조용한 매장 안에서는 "수입이 목적이 아니니 돈 받는 것 신경 쓰지 마시고, 부녀회의 좋은 인상을 풍기도록 짜증내지 말고 반갑게 고객을 맞아 주세요"란 방송만이 간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2시 정각, 문이 열림과 동시에 우르르 뛰며 달려오는 고객들로 매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리저리 뒤적이며 남들보다 한 발 먼저 좋은 물건을 고르려는 눈만 번쩍일 뿐, 한 눈 팔 겨를이 없어 보였다.

한 예비 고등학생은 "이 행사를 염두에 두고 교복 구입을 미루었는데,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 드리게 되어서 너무 기뻐요"라며 교복을 어루만지며 얼굴 가득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 어머니가 딸의 허리춤에 치마를 대보고 있다.
ⓒ 김재경
부녀회원들이 "학생한테는 이게 잘 맞겠네"라며 선뜻 고르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남학생에게 어머니처럼 챙겨 주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관양여중 2학년 한정림양은 "교복 웃옷이 작아서 왔는데 물량이 적어서 어떡해요"라며 아쉬워한다.

호계동 정계순씨는 "새 옷을 구입했지만 한 벌 더 사서 번갈아 가며 입히려고요"라며 치마를 딸의 허리춤에 대 본다. 새마을 부녀회에서는 "교복은 욕심 내지 말고 한 벌씩만 가져 가세요. 두 벌은 계산이 안 됩니다"라고 수시로 방송을 한다.

물건을 구입하고 나가는 문 앞에 서 있다가 우르르 몰려드는 얌체족을 향해 "어서 문 닫아요"란 고성이 울려 퍼진다. 총알처럼 뛰어 들어온 중년여성을 향해 "아주머니 이러시면 안됩니다"며 밀쳐내며 문을 닫으려고 하자, "우리 애가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는데요. 교복을 잃어 버렸어요. 1년 남겨 두고 새 옷을 사기도 그래서요. 제발…"하며 애원하는 모습도 보인다.

안양9동의 한 학부형은 "코트를 사러 왔는데 한 벌도 안 보이는 걸 보니 경제가 어렵다는 게 실감나네요"라며 학생복 바지 하나를 들고 서 있었다. 곁에는 남편 병 수발하며 행상으로 겨우 풀칠한다며 한 아주머니가 "새 교복 걱정을 했는데 이런 기회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라며 긴 한숨을 토한다.

신촌동 황금란 새마을 부녀회장은 "여기 진열된 물건들은 각 동을 통해 한달 전부터 수거되었고, 동 회장들이 집에서 세탁하거나 동별로 드라이하며 손질하는 데만 3일이 걸렸어요"라고 말했다.

촘촘히 진열된 교복들은 식사를 마친 접시의 생선 가시처럼 순식간에 앙상한 뼈처럼 옷걸이만을 남겼다. 북새통은 계산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 책을 고르는 표정이 진지하다.
ⓒ 김재경
검은 비닐에 옷을 담아 주는 부녀 회원들의 손길이 분주하고 교복을 한 아름 앉은 얼굴마다 함박 웃음이 피어난다. "돈은 여기에 직접 넣어 주세요" 천 원 성금이 모금함을 채워 가고 있었다.

"여기 책은 그냥 가져가세요"란 말에 자습서나 참고서가 불티나게 줄어들더니 금세 바닥을 드러낸다. "비록 공짜로 얻었지만, 더 열심히 공부할 거예요"라며 학생들과 학부형들은 금세 한 아름씩 책을 안고 나온다.

수북히 쌓인 체육복 코너에서 한 학부형이 "이거 어느 학교 체육복이죠"라고 물었다. "모르겠는데요" 모르기는 판매하는 부녀회원이나 학부형도 마찬가지다. 들었다 놓길 반복하던 아주머니는 "이거 농촌 일손 돕기 할 때 입으면 제격인걸"하며 한 벌을 집어든다.

▲ 한 학생이 모금함에 교복대금을 성금으로 넣고 있다.
ⓒ 김재경
안양시청 최경옥 여성복지계장은 "체육복은 학교에 따라서 학년별로 다른 학교도 있어서 사실 분리가 어려워요. 지난해 무료 행사에 이어서 금년이 두 번째 행사입니다. 물건의 소중함을 인식시키는 차원에서 받는 1천 원은 전액 불우이웃을 돕는데 쓰일 예정입니다"라고 말했다.

북새통 속에 물건이 불티나게 팔려 나가자, 자유총연맹 부녀회에서 부랴부랴 많은 물량의 새 교복을 보내 왔지만, 인파가 흩어진 후라서 아쉬움만 더 해 주었다.

이 행사를 통해 안양시와 새마을부녀회는 학생들에게 물건의 소중함과 근검절약 정신을 일깨워주고,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계기로써 손색이 없어 보였다. 안양시에서 시작 된 이 운동의 메아리가 전국적으로 전파되었으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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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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